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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May 09. 2023

02. 내 몸이 정말 원하는 것

나를 사랑하며 비건 하기

비건을 지향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보다도 내가 내 유혹에 걸려넘어가는 것이었다. 늦은 밤, 무언가 단 거나 짠 게 먹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올라온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뭔가 씹고만 싶고 피곤할 때는 초콜릿 하나 먹으면 기분이 해소될 것 같다. 아니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편의점에 들어간다. 과자 코너에서 과자 봉지들 뒷면을 들춰보며 고민한다. 어떤 게 가장 건강하면서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까. 색색깔의 과자들 앞에서 서성거리기를 몇 분... 먹을 게 없다. 뒤의 성분표를 들춰보면 horrible하다. 쇠고기가 전혀 들어가있지 않을 것 같은 과자에 쇠고기가 들어가있고, 초콜릿 과자에는 죄다 우유가 들어가있고, 쇼트닝, 합성착향료,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인공성분들이 잔뜩 들어가있다. 그나마 대두, 밀만 들어가있는 과자에는 팜유가 빠질 수 없다. 맛있으려면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야 하는 건가.


겨우 고르고 골라서 집어든다. 팜유는 눈 감아주고 꼬깔콘이나 나쵸칩을 고른다. 때론 왠지 지금 내가 원하는 걸 안 충족시켜주면 나중에 아른거릴까봐 논비건 과자를 고르고 만다. 계산대 앞에 서서 바코드를 찍는다. ‘안돼. 후회할거야…!' 마음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시하고 재빨리 편의점을 나간다. 


그런데 막상 먹고 나면 별 거 없다. 첫 입부터 ‘아, 맛없다’라고 느낄 때도 많다. 초콜릿은 진짜 초콜릿이 아니라 인공적인 초코 맛이 나고, 단 것은 너무 달고, 짠 과자들도 좀 먹다보면 기름진 게 확 느껴진다. 채식을 하고 원물 그대로 먹는 걸 지향하다보니 입이 고급이 돼서 이제 편의점의 왠만한 과자들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첫 입 먹자마자 당장 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봉지 하나 트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그리고 어차피 산 거 남기면 또 음식물 쓰레기 만드는 것 같아서, 그리고 오늘의 죄악을 오늘로 끝내고 싶어서, 끝까지 먹어치운다. 


후회감과 자괴감이 몰려온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했다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통에 과자 봉지들이 쌓여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해 애썼던 순간들이 무상해지는 것 같다. 건강한 음식, 비건, 환경을 외치는 사람이 뒤에선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게 부끄럽다. 야식은 수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밤 늦게 뭔갈 먹으면 평균적으로 4시간 뒤에야 잠에 들었다.


이렇게 유혹이 오는 순간에도 비건을 지속하려면 미리 비건 주전부리들을 쟁여놔야 한다. 그런데 비건 베이커리들은 보통 저녁에 일찍 닫는다. 나의 유혹은 주로 밤에 찾아오는 데 말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해놓으면 나는 또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어버려서 그냥 안 사두느니만 못하게 돼서 안 사두고 있다.


이렇게 나는 완벽하지 않은 비건이다. 이 짓을 거의 매일 반복했을 때는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비건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하기 힘든데, 나는 나 혼자 있어도 힘든 것이다. 내가 나를 꾸짖고 비난하니 나랑 같이 있는 순간도 외로웠다. 이걸 남에게 털어놓기도 어렵다. 평소에는 약속에서 건강식과 비건식을 주장하더니, 이럴 땐 또 너 맘대로 먹는다며 모순적인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기 쉽다. 지금은 비건 친구들이 많아져서, 그리고 나보다도 훨씬 안 좋게 먹는 비건 친구들이 많아 마음이 편해졌지만, 그때 당시엔 편하게 털어놓을 친구도 많이 없어서 마음이 갑갑했다. 


내가 그래서 그동안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비건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나보다. 나는 나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들을 보니까. ‘건강’만이 나의 채식의 이유였을 때는, 내가 건강에 기대하는 바에 따라 최대한 건강하게 먹고, 또 안 좋은 걸 먹을 때는 내가 그 대가를 감수하고 즐겁게 먹으면 됐다. 다이어트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의 밥그릇에 대해서도 뭐라할 것도 없었다. 안 좋은 거 먹으면 그 사람 책임이니까. 그런데 동물과 환경을 위해서 비건을 하기로 하니 이건 마치 신념처럼 되어서 더 많은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타인이 보았을 때도 더 모순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타인의 밥그릇을 정죄하게 되는 것처럼 됐다. 그게 나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내 건강뿐 아니라 환경과 동물을 위해서도 하면서 의식적으로 ‘비건’이라는 단어를 거부했던 것이다.


