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우리 사회의 진보성
청룡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 인공지능과 우리 사회의 진보성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시간이다.
화려했던 검은 토끼의 악장은 막을 내렸고, 푸른 용이 무대로 올라왔다.
2023년 한 해에만 과학계와 문화예술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상온 K-초전도체의 논란은 전 세계 과학계를 신선한 충격에 빠뜨리기도 하였고, 비연예인 최초 방송 연예대상의 주인공인 기안84의 인도 방문기와 마라톤 완주 같이 재미와 울림을 주는 다양한 화젯거리가 넘쳐났다.
이러한 변화의 조각은 세상이라는 1000피스 퍼즐의 일부를 보여주는 힌트이며,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갈 때 생기는 꼬리 모양의 구름운처럼 비행기의 움직임을 예측할 단서를 제공한다.
난기류가 심한 우리 사회의 구름 속에서는 기상 레이더가 더욱더 필요하다.
1) 인공지능의 등장은 산업 구조와 개인의 역할을 점차 바꾸고 있다.
2) 지식재산 제도는 발명가와 창작자를 보호하여 사회를 발전시키는 장치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기존 IP 시스템과 충돌 지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3) 새로운 세대가 등장함에 따라 기존 사회 시스템의 헤리티지를 간직하면서도 새롭게 변화하는 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AI)의 등장은 뜨거운 감자였다.
Open AI가 chat-GPT를 통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상용화하였고, 두 달 만에 월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바둑판을 정복했던 구글의 알파고가 쌓았던 아성을 손쉽게 무너뜨렸다. 이제 이세돌의 신의 한 수와 같은 인간의 저항으로는 인공지능의 물결을 막기는 어려워 보일 정도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했던 영화 "그녀(Her)"가 10년 만에 현실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동료나 선배에게 질문하기보다는 휴대폰 속 인공지능이 유능한 비서이자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찐친에게 물어보는 영화 장면이 데자뷰된다.
송길영 작가는 신간 "핵개인의 시대"를 통해서 인공지능(AI)의 등장에 따른 개인의 역할 변화를 예보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이 일상과 업에 침투하면서 개인의 역할이 바뀌고, 이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 역학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는 이러한 부분집합의 변화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새롭게 정의된 '핵개인'의 역할을 고민할 때이기도 하다.
개인이 살아오며 남긴 비행운처럼 개개인의 경험으로 층층이 쌓인 취향과 개성이 그 중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공지능이 일상에 침투하면서 이러한 개인의 역사와 고유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이 인공지능 활용에 반대해 1960년대 파업 이후로 반세기 만에 대대적인 파업을 한 이유도 우리가 되돌아볼 지점이다.
여러 작품을 AI가 학습하고, 스토리 라인과 대본의 대부분을 AI가 작성하여 작가들은 마무리 작업에만 참여한다면? 시나리오 작가의 역할과 비중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작품 10편을 집필하고, 작가 한 명이 감수만 하게 된다면? 나중에는 작가 한 명의 역할도 점차적으로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불만이 섞여 있다.
개개인의 역할이 인공지능 활용자의 역할로 재구성되면서 생기는 파장이다. 인공지능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활용하면 사람의 얼굴을 손쉽게 합성할 수 있다. 한 차례 배우의 얼굴을 촬영한 이후에, 다음 영화에서부터는 배우가 연기하지 않더라도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영화를 여러 편 만들 수 있다. 이미 CG가 활성화된 지금, 딥페이크 기술을 통하여 모든 액션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고 음성을 합성해 배우의 목소리까지 모방한다면 배우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기 마련이다. 그 배우의 말과 행동을 모두 학습한다면, 1회 촬영 이후에는 사실상 노 개런티로 출연하게 될 수 있다.
