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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작 Jan 26. 2021

임신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02

둘. 임밍아웃에 대처하는 모든 이의 자세



5W +0

나의 임신 소식에 친정, 시댁의 반응은 달랐다.


결혼을 함으로써 생기는 새로운 가족, 시댁.

나의 시댁은 남들이 소위 말하는 유니콘급 시댁이었다.

내가 봐도, 객관적으로도 좋으신 분들이고 며느리인 나에게 그 어떤 요구도,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도 없었다. 정말 딸같이 대해주셨달까. (정말 좋은 점 에피소드는 적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서 생략한다.)

그리고 결혼하면 당연하게 뒤따른다고 생각해서 하는 흔한 잘못된 질문 "아기는 언제 가질 거니?"

이 흔한 질문 조차 단 한 번 하지 않으신 분들이다.


그에 반해 우리 아빠는 "언제쯤 차를 카니발로 바꿔야 하나~"라는 뻔한 멘트로 우리 의중을 알아보려 했었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며느리에게는 정말 안 그러길 바란다.)


시댁 자랑을 더 하지 못해서 찝찝하긴 하지만 암튼, 산부인과에서 나오자마자 임밍아웃 기간(?)을 지키지 못하고 시댁에 바로 보고한 남편 덕에 5주 차라는 다소 이른 시점에 양가에 임신 소식을 모두 알리게 되었다.


양가 모두 축하해주는 위기였다. 당연히.

그 안에 녹아있는 단어의 미묘함을 느끼기 전까지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축하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축하는 하는데, 그때 사용한 단어가 달랐다는 말이다.


임신소식을 내가 친정에게 알리기는 쑥스러워 남편에게 전화를 시켰다. 남편은 "장모님!!!!! 할머니 되셨어요~" 라며 임신소식을 전했고, 전화를 끊은 남편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뭐래?라고 묻는 나에게 남편은 "축하한다는데... 목소리가 왜 별로이신 느낌이지?"라고  전했고 난 이 이유를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았다.

한편, 시어머니는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네~ 우리 며느리 너무너무 축하해"라고 기쁜 내색을 숨기지 않으셨다. 


임밍아웃 날 점심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남편은 점심만 먹고 다시 출근을 했고, 엄마는 그때서야 진짜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

"그동안 일만 힘들게 하더니... 이제 좀 연차가 차서 일 좀 수월하게 하나 했더니 애가 애를 키워야 하네... 그래서 임신 소식이 좀 얼떨떨했어. 좀 있다가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11년 차에 들어선 방송작가 생활, 매번 다른 어려움이 있지만 밤낮없이 일하던 막내 생활 때보단 몸이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엄마 눈에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가 좀 살만한가 싶더니, 이렇게 임신 후 육아 고행의 길을 걷는 게 속상했던 것이다. (아! 우리 아빠는 아주 환하게 축하해 주셨다.)


반면, 철부지 아들이 아빠가 다는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그저 기쁘셨던 것이다. 당연하지... 당연한 건데,

왜 당신의 아들이 장한 건지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다. 왜냐면 열 달 동안 배불러서 애를 낳을 건 나기 때문이다. (유니콘급 시어머니를 단 하나의 단어 때문에 흉보는 걸로 들릴까 미리 말하자면 나의 임신 생활 내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다.)


처음으로 '아... 나는 딸이 아니라 며느리였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7W +0 두 번째 병원


이번에도 남편은 진료실 밖에서 기다렸다.

궁금할 법도 한데 꽤나 잘 참는 듯했다.


"여기가 머리 쪽이고, 여기가 엉덩이 쪽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흰 점을 보면서 설명해 주셨다.

그 날 찍은 초음파는 아무리 다시 봐도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엉덩이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흰 점인데요 그냥...'

그리고 심장소리도 들다.

생각보다 빠른 심박수에 "어디 아픈 건 아니겠죠?"라고 묻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또 쿨하게 "원래 그래요 정상입니다"라고 대답해주셨다. 나 같은 질문을 하는 초보임산부들이 오조오억 명 있었을 것이니라.


그리고 녹화된 초음파 영상을 남편에게 보여주는데 심장소리 듣고 약간 상기된 것 같았다.




8W +0 절친들에게 임밍아웃


친구들에게도 12주 이후에 임밍아웃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임밍아웃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일찍 찾아왔다.

근 20년 지기 고등학교 절친들과 주기적으로 먹기 위해 모이는데, 이번 모임 메뉴가 간장게장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절친 6명이 있는 단톡 방에 이미 정해진 메뉴를 바꾸자고 하는 것은 좀 민망한 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실 나 임신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했다.


 메뉴를 바꿔야 하냐면 임신 중 날 것은 먹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정보를 맘카페에서 얻는 편이다.)


[애들아 미안한데, 나 게장 못 먹을 거 같은데....]<<

>>[임신했냐?????]


먼저 임신했냐고 물어봐주는 배려(?) 덕에 나 스스로 임신에 대해 말해야 하는 상황은 면했다.


[아직 말하긴 좀 이른데 8주임 ㅋㅋㅋ 그래서 음식도 좀 조심하려고]<<


친구들의 반응은 하나같았다.

다 축하한다고 해줬다. 하지만 신한 내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고 했다. 임신이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가 어딨겠냐만, 나이를 먹고도 철부지 같은 내가 누굴 키운다는 상상이 안됐던 거였겠지. 근데 나도 잘 안 되는 것 마찬가지였다.



내가 임신을 했다고 말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반응이 있다.

"너 일은 어떻게 하려고?"


이 반응이 두려운 것은 내가 아직 저 대답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인 것 같다.

나는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출산 휴가, 육아 휴가가 보장되는 회사원도 아닌 프리랜서의 삶이라 임신했다고 하면 일 역시 뚝 끊길 터였다. (내가 임신 몇 개월이든 말이다.)

이런 걱정 때문에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눈물이 났던 거 같은데... 남에게서 이런 확인사살(?)까지 받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걱정처럼 보이는 질문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실례일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리랜서의 삶을 사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이라도, 주변에 임밍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축하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일을 어떻게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질문을 받는 임산부도 모를 경우가 많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말이다.


솔직히 저 질문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 알아서 할게요"이다.



아무튼 친구들과 나는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모임을 하였고, 임신 초기를 벗어난 나는 간장게장도 먹고 회도 먹고 날 것도 먹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서도 건강한 출산을 했다고 한다.


임신 중에 뭔 음식이든 트럭째로만 안 먹으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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