여전히, 후회할 짓을 반복하고 있지만 난 비건을 계속할 것이다. 어차피 완벽함이란 없는 것이니까. 오늘 잘 못했으면 내일 잘 하면 되니까. 오늘의 잘못은 오늘 일기에 반성할 점에 써두고 훌훌 털어버리자. 자책감에 너무 빠져있지 말고 조금 잊어버릴 필요도 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땐 또 새로운 나, 새로운 정신을 가지고 외친다. “해보는 거야!”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더 나은 방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자. 당신도 나와 같은 문제로 ‘(건강한) 비건이 어렵다’라고 느끼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팁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냉장고에 과일을 구비해둔다. 

다음에 또 밤늦게 뭔가를 먹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을 때, 아예 안 먹는 것은 어렵다. 피곤하거나 마음이 불안정한 상황은 또 온다. 야식을 아예 안 먹는다고 몇 번 다짐해도 감정이 극단적일 때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그럴 때마다 괜히 먹고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더 나은 대체제를 찾아두는 게 좋다. 나는 과일을 추천한다. 과일은 쟁여둬도 과자보다 폭식을 해서 한 번에 먹어치울 확률이 적다. 수분이 많기 떄문이다. 과자들과 가공식품들이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아주 바싹 튀겨지고 구워져서 수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일은 식이섬유도 풍부하고 수분이 많아 배가 금방 차니 불안정한 당신의 마음과 입을 확 채워줄 수 있다. 보통 내가 과일을 한끼로 먹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것 가지고 배가 차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사과 한두 개를 한 끼로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배가 굉장히 차서 다른 게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그리고 과일은 한 시간이면 소화가 되기 때문에 밤 10시에 먹어도 소화시키고 잠에 들 수 있어서 수면에 방해도 덜 된다. 요즘 과일 값이 참 비싸다고는 하지만, 편의점에서 단숨에 이거 저거 다 사먹으면 5천원 나오니까 그거나 그거나다. 그냥 미리 사두는 게 오히려 과소비를 예방한다. 


2. 편의점에 갔을 때는 견과류나 맛밤, 오트밀크와 같은 건강한 간식을 찾는다. 

과일도 사뒀지만, 집에 들어가기 전, 불이 환히 밝혀져있는 편의점에 유혹이 되고 말았다면, 잠깐 숨 좀 쉬고 과자 코너로 향하는 내 발을 막는다. 그냥 형형색깔의 과자들을 쳐다보지도 말자. 잠깐 고민만 하는 것도 그 과자들 나중에 생각나서 먹으러가게 된다. 쳐다보지도 말고 견과류 코너로 가서 제일 좋아하는 견과류 하나 고르자. 견과류 옆에 맛밤도 괜찮다. 한 봉지 먹으면 꽤 만족스럽다. 그리고 초콜릿이 땡길 때는 오틀리 초코를 추천한다. 250ml이고 꽤 맛있고 달아서 초코 먹고 싶은 욕구 어느 정도 해소해준다. 물론 다른 과자들이 떙겨서 편의점에 들어간 걸 수 있겠지만, 일단 입에 뭔가 넣어주면, 조작된 욕구가 아니라 몸이 좋아하는 걸 충족시켜주면 그 위기의 순간을 보다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욕구를 잘 구별하자. 

습관적으로 군것질에 손이 갈 때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자. 정말 내 몸이 그걸 원하는 것인가? 

입에 뭔가 넣고 싶을 때, 내 몸은 사실 물을 마시고 싶은 걸 수 있다. 초콜릿이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이 땡길 때, 내 몸은 사실 잠이 필요한 걸 수도 있다. 뭔가로 내 배를 꽉 채우거나 마구 씹을 게 필요할 때, 내 몸은 사실 불안한 일에 압도돼있는 걸수도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고 싶을 때, 나는 사실 지금 해야하는 일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걸 수도 있다. 


이런 욕구들을 무시하고 먹는 것으로 도피할 때, 그것은 습관이 되고 매번 나 자신을 파괴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일시적으로만 '해소'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환경과 동물을 위한 행동에서도 멀어진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쉬며 내 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비건이 어렵냐 쉽냐가 문제가 아니다. 비건을 계속하냐 그만두냐가 문제가 아니다. 매번 이러한 상황들이 왔을 때, 조작된 욕구에 속아 넘어가서 안 좋은 음식들로 내 몸을 채우고 또 나를 탓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나의 완벽하지 못함을 탓하기에 앞서 나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나의 몸과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를 덜 미워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주자.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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