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담, 작고 느린 것의 아름다움

25.04.15(화) 맑음

by 김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까운 날씨였다. 하원길에 너와 함께 공원으로 향했다. 반시계 방향으로 빙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오늘 같은 날엔 굽어 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엔 색이 없을 텐데, 만발한 벚꽃 아래를 지나니 그림자마저 연분홍 같았다. 너를 안아 올려 꽃냄새를 맡게 해 주고, 가장자리에 쌓인 꽃잎을 주워 네 손 위에 올려주었다.


공원엔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네 시선은 벚꽃보다 강아지들에게 더 오래 머물렀다. 잠시 멈춰 서더니, 내 다리에 달라붙어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당기며 속삭였지.

“쓰담쓰담해봐도 되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네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너를 쓰다듬으며 웃었단다. 그 까닭을 넌 몰랐나 보다. 넌 강아지가 가는 방향으로 내 손을 잡아 이끌었어.

“그래, 강아지 주인한테 가서 물어보자.”


너의 이끌림에 내가 발걸음을 떼자, 넌 신나게 뛰기 시작했어. 기대에 부푼 네 마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 듯했지. 하지만 강아지들은 생각보다 걸음이 너무 빨랐어.


네 작은 발로 부지런히 종종걸음을 쳤지만, 점박이도, 까망이도 금세 멀어져 버렸지.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힘이 들 법도 한데 다리 아프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다리보다는 눈앞에 두고도 닿지 못한 좌절감이 네게 더 아프게 다가온 듯했다.

“다 집에 가버리네!!! 쓰담쓰담! 쓰담쓰담하고 싶어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좀 더 빨리 달려보았지만, 그 마음만큼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어. 네 발소리보다 빠른 건 강아지들의 뒷모습이었지. 네가 뻗은 손끝은 자꾸만 허공을 잡았어.


포기하려던 찰나, 공원 벤치 근처에서 새하얀 비숑 한 마리를 만났단다. 무지갯빛 쫄쫄이 옷을 입어서 커다란 솜사탕 같은 얼굴이 더 도드라졌지.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아주머니의 얼굴도 참 인자하셨고. 넌 숨을 고르고 용기 내어 아주머니 앞에 섰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말했지.


“쓰담쓰담해봐도 되죠?”

“그러렴.”

“이름이 뭐예요?”

“단추.”

“단추야!”


네가 반가운 듯 부르자, 아주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지.

“단추는 늙어서 귀가 잘 안 들려. 이름을 불러도 못 들어.”


그때 알았단다. 네 느린 걸음과 작은 목소리를 기다려준 건, 비슷한 키에 빨리 걷지 못하는 노견이었구나.


어림과 늙음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작고 연약한 것들이 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쓰다듬는 법을 단추에게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새로운 어린이집 적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