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재 Jan 17. 2023

미국인으로 사는 것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6

베일에 싸인 두 소녀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내가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We’re from California."
"Oh, really? Wow!"



의심의 여지없이 중국 출신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그들은 명백한 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큰 감탄사가 그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짓 예상됐다. 



언니인 “아만다”, 그리고 그녀의 동생 “캘리”는 한 살 터울의 사이좋은 자매였다. 2주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둘이서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얼마 뒤에는 세계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들이 스스로 소개하기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클러빙(Clubbing)을 즐기는 내성적인(interoverted) 성격”이라고 했다. 먼저 테이블에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제안한 사람 어디 갔냐고!



다양성의 대명사인 미국 다웠다.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매력이자 장벽이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이번 여행을 마치면 싱가포르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오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싱가포르에 사시고, 너희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고, 지금은 둘이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고?" 



두 소녀의 인생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떤 방대하고 자유분방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나로선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들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잠시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미국인의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인은 한국어를 하고, 한국인처럼 생각하고, 한국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인의 정체성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국가적 배경은 미국 시민들이 다름을 인정하는 기민함을 습득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었다. 



한국인인 내게 두 소녀의 배경은 매우 특별했다. 하지만 내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그들에겐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가 오갔다.
우리가 가진 어린 호기심은
잔잔한 대화만으로 몇 시간을
녹일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들에게 유독 관심이 갔던 이유는 그들이 아시아인의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시인할 필요가 있겠다. 동향을 찾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싶었다. 서로의 고민을 안주 삼아 위로를 주고받을 욕심을 부렸다. 그때의 나는 고독에 허덕였고 위로에 갈증을 느꼈다. 마치 중독된 것 같았다.   


   

시계는 어느덧 오후 8시를 가리켰다. 잠자리에 들기에는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으나 생체시계는 얼른 자라고 시위했다. 새벽부터 깨어있던 터라 텐션도 잘 오르지 않았다. 집중력도 흐릿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만다와 캘리는 나와 마음가짐이 달랐다. 클럽에 갈 섹시한 옷을 캐리어에 가지고 다니는 배낭여행자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 그들은 클러빙을 준비 중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들은 내게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반쯤 농담이라고 생각해서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재밌을까?”라고 떠봤다. 그들은 놀라며 이참에 가보자고 했다. 그들은 농담이 아니었다. 



클러빙은 충분히 귀한 경험이 될 수 있었겠지만, 끝내 나는 가지 않았다. 일단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는 결이 맞지 않았다. 결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텐션을 끌어올려도 재미없게 느껴지는 거다. (... 말은 이렇게 해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클러빙 체질인지 아닌지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곯아떨어진 나를 뒤로한 채 그들은 음악과 사람이 블렌딩 된 분위기를 즐겼으리라. 그리고 다음날이 밝았고, 호스텔을 나오기 전에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언젠가 다시 보자고 악수를 나눈 그 장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들의 밝은 에너지는 세상 모든 사람을 웃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곳을 누비고 있다. 언젠가 우연히 만난다면 그때는 필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생의 기억에 끝까지 가지고 갈 존재라고 말이다.     



다음 여행지인 폴란드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우리에게 비친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프셰므스와브"가 떠오른다. 그의 유튜브 채널 "폴최(Polche)(링크)"는 초보 여행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영상을 지팡이 삼아, 폴란드의 역사적 추모 장소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위치한 "오시비엥침"으로 떠난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6 - 마침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reative Commons, CC)에 따른 본문의 인용을 허락합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브런치 작가 권민재에게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타지에서 친구 사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