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일기 : 서울어린이대공원
소풍 가기 좋은 5월의 어느 아침, 어린이대공원을 걸었다.
빛바랜 것들은 빛바랜 대로, 낡은 것들은 낡은 대로, 그 자체로 보기 좋았다.
세월의 흔적이 번드르르하게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공원 입구를 나섰다.
서울에서 살아온 이라면, 어린 시절이든 어른이 된 뒤든, 누구나 이 공원을 한 번쯤 걸어봤을 것이다.
하루 종일 걸어도 다 둘러보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다. 올림픽공원보다 약간 작은 정도.
‘어린이’와 ‘대공원’이라는 단어 조합은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다양한 놀이시설과 동물원까지 품은 규모를 생각하면 또 납득이 간다.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
이 공원은 영동대교와 도산공원이 완공되기 약 6개월 전, 서울 동남권 개발 가속화의 흐름 속에서 문을 열었다.
특히 1972년 10월, 유신 선포와 계엄령 이후 음산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 한가운데에서,
이 공원은 연꽃처럼 화려하게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그래서일까.
공원을 걷다 보면 여러 시대의 흔적과 층위가 교차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어린이’를 교화 대상으로 바라보던 옛 문구들, 각종 기념석들. 단순한 놀이의 장이 아니라, 어린이를 향한 어른들의 기대와 의도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사실, 오직 이용자만을 위한 ‘순수한’ 공원은 많지 않다.
보이지 않는 선들, 흐릿한 덧칠, 그리고 시대의 진심과 욕심이 늘 공간 어딘가에 스며든다.
1909년 창경궁의 창경원 리뉴얼이 일제의 정교한 공간 정치의 장이었듯이,
1973년 어린이대공원 역시 전략적 기획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19세기 중반, 쿠데타를 일으킨 나폴레옹 3세가 파리 대개조를 추진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도시 공간의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권력의 욕망과 일상의 요구를 함께 품는다.
이 땅의 운명은 기구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장교 골프장이었고, 해방 후에는 육군사관학교 부지가 되었다.
그리고 1973년, ‘어린이대공원’이라는 부드럽고도 장엄한 이름으로 시민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공간의 이력을 직시하고, 자질구레한 역사를 품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이들과 우리 모두를 위한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어린이’ ‘대(vs.)’ ‘공원’
‘어린이’ ‘대(large)공원’
오늘, 나는 이 조합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의 공원을 상상해 본다.
‘어린이’ ‘대’ ‘공원’이란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설계한 정원 속에서, 우리는 꽃과 나무 사이에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기면 충분할까?
어쩌면 어린이대공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Made by Adults”, “Designed by Experts”라는 상표를 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설계하고 이름 붙인 공원이 아니라,
아이들의 발걸음과 질문에서 출발하는 공간.
어린이들에 의해 기획되고, 디자인되고, 시공되고, 관리되는 공간.
다음 리뉴얼이 있다면, 그 시작은 이런 상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어린이대공원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어린이대공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도시일기 #공원읽기 #어린이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