해야 할 일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을 때, 되도록이면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해결하는 편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귀찮은 일이나 복잡한 일을 미뤄두기 마련이다. 나도 이런 부류에 속하지만 그 습관을 깨부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먼저 처리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하기 싫은 일이라 함은 대체로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이다. 매일 반복되지만 딱히 커다란 성과는 얻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일들. 배우로 예를 들면 멋진 독백을 수려하게 연기하는 일 말고 한 시간 내내 발성이나 호흡 같은 기초 연습을 하는 일이 될 것이고, 주짓수로 예를 들자면 현란하게 움직여 상대방을 제압하는 서브미션 말고 그 기술을 성공하기 위해 기계처럼 단련되어 있어야 하는 기초 동작들의 무한 반복인 셈이다.
집에서는 설거지나 청소기 돌리기, 빨래 같은 단순 가사 노동이 이에 속하는데, 어질러진 집을 보고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면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깔끔해진 집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다음에 쓸 물건이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어서 편리하다면 필히 해야만 하는 일이다.
물론 하기 싫은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은 분리해야 한다. 가사 노동 또한 하지 않아도 딱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일로 취급되기 좋은데, 예를 들어 저녁에 친구와 술약속이 생겨 그 준비를 하느라 집안일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온 다음 날 아침에 싱크대에 가득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참으로 절망적이다.
내 집 안의 사소한 일거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이 나가서 의기양양하게 멋진 척, 잘 사는 척을 하고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럴 때면 대청소로 숙취 해소를 하곤 한다. 반성의 의미랄까.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남들이 귀찮아하는 일을 솔선수범 하여 척척 해낸다. 다 같이 여행을 가서도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뒷정리를 한다던가, '대충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일들의 마무리를 꼼꼼히 살핀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안전하다고 느껴지고 더 오랜 시간을 같이 하고 싶게 되는 법이다.
때때로 그런 사람들의 노력이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면 참으로 기특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사소한 일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부족한 인간이 대단하게 성공을 했다는 이야기보다 작은 성공일지라도 주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성공의 크기나 성패의 여부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태도의 됨됨이로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에서다. 성공은 언제든 상황이 역전될 수 있지만 한 인간이 평생을 지켜 온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온 집안 군데군데 널려 있다. 하지만 반드시 이걸 해내야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가 금세 다시 어지럽힐 집을 정리해 본다. 일관된 태도와 습관이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처럼 내 인생을 차곡차곡 쌓아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