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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Oct 26. 2020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사람

요르단, 암만

날은 이미 새까맣게 저물었고, 시간은 밤 10시에 가까웠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억세게 퍼부었다. 어두운 가운데 수많은 눈만이 쉴 새 없이 반짝이며 움직였다. 여지없이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고 자기들끼리 흥정을 시작했다. 무섭지 않았다. 날 그곳에 데려다줘요. 이 나라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루이밖에 없어. 루이의 말이라면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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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그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루이!" 다시 만난 루이에게 이집트는 위험해서 갈 수 없었어. 나는 자정에 떠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해, 암만에 방금 도착했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이곳으로 왔어. 루이는 나에게 급히 터미널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서둘러가야 한다며 기사를 불러주었다. 곧 기사가 왔고, 루이는 지난번의 헤어짐과 달리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이제 만날 수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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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의 첫날 페트라 여행을 마치고 그 이튿날엔가 암만으로 넘어갔을 무렵이다. 이스라엘로 입국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암만의 호스텔에서 며칠 묵었는데, 루이가 바로 호스텔 데스크에서 일했다. 큰 덩치에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끼니를 거르고 자는 내게 음식과 물을 직접 가져다주며 선물이라고 했다. 혹여 불편할까 봐 음식만 주고 빨리 자리를 뜨는 것까지 완벽했다. 그는 한국인 편애로 유명했고, 정말 한국인에게는 과할 정도로 아낌없이 베풀었다. 나는 떠나는 마지막 날 루이에게 내 보물과도 같던 이스라엘의 누텔라, 엘리트 초콜릿을 그에게 선물했는데, 그는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며 그동안의 숙박비 청구서를 찢어버리며 나를 당황하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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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의 연락으로 서른 살이 채 안되었던 젊은 친구가 호스텔에 도착했다. 그가 바로 내 미션을 수행할 기사였다. 오늘 밤늦게 처음 만난 낯선이라도 루이가 소개해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북부 터미널로 가주세요. 출발 전에 루이가 그에게 이미 아라빅으로 모든 설명을 마쳤지만, 그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내게 북부 터미널을 여러 번 확인했다. 그에게서도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게 서둘러 도착한 터미널에는 그러나 어떤 불빛도 켜져있지 않았다. 내가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그는 조용한 탄식과 함께 낮은 소리로 아라빅 두어 마디를 내뱉더니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서툰 영어로 내게 고백했다. 미안해요, 내가 영어가 헷갈려서 남쪽 터미널로 왔어요. 다시 빨리 출발할게요.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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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해요. 돈은 받지 않을게요. 도착한 터미널에서 그는 내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으로 오는 내내 얼마나 자책하고 괴로워했을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더 솔직히는 그동안 사기 치려는 사람들로부터 숱하게 당하기만 하다가, 마지막 순간 요르단에서 들은 그의 말은 감동 그 이상의 꿈처럼 다가왔다. 다급한 순간에 외려 마음이 안정되었다.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해준 당신이 고마웠고,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당신께 늦지 않고 도착함에 감사하며 팁까지 주었다. 고마워요. 제시간에 도착했고 당신은 돈을 받아야 해요. 다시 한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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