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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May 10. 2023

08.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성경은 채식주의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고등학교 때, 나는 생활과 윤리 과목을 통해 환경 윤리를 접했다. 인간중심주의, 동물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 각각의 주의들에 있는 학자들의 주장과 그들의 차이점들을 배웠다. 그러나 환경 윤리를 배웠다고 해서 당장에 채식을 시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윤리학 과목은 늘 각각의 주장과 근거가 이렇게 있다고 살펴보게 해줄 뿐 어떤 것이 맞다, 틀리다 라고 정해주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그 주제로 수업을 한 날 점심, 나는 고기를 먹으며 생각에 빠졌다.


사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왔고, 그렇기에 나의 사고는 상당부분 기독교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중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동물은 신의 섭리에 의해서 인간이 사용하도록 결정되어 있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동물중심주의의 기반이 된 공리주의 학자 벤담, 그리고 이를 발전시킨 피터 싱어처럼 동물이 느끼는 감정과 고통 또한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때 당시 공장식 축산에 대해서 잔혹한 다큐를 본 것도 아니었고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학대당하고 도살당하는 것들이 공감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과연 정당한가 라는 의문은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믿는 기독교대로라면 인간중심적인 사고인데 무엇이 맞는가?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기독교인이자 동물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두 가지의 충돌에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행동해야하는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뒤 시간을 내어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그것을 행동변화까지 이어지기까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육식이라는 모순을 모순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이 세상은 육식이 당연한 사회라 무뎌졌던 것 같다.


그러나 다시 기후위기 이슈가 세상에서 주목을 받고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전염병이 전세계적인 펜데믹으로 직접 우리가 두 눈으로, 이 몸뚱아리로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 탐욕적인 육식의 결과를.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던 세상인가?


인간이 먹을 거리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창세기 1장 28-29절에 나와있다.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을 각각의 종류대로 만드시고 심히 보기 좋으셨던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첫번째로 인간에게 주신 음식은 식물이었다. 또 “다스리라”, “정복하라"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동물학대와 환경파괴를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으나 실은 조화롭게 살라고 하는 말씀이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세상은 이것이었다. 인간이 죄를 심각하게 지어 노아 대에 육지의 살아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전까지…


홍수가 멈추고 노아의 방주가 육지에 이르렀을때 하나님은 또 다른 명령을 주신다. 창세기 9:1-4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이 때에는 홍수가 나서 식물을 먹을 수가 없으므로 차안책으로 고기를 먹도록 허용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피째 먹지는 말라고 하신다.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뒤에 사람이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고 하시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시니 사람이 피를 흘리는 것과 짐승이 피를 흘리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사실상 하나님은 육식을 허용하셨다. 또 뒤이어 나오는 성경 구절들에서도 제사를 동물을 잡아 드리도록 하고 사람들이 귀빈이 왔을 때 고기를 대접하는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시대의 육식과 지금 시대의 육식은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 더 많은 돈을 더 적은 비용을 들여 얻기 위해서 어두컴컴한 공장에 가두고 동물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키운다. 성장촉진제를 맞혀 더 살을 찌우고, 맛있고 연한 고기를 얻어내기 위해 마취를 시켜 가장 긴장을 풀었을 때 도축을 한다. 좁디좁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돼지들이 병이 걸리면 항생제를 맞힌다. 새끼들을 낳게 하기 위해 정자를 암컷들에게 주입해 강제 임신시키고,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시킨다. 하루에도 수백만 마리가 인류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죽어나간다. 유튜브에서는 많이 먹고 맛있게 먹는 것을 미덕으로 보여주며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먹는 유튜브 먹방을 찍는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동물들을 먹이기 위한 곡물들을 생산하기 위해 수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태워지고 농약이 뿌려지며 불모지로 파괴되어 간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신 아름다운 푸른 지구인가? 그렇게 인간이 살기에 최적화된 인류 관측 이래 가장 최적화된 행성인 지구는 더이상 인간이 잘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기후재해, 전염병, 식량위기, 기형아 출산, … 인간은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잘 다스리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자기의 탐욕에 못 이기어..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하나님은 인간의 탐욕에 대해 명확히 경계하고 계신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니라.” 

18,19세기 인간의 이성을 내세워 지배자라며 인간의 자연과 동물 파괴를 해도 된다고 한 이들은 과연 그 근거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가. 단지 정당화한 수단으로 그것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수많은 식물종, 동물종 각각의 종류대로 하나하나 손수 지으시고 돌보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만들어진 인간중심주의 윤리이다.


때때로 기독교인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나의 채식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육식이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그들에게 육식이란 여전히 ‘자연스러운’ 것인가 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러한 끔찍한 공장식 축산의 과정과 환경 파괴 영향에 대해 말한다. (암컷 돼지를 죽을때까지 강제임신시키고 출산시키는 게 어떻게 자연스러운가?) 한편으로 성경은 매일 읽는 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토대로 설득하기에는 나의 성경적 지식이 부족함을 느껴서 언젠가는 제대로 공부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이 에세이를 쓰면서 직접 구절들을 찾아보게 됐다. 결국 가장 처음 하나님께서 주셨던 먹거리는 채식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인간을 사랑한 신이 가장 먼저 준 먹거리가 가장 인간에게 이상적이고 건강한 먹거리가 아니었을까.


성경이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여서는 안 된다. 그동안 가장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그 반대로 동물과 자연을 파괴하는걸 정당화하는 데에 앞장서왔다. 이제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다스리라 하신 말을 다시 생각하며 창조주의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로서 자연과 동물을 잘 돌보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지향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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