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고,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 두 가지 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온전히 나만의 해석에 불과하겠지만, 살다 보니 '반드시'라고 칭하는 건 의무가 섞이게 됐고,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꾸만 미루는 일이 됐다.
나는 언제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지금'은 조금씩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당장 손에 잡히진 않지만 늘 좇고 있는 일이며, '지금' 해야 할 일은 언제나 할 수 있어 '나중에'라는 말을 덧붙이게 되는 일이다.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고 어렵게 일정을 조율하며 떠난 가족과의 여행은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다음과 다음을 외치고 그다음을 외치다 결국 떠나버린 여행이었다.
지난 여행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겨우 세던 재이가 이제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말이 청산유수다.
열 살이 넘은 공칠이는 겨우 삼십 분 남짓 뛰어놀더니 지쳐 쓰러져 온종일 누워 있다.
시간이 이만큼 흐르고 있구나, 나는 아내에게 사십 대의 계획을 이야기했고 아내는 농담받듯 웃더니 늘 그렇듯 무엇이든 해보라 했다.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알아챈 사실이지만 한 번도 랩탑을 펼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으니 큰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일이 일어났더라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 '지금'을 지키는 힘이 필요했다.
어쩌면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하루, 일박 이일쯤은 가족과 함께 '지금'을 보내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이토록 밝게 웃고 있으니 말이다.
성과, 성장, 성공, 평가, 평판 같은 단어들이 날 꽤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해도, 가족이나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선 한없이 무색해지기도 하는, 그런 하루였다. 시간이 지나면 놓치고 말 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지금' 해야 했던 우리의 여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