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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un 11. 2024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들

제주도 여행에서 소소히 감동한 이야기

2년 만에 찾은 한국. 한국 방문은 늘 설레기도 하지만 다른 여행과 다르게 약간의 부담+책임을 동반한다. 일단 각종 서류 정리, 밀린 은행 업무, 병원 방문 등… 숙제처럼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처리해야 하고, 또 사회성 에너지가 낮은 나에게 너무 잦은 만남들… 결국 에너지 방전만 남기고 만다. 그래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보겠다는 욕심에 무리해서 약속을 잡다 보면 결국 휴가 끝에 더 피곤해져서 비행기를 타게 되는 경우도…


그래서 이번 방문 중에는 중간중간 진짜 여행을 하나씩 넣어서 힐링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중 가장 기대한 여행지는 제주도! 국민학교 저학년 때 가족들과 여행한 뒤 처음 방문하는 제주도. 귤, 음식, 바다, 한라산 등 기대할 것이 너무 많지만 그중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올레길이었다. 걷고 뛰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또 한국에서는 많이 걷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에 이번엔 아이들과 셋이 한국에서의 트레킹을, 특히 아름답기로 소문난 올레길 트레킹을 두근두근 기대하며 제주도로 왔다.


제주도는 교통이 안 좋아 차 렌트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첫 숙소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 공항에서 바로 버스로 이동!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에 이미 난 하트 뿅뿅이었다. 글쎄 골목의 끝이 바다가 아닌가!!! 아이들 역시 ‘엄마, 여기 낭만이 있다!’라며 함께 공감하고 있었다.


숙소가 너무 예쁘고 깨끗하며 주인아저씨도 친절 그 자체! 바다에 흥분한 우리들이 저녁 식사 후 밤늦게까지 산책한 남원포구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드라마에서 본 편의점에서의 식사를 너무나 기대했던 아이들 덕분에 (?) 아침은 각종 간편식으로 하기로 하고 잔뜩 사서 손에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올레길 5코스의 날

올레길 5코스는 주로 바닷길이다. 가끔 바다 자갈길을 걷기도 하고 산길을 걷기도 하며 탁 트인 바다를 끼고 걷기도 한다. 13km 남짓이라 하였으나 우린 중간중간 갯벌에서 구경도 하고 음료도 마신 탓에 총 15km를 걸었다. 싱가포르에서 강하게 단련된 아이들은 덥지도, 습하지도 않다며 씩씩하게 걸어 주었지만 마지막엔 약간 방전된 듯… 하지만 여행에 드는 수고와 피로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맨 처음 만난 사람은 무려 올레길을 처음 시작하신 올레길 재단 이사장님! 처음엔 바다 옆 돌길을 한참 가다가 혹시 우리가 길을 벗어난 게 아닌가 헤매던 중, 지나가시던 내공 충만해 보이시는 어르신들께 여쭈었더니 시원하게 ‘여기 맞아요. 저기 리본 걸려 있는데. 어머! 여기서 잘 안 보이는구나. 하나 더 달아야겠다.’ 하시며 친절히 알려 주시고 가셨다. 바닷가에서 쉬시는 걸 지나쳐 갔는데 또 어느 만큼 가다 보니 길에서 또 마주치게 되었다. 가벼이 목례하고 지나쳤는데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걸 들으시곤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다. (알고 보니 제주에선 어디서 왔냐는 질문은 흔한 질문임)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 교민이라고 하자 어떻게 올레길을 걷게 되었냐며 대화를 시작, 이사장님인 걸 알게 되었고, 기자 생활을 마치시고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다녀오신 후 고향인 제주도에 오셔서 올레길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걸 이야기해 주셨다. 중간에 일행이 있으셔서 헤어지고 한참 걷다 보니 사진이라도 찍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잠시 음료를 마시며 쉬기 위해 카페에 들러 쉬고 나오는데, 어머나!! 세 번째로 이사장님과 마주치다니!!! 이미 오랜 친구인 양 이사장님께서 우릴 일행에게 인사시켜 주셨고 나도 이번엔 용기 내어 사진 찍자고 말씀드렸다! 길가에서 반가운 모습으로 사진 한 방 남긴 후 다시 서로의 길을 떠났다.


두 번째 만남은 하효맘 공장이다. 하효맘 감귤과즐은 동생이 싱가포르에 보내줘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과즐인데 딸이 정말 좋아해서 이번에 제주 오면 꼭 먹기로 약속했던 과자이다. 그런데 글쎄 5코스가 끝나고 숙소로 가는 길에서 갑자기 하효맘 공장을 만나게 되었다. 난 못 보고 지나칠 뻔한 것을 딸이 보고 ‘엄마, 과즐 여기 있어요!’ 하고 발견!!

안에 들어가 과즐 한 봉지 사고 일하시는 분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덩달아 반가워하신다!! 아니, 이건 정말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거 아냐?? 이번 여행, 완벽해도 너무 완벽.


이뿐이 아니다. 길 가며 만나는 제주 할망들. 길을 물으면 친절히 알려 주시고 앉았다 가라, 제주도가 어떠냐, 남편은 어디 있냐 (돈 벌고 있죠 ㅎㅎㅎ), 애들은 옷을 왜 이리 춥게 입혔냐 등등 다정한 잔소리들을 하신다. 수줍게 ‘안녕하우꽈’ 인사하며 지나가면 올레길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치 홍보대사인 것처럼 열심히 알려 주셔서 한참을 서서 듣고 지나갈 때도 있다.

제주 할망들, 고맙수다


여행은 누군가는 사소하게 지나쳐 가는 모든 풍경을 특별하게 바꾸어 주는 마력이 있나 보다. 여행의 틀 안에 넣고 보면 다 아름다워지는 걸까? 내년에 산티아고 가기 전 연습으로 온 올레길인데, 제주 올레길에 빠져 내년에도 제주에 또 오게 생겼으니 어쩌면 좋아. 내일 걸을 6코스는 35년 전 엄마 아빠 할아버지 동생들과 놀러 와 묵었던 서귀포 칼 호텔을 지나간다고 한다. 추억 여행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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