번역이나 CG 작업 등과 같은 영화 산업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종들도 인공지능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현실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장한 AI는 어느새 영화 산업 전체를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나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같이 고유의 창작 능력이 영화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의 스타일은 언제든지 모방 가능하기에, 창작자의 '고유성'에 대해 인공지능의 도전은 극심한 반발을 만들어 낸다. 기술력으로는 언제든지 구현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고유성'을 아직 가지지 못한 창작자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 창작자도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지식재산 시스템'에도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와 기술을 개발하는 발명자의 동력을 상실케 하고,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근간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 업계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있다. '진보성(Inventiveness)'이라는 단어이다. 기술의 진보가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특허 제도는 '기술의 점진적인 발전'을 원동력으로 삼아 산업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특허는 기술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마중물로 활용된다. 새로운 기술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고, 사람의 일손을 줄여 사회 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발명가가 전력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고성능 배터리를 개발하게 된다면, 전력 생산에 필요한 석탄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만약 선진국의 농업 기술을 수입해오던 국가가 병해충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스마트 농법을 새롭게 개발하였다면? 기술 개발이 식량 부족을 해결하고 자국 1차 산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식재산 제도는 일방향 함수로 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사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관개 역할을 한다. 그 근간은 지식재산 창출과 사회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식재산 시스템은 '진보되고 개량된 신기술'에 대해서만 기술을 독점하여 수익을 극대화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정 기간 독점이 끝나면 연구개발의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여 사회를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목마른 자, 우물을 파더라도 마중물이 없다면 펌프질을 할 수 없다.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을 보호해 주기 위하여 '특허'라는 마중물을 붓고 새로운 기술이라는 물을 우물에서 뽑아내야 한다. 한바가지 정도의 마중물로 사회 구성원 전부에게 새로운 기술로 인한 혜택이 돌아간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기술의 진보를 만들어 내어, 산업과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대전제에서 시작된다. 특허권과 저작권은 그 대상을 달리할 뿐, 기술과 문화를 융성하게 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한다.
기술을 개발하는 발명자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를 보호해 줌으로써, 이들이 만들어 낼 세상의 변화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재산 시스템은 자연인의 기여를 위주로 설계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과 이를 활용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게 되면서, 새로운 IP 시스템의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SNL 코리아의 대표 코너로 'MZ 오피스'가 인기이다. 'MZ 오피스'는 사회 초년생에서 이제는 실무의 중추로 자리 잡기 시작한 MZ 세대와 기성세대가 직장에서 마주하는 충돌과 마찰음을 코미디 소재로 활용하였다.
에어팟을 낀 신입사원과 어딘가 불편한 부장님의 긴장 관계를 '맑은 눈의 광인'과 '젊은 꼰대' 캐릭터로 승화하며 세대별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쌍화차를 즐겨 마시는 할아버지와 얼죽아를 외치는 손주는 서로를 생경하게 바라보기 마련이다. 각자의 시대를 살아온 경험의 차이는 취향과 가치관 차이를 만들어 내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의 공간에 있도록 한다.
세대 간 인식과 문화의 차이가 조명되었다면, 공감의 장이 열린 곳도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의 군사반란을 다루는 영화로 천만 관중의 사랑을 받았다. 30년 남짓한 시간을 뛰어넘어 그 장소에 빨려 들어가는 긴장감을 선사하고, 한 세대를 뛰어 넘어선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근현대사를 교집합으로 교감할 수 있는 장을 탄생시킨 것이다.
고교 시절 한남동에서 벌어진 역사의 현장에서 생생한 경험을 한 김성수 감독의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전두광과 이태신의 대립의 서사에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빛바랜 마지막 사진 한 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역사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을 시나리오로 풀어내고, 배우의 몰입력을 카메라와 스크린을 통해 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시대의 벽을 허물어 내는 스크린의 미학이다.
뉴스 기사의 만능 치트키 'MZ'는 이제 '알파'로 변모하고 있다.
'알파 세대'는 2010년부터 2025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MZ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는 시점에서, 알파 세대는 지금까지 축적된 시대의 문화를 자양분 삼아 새로운 변화와 진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변화의 구심력이 된다. 기존에 잘 작동하던 사회 시스템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전면 리뉴얼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알파 세대에게 컴퓨터보다 익숙할 인공지능은 기존 사회 시스템과 더욱 다양한 지점에서 충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세대가 만들어낸 시스템을 바꾸면서도, 과거의 경험을 녹여낸 변화와 진보의 시도가 필요하다.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의 등장이 십수 년간 잘 운영하던 로컬 백화점에게 경종을 울린 것과 같다.
팝업 스토어에 몰린 고객의 관심을 이해하고, 노티드 도넛이나 카멜 커피와 같은 F&B 브랜드를 차례로 입점시켜 최신의 트렌드로 리뉴얼하는 백화점과 같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글. 손인호 변리사. Copyright reserved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