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한창 내년도 업무분장으로
폭풍 속에 있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은근히 거대해서
그 안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이 진행된다.
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누군가 알아주든 말든,
사실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애씀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학교의 시스템이다.
교실에 있는 색종이 하나조차
세금으로 구매하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구매할 수 있던 것이고,
어릴 적에
대충 가방에 쑤셔 넣었던
가정통신문 한 장마저
윗사람의 결재가 나야지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학교의 일들을
11-12월 사이에
학교 안의 구성원들과
쪼개어서 일을 나누고
그다음 해에 정해진 대로
각자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원래 나는 이 시기마다
업무분장표에서
내 점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일 쉬운 업무,
제일 편한 업무를
매의 눈으로 찾아왔다.
일을 맡기고 싶어 하는
교감, 교장선생님이랑
기싸움도 하고,
일을 어차피 맡을 거라면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온갖 딜도 했다.
창피하지만
심지어 신규 선생님한테
일은 이렇게 받는 거라며
으스댄 적도 있었다.
자그마한 글자로 적힌 일 하나로
교무실에 찾아가서
작년엔 없던 일이었는데
올해에 왜 갑자기 적혀 있냐며 싸우기도 했다.
그런 내가
며칠 전 교감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내년에 복직하잖아.
학교에 지금 부장할 사람이 없어.
부장 좀 맡아줘.
그러며 비어있는 학년이랑 업무들을 얘기해 주셨다.
고민을 좀 하다가
다음 날 전화드렸다,
업무부장은 되었고,
1학년 부장을 하겠다고.
참고로 학교에서의 부장은
일반 회사와 달리
정말로 덧없어서,
월마다 7만 원씩 수당 주는 게 다다.
근데 일은 진짜...
눈덩이 굴러가듯 커진다.
승진에 뜻이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닌
보통의 99% 교사들에게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이
학교 부장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타부타 말없이
1학년만 10반이 넘는 대형 학교에서
1학년 부장을 하겠다고 했던 건
서이초 막내 선생님 생각이 나서다.
서이초 막내 선생님은
1학년 6반을 담임했었다.
이제는 학교 안에서
누군가가 외롭게 죽어가게 두고 싶진 않다.
같이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은 잘 몰라서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같이 옆에서 서있어 줄 거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버티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나는 세상은 바꾸지 못할지도 몰라,
그래도 학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
그래서 같은 학교에 있는 지인한테도
연락을 안 했다.
학교 안의 사정을 듣고
혹시나 바뀔 내 연약한 심지가
걱정이 되어서.
후회를 해도
온전한 내 결정으로
후회를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몇 개월 뒤에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미쳤나 보다, 생각할지도 모르지.
아직까지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