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재 Jan 10. 2023

타지에서 친구 사귀기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5

워크어웨이(Workaway)는 일종의 여행 앱으로서 세계적으로 다양한 사용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워크어웨이어(Workawayer)와 호스트(Host)를 잇는 다리 이외의 역할이 있다는 것! 바로 여행 친구를 찾는 것이다. “유랑”의 글로벌 버전인 셈! (유랑은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의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네이버 카페이다.)



워크어웨이에서 여행 친구를 구하는 방법. 수많은 이용자의 프로필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사진 출처: 워크어웨이)



이 기능을 활용해 프라하에 사는 친구를 사귀어 볼 심산이었다. 혹여나 현재 프라하를 경유 중인 다른 여행자도 있을 수 있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워크어웨이어의 프로필을 둘러보았다.



운이 좋게도 프라하에 거주하는 내 또래의 워크어웨이어를 찾을 수 있었다. “비타”라는 이름의 그녀는 프라하 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바쁜 일정에도 그녀는 만남을 흔쾌히 수락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 그녀의 친구 “떼뻬”까지 함께했다. 프라하 근교 투어가 순식간에 성사된 것이다. 야호!


     

현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망설일 일도 아니었다.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었다.



떼뻬의 제안으로 프라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느 스타디움에 모였다. 스타디움에 형성된 거대한 인파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축구팬 떼뻬의 이유 있는 선택이 있었다.



이 날은 체코 현지 시간으로 2022년 9월 24일이었다. 마침 유럽축구연맹 네이션스리그 조별리그가 프라하에서 열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체코의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다. 다시 말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여기에 와 있다는 것!


     

체코vs포르투갈 경기가 열리는 포르투나 아레나 (Fortuna Arena). 참고로 호날두는 이 경기에서 코피를 흘리게 된다. (사진 출처: 권민재)



스타디움 밖에서나마 느끼는 축구팬들의 열기가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호날두가 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라하 근교를 돌던 중 마실 거리를 사러 한 매장에 들어섰다. 여기서 느낀 두 가지 문화충격을 적어보고자 한다.



흔히 생각하는 캔음료의 내용량이 한국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350ml가 보편적인 반면 체코는 500ml가 기본이었다. 이는 내가 다닌 유럽 전역이 동일했다. 덕분에 몬스터 하나로 배가 빵빵해졌다.



원스탑 아웃렛(One-stop outlet, 한 곳에서 다 살 수 있는 직판점)에 꼭 헬스장이 있다. 그것도 꽤 큰 규모로. 일례로 비타와 같이 간 매장에는 푸드코트 바로 옆에 트레드밀 열 대는 족히 넘게 배치한 피트니스 센터가 있었다. 비타에게 물어보니 이는 일반적이라고 한다. 유럽 이곳저곳 맛보기로 다녀온 입장에서 이러한 구성은 어쩌면 동유럽만의 전형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호기심 넘치는 열정이 보기 좋은 체코의 두 청춘과 함께한 프라하 근교 투어는 소박하지만 내게 가장 알맞은 유형의 관광이었다. 소소한 농담 따먹기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장소에 대한 설명까지, 그들과 함께하며 많은 대화가 오갔다. 단언컨대 그들은 내게 최고의 가이드였다.      


 

최고의 가이드이자 은인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출처: 권민재)



프라하 근교 투어를 마친 뒤 호스텔에 돌아와 보니 때는 아직 초저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열심히 걸어 다닌 끝에 몰려오는 허기와 피로가 문제였다. 이대로 하루를 마치는 것은 무언가 아쉬워서, 간단히 허기를 달랜 뒤 일기장을 꺼냈다.



호스텔의 공용 공간은 기본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였다. 로파이(Lo-fi) 음악이 잔잔하게 깔려 있어 글을 끄적이다가 깜빡 잠이 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공용 공간에는 눈길이 가는 두 소녀가 있었다. 미드에서나 듣던 억양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들은 아시아인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문득 그들이 무척 궁금해져 말을 걸까 했지만, 하필이면 이때 내향적인 성격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느새 일기장을 채울 대로 채운 터라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소소하게 귀여운 수다를 떨고 있는 둘의 목소리가 의식을 깨웠다.



“이제 진짜 졸린데... 들어가서 잘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두 소녀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희 담배 피우고 올 동안 테이블 좀 맡아줄 수 있어요?”



갑작스러운 부탁에 (사실 영어 때문에) 당황한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밖에서 돌아온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 테이블에 함께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후 우리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간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5 - 마침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reative Commons, CC)에 따른 본문의 인용을 허락합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브런치 작가 권민재에게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파티라고 쓰고 번개라고 읽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