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나중에 검사를 해보니
김의 아이큐는 80 정도 되었다.
내가 의사가 아니니
진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김은 앉아 있는 것과 집중하는 걸
참 힘들어했다.
입학식 다음 날.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들은
부모 없이 처음 혼자서 오는 학교이니
바짝 긴장을 한다.
잔뜩 얼어서 쉬는 시간에도
어색하게 눈치를 보며
앉아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김은
1교시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꼬마들끼리 아기자기하게 앉아서
쉬는 시간에 놀았으면 좋겠어서
깔아두었던 매트가 있었다.
김은 수업 시간에
매트 위에서 방방 뛰었다.
부모 없이 아이들이 등교했던 첫날,
김이 예사롭지 않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에는 수업 시간에
우리 반 꼬마가 나에게 다가와서
작은 귓속말로 소근소근 말해줬다.
선생님, 김이 밖에 나갔어요.
책상 서랍 정리하기가 수업 목표라서
다른 아이에게
책상 서랍 정리하는 걸 알려주고 있다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날 화장실에서 한 번,
복도에서 두 번
김을 데려왔다.
내가 김을 데리고 오는 동안
반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해야 할 것들을
척척하며 기다려주었다.
배려만 받을 것 같은
어린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을 배려해 줄 때가 있다.
그렇게 며칠
언제 갑자기 나갈까 봐 걱정이 되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봐주다가도
고개를 들어서 김을 찾았다.
고맙게도 김이
교실 안에 있어주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김은 장난감 블록들로
칼을 만들어서 놀기도 했고,
또 자기의 연필과 지우개로
병정놀이를 하기도 했다.
김은 아직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덧셈과 뺄셈을 능숙하게 했으나
덧셈과 뺄셈에 대한 설명은
1분도 듣지 못했다.
학교에 적응했는지
수업 시간에
학교 현관까지 재빠르게 달려간 김을
반으로 데리고 오던 날,
김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 아셔야 하실 것 같아서요.
간단히 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가타부타 긴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신다면 학교에 오셔서
참관하시는 것이 좋겠다고만 전했다.
다음 날 김의 어머니는
복도 바깥에서
뒷문의 유리창으로
친구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하루 종일
혼자서 블록을 가지고 노는
김의 모습을 보셨다.
혹시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울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그 얼굴은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저 마음을 내가 감히 어떻게 헤아릴까.
아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김의 어머니랑 그날 오후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 이후에
나는 틈만 나면 요리조리 교실을 벗어나서
도망치고 달려가는 김을
찾아내고 데려오는데 도사가 되었다.
지금 같았으면
별달리 방법이 없더라도
교장, 교감선생님께
어떻게든 도와달라고 얘기했을거다.
그런데 그때는
미련하게 나 혼자만 해결하려 하며
우리 반의 이야기가
교실 문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바보 같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바보 같은 선생님과 다르게
똑똑한 우리 반 아이들은
김을 같이 지켜봐 줬다.
김이 어딜 가는 것 같으면
가지 말라고 말도 하고 잡아줬다.
선생님이 김을 데리고 오는 동안
자기 자리에 앉아
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끼리 서로 상의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우리 반에 김이 있어서
우리 반 아이들은 한 뼘 더 성숙해졌다.
아이큐가 80이나 된다고
특수반을 거절당한 김을 위해서
지적 장애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특수학급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김이 더 이상 어딘가로부터
도망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김이 수없이 교실을 뛰쳐나갔던 건,
교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했던 건
이유가 있었을거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는 더 이상 김의 담임이 아니라
지나가는 학교 어른 중 하나로 몇 년을 지냈다.
학교 안에서 종종 본 김은
어느새 훌쩍 커서
내 키만큼 자랐었다.
아마 지금은 나보다 키가 더 커졌을거다.
김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기도 했지만
무관심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그게 못내 아쉽고 미련이 뚝뚝 떨어져서
같은 학교에 있을 때는
부러 김을 잡고 잘 지내냐고 물어봤다.
김아, 잘 지내고 있어?
그럼 약간은 멍하고,
나랑 여전히 잘 눈 마주치지 않는 김은
어딘가를 보면서 "네네." 하고 달려간다.
매번 어디를 그렇게 자꾸 달려가는지.
저러다가 넘어지지는 않을지.
김이 이제는 더 이상 어딘가로 도망치지 않고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았으면 좋겠다.
잘 지내주고 있다니 내가 고맙다.
(꼬마를 특정하지 않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