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우 Jan 29. 2024

직업병과 설거지 공학

세상에는 관성이란 자연의 법칙이 있다.  사람에게도 이 법칙이 습관 혹은 세계관이란 이름으로 어김없이 적용이 된다.  하고 있는 일이 익숙해지고 습관이 된다면 이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년을 하고 특별한 일이 없이 집에 있다 보면 집안일을 거들어야만 하는데 가장 시급한 일이 하루 세번 해야만 하는 설거지와 집안 청소이다.  특히 손님이나 자식들이 왔다 가면 설거지 더미가 하늘 높이 쌓이게 되고 이는 파김치가 되어 있는 집사람을 대신하여 영락없이 영락없이 내 차지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일을 하는 방식이 내 집사람과 판이 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전공이 시스템 전공인지라 설거지 조차도 습관처럼 익숙하게 하던 대로 따른다. 시스템 전공에서는 분석, 설계, 이행, 마무리로 네 단계를 나누어 일을 처리하거나 시스템을 구축한다. 먼저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 더미를 한참을 생각해 본다.  먼저 각 그릇에 대한 재질 분석과 크기 분석을 생각해 본다.  예컨대 재질로는 딱딱한 금속류의 프라이 팬, 밥솥, 부엌칼, 수저 등이고 그리고 자기류는 접시, 밥그릇, 유리 컵, 그리고 쟁반과 같이 플라스틱 재질도 있다.  그리고 크기도 각각 다르다. 밥솥과 같이 큰 것, 접시와 같이 중간 것, 그리고 수저와 과도와 같이 작은 대상도 있다. 그래서 설거지 대상에 대한 범주화가 끝나면 이제 공정 (프로세스)를 생각할 차례이다.  

작업대 (싱크대)가 협소한 만큼 일단 크고 무거운 것부터 시작해서 작업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솥과 같이 딱딱하고 크고 무거운 것은 작업 일 순위이다. 아직 내용물이 있다면 다른 그릇에 덜어 놓거나 쓰레기 통과 싱크대 배수구에 나누어 버려야 한다. 다음은 깨지기 쉬운 것이 다음이고 부피가 작지만 깨지기 쉬운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피가 작고 딱딱한 물체가 대상이 된다.  

그 다음 공정은 세제를 적용하는 작업이고 그 다음은 새물로 헹구어 설거지 건조대에 안착시키는 일이다.  먼저 1차 공정 후 즉 세제로 훔친 후 모아 둘 곳을 확보해야 한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자칫 깨지지 쉬운 사기그릇 위에 솥과 같이 무거운 것이 올라가면 깨지거나 아니면 미끄러져 엄청난(?) 재난이 나타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첫 단계 공정은 이러한 공간의 크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만약 무리하게 1차 공정을 진행하면 좁은 싱크대 공간이 거의 지뢰밭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공정을 완벽한 계산하에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눈짐작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대강(?)의 분석과정과 공정과정에 대한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정리가 되면 이제 과감하게 세제와 수세미를 갖다 놓고 마마 장갑을 낀다.  물론 공정에서도 소위 PERT CPM 공정관리 기법을 생각하여 설거지 하면서 병행처리 할 일들 즉 세탁기 스위치를 올리거나 커피 물을 끊이거나 혹은 라디오를 틀어 놓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공정이 끝나고 모든 세척물들을 설거지 건조대에 안착을 하면 그제야 장갑을 벗고 카피잔을 들고 소파에 앉는다.  물론 이러한 복잡한 과정은 집안청소, 냉장고 정리, 하다 못해 옷장 정리까지 해당된다. 이 과정이 빠르면 10분 길면 20분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없이 집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쉽고도 빨리도 끝낸다.  

그래서 나름 부듯하게 일을 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하고 있건만 하는 집안 일마다 집사람과 충돌을 한다. 집사람은 평생을 통해 얻은 노하우 즉 나름 효율적인 질서와 정리방식이나 처리 방식을 터득하고 있다.  그것이 본인에게는 편안하고 익숙해서 빠르기도 할 것이다.  집사람의 관점에서는 내가 하는 방식이 참으로 우수꽝스럽기 짝이 없을 터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그냥 하면 돼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바깥일 핑계로 집안 일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처음 접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게 익숙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한 방식대로 분석하여 설계하고 이행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자위한다. 

그래서 결국 고맙다는 말 대신 핀찬만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사람 관점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그냥 빨리하면 되지 굳이 복잡하게 생각해서 어렵게 일을 하냐고 힐난하는 것이다. 

사실 관성은 옳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가속이 붙을 뿐만 아니라 혹고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번 습관으로 뿌리를 내리면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런 탓에 예전에는 어머니과 남정네를 부엌에 들이지 않았다.  부엌일에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냉장고나 찬장도 내가 손을 대면 영락없이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자신의 정리 방식이 나와 달라 급한 조미료 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나 역시 그녀가 정리한 물건을 찾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집사람을 설득하던가 내가 집사람 방식을 따르던가 그 것도 아니면 서로 신경을 끊고 각자가 편한대로 하는 대안이 있으나 결국 편안하게 마지막 대안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서로의 노력을 줄이고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서로 적응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같이 집사람과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과거에는 서로가 다른 세계와 할 일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는 같은 공간에 같은 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뜻하지 않은 갈등들이 도처에 발생한다. 그래도 모든 것이 원만하게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은 갈등을 사랑으로 융화시키는, 서로의 오랜 기간 농익은 감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