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15
기차 놓치는 것이 추억이 되는 것도 한 번이면 충분하지, 두 번째부터는 고쳐야 할 습관이다. 이제는 정확한 목적지를 정한 뒤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친구도 사귀었겠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녹색 마을 프라이브루크**도 이참에 가봐야겠다는 일념에 곧장 독일행 기차를 검색했다.
*슈투트가르트Stuttgart: 포르쉐와 메르세데스 벤츠의 본사가 위치한 곳으로 유명한 독일 남부의 한 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녹색 에너지로 도시의 모든 전력공급을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도시. KBS 다큐멘터리와 <알쓸신잡>에 소개되었다.
독일 북부로 향하기 전 방문한,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에서의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녹색친화적이고 공원 산책로가 굉장히 잘 조성되어 있는 뮌헨은 '대도시'와 '평화'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화롭게 섞어놓은 공간이었다.
뮌헨을 지나 슈투트가르트로 향하는 여정의 중간에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코로나에 걸려 만날 수 없겠다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기대감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하는 수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더 견뎌야 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동기부여가 되었던 걸까, 고독과 사색에 한창 신물이 나있던 때에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한 친구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의 배낭여행에 의미와 생기를 다시금 불어넣어 준 이 고마운 친구 카리나의 이야기는 3박 4일간의 로마 여행에서 풀어낼 것이다.
슈투트가르트는 포르쉐와 벤츠의 본사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굉장히 좋은 차를 만드는,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회사라고만 알고 있을 정도로 자동차에는 문외한인 나였기에 슈투트가르트라는 도시는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공과대학 학생으로서 흥미를 느껴 그것들의 박물관에 방문해 엔진과 관련된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했다.
자동차 엔진 기술이 발달한 도시라는 의미를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강력한 출력을 발생시키는 '엔진'이라는 공학적 산물의 발전 과정은 전쟁에 그 근간을 둔다. 군수품인 전차, 운송수단인 기차와 로켓 모두 엔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기계공학 지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것의 급속한 발전을 재촉한 촉매가 바로 전쟁이었고, 슈투트가르트는 북쪽의 프랑크푸르트와 남부의 뮌헨을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근거가 이 도시를 오늘날 자동차 도시로 변모시켰다.
여기서 잠시 나를 고양시킨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크고 작은 규모의 박람회가 1년 365일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 am Main)으로 교환학생 겸 여행을 떠난 선배의 이야기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봉제기계 박람회'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일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막상 가보니 박람회의 규모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 기업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그곳에서 그는 유일하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KIA'를 발견했다.
"봉제기계 박람회에 웬 기아? 내가 아는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아닌가?"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몰아치듯 관계자(당시 과장)에게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기아가 봉제기계 박람회에 참여한 이유부터, 프랑크푸르트 박람회가 기업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 인터넷에서조차 쉽사리 알 수 없는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뜻하지 않게 희소가치 높은 경험을 쌓은 그는 독일에서의 남은 수학을 마친 뒤 귀국했다. 수년 뒤 그는 그 관계자를 팀장으로 다시 만나 뵙게 된다.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는 공학도로서의 꿈에 크나큰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해외 경험을 쌓는 것이 공과대학 학생과 거리가 먼 이야기가 절대 아니라고, 해외로 너의 꿈을 크고 넓게 펼치는 것이 꼭 공학도의 길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내 등을 토닥이듯 격려해 주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녹색과 평화로 점철된 도시, 프라이부르크를 만날 수 있다. 이미 매체에 다수 소개된 바 있는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30년이 넘게 환경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효과가 에너지 절약, 대기질 등으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링크: YouTube)
또한 <알쓸신잡 3>에 소개된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헬리오트롭'은 태양전지판이 자동으로 회전하여 매 시각 최대의 태양광 에너지효율을 창출해 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이자 '쾰른 대성당'으로 잘 알려진 쾰른Köln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리기 위해 찾아간 것은 아니었으나, 쾰른 대성당 하나로 쾰른으로의 방문이 명분을 가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쾰른역을 내리자마자 어두운 색깔의 거대한 성당이 나를 반겼다. 아니, 반겼다는 표현보다는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말이 더 알맞겠다. 그 앞에 서니 마치 대성당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에게 압도되어 내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쾰른을 떠날 수 없으리라."
성당 앞 광장은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굉장한 인파로 붐볐다. 한편에서는 드럼 속주가, 다른 한편에서는 관광객들의 경쾌한 셔터 소리가 들렸다. 틱톡커의 춤사위도 한창이었다. 요즘 같은 쇼츠 시대에 틱톡커 없는 광장은 없겠지,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대성당의 도전장을 받아들이러 발걸음을 옮겼다.
왜인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성당 내부로 들어섰다. 사람 키의 두 배를 훌쩍 넘는 대문,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무릎 꿇고 성호를 긋는 신자들,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들... 대성당이라는 환경은 그들 모두를 영화 속 배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한낱 인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이까지 솟은 기둥과 천장을 보며 경이에 한참을 젖어있을 즈음,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테인드 글라스에 조각된 형상이 모두 제각기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여태껏 스테인드 글라스는 같은 조각이 반복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모든 형상 하나하나가 존귀한 신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니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지금 당도해 있는 이 장소는 신자들로 하여금 시공간을 초월하도록 만드는 초현실적인 곳이었다.
이 같은 경이로운 경험에 이어 쾰른 대성당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건축물을 둘러보고자 계획을 몇 가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세인트 니콜라스 바실리카,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그중 더 가까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차편을 알아보았다. Nothing But Thieves의 락스프릿을 충전하며.
♬ Amsterdam (by Nothing But Thieves)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15 -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