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나는 믿을만한 존재
딸들과 함께 집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딸들과 함께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보았습니다. 인스타그램을 깔긴 했으나 음료수 한 병 공짜로 얻자고 맛집을 해시태그 하는 일이 아니면 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지천명의 아줌마는 섬뜩한 이 영화를 굳이?? 했습니다. 그러나 자막 읽기 싫어서 한국 영화만, 스릴러가 아니면 돈 내고 볼 이유가 없다는 취향 똑 부러지는 작은 아이 덕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죠.
스마트폰과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는 영화 속 주인공 나미에게 작은 아이는 공감을 넘어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그렇지,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하다니까." 연신 맞장구를 치며 영화를 보던 작은 아이.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나미를 보며 "왜 자기 계정을 모든 사람에게 오픈해? 이해가 안 되네." 하는 말에는 살짝 안심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은 SNS를 통해 나미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아내니까요.
술을 잔뜩 마시고 버스에서 떨어뜨린 스마트폰, 하룻밤 지났을 뿐인데 범인은 교묘한 수법으로 나미의 스마트폰에 스파이웨어를 심어놓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감청합니다. 단 3일 만에 나미의 일상은 모조리 파괴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걸 잃었고,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것이죠.
영화 속, 아빠는 딸 나미에게 범인을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아빠의 촉이 먼저 반응한 것이죠. 그 장면에서 큰 아이는 "그러게~ 아빠 말을 듣지." 하더군요. 나미가 스파이웨어가 깔린 걸 뒤늦게 알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자 믿을만한 사람에게 가서 하룻밤 머무는 게 좋겠다고 권유합니다. 그때 작은 아이가 "아빠한테 가야지. 왜 이제서야 아빠가 생각난 거야? 나 같으면 진작 엄마, 아빠한테 갔을 텐데..." 합니다. 그래도 이 녀석들 아직까지 믿을만한 존재로 부모를 떠올리는군요. 괜한 부모 부심이 올라와서 혼자 흐뭇해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리모컨을 딱 내려놓으며 "에이~ SNS 하지 말라는 거네. 너무 무서워. 사람이 제일 무서워. 난 혼자는 못 살 거 같아."라는 작은 아이. 참고로 작은 아이는 스무 살이 되면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ㅎㅎ
초연결과 최첨단의 편리가 만들어낸 디지털 세계의 그늘이 공포가 되어 돌아온 밤입니다.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오싹했다는군요. 너무 끔찍하고, 찝찝해서 오늘 밤 잠자기는 글렀다는 아이의 말에 큭큭 웃어봅니다.
극장에서 봤더라면 마음의 소리는 묻혔겠지요? 자갈치 과자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하며... 스마트폰과 SNS를 멀리하길 바라는 제 마음의 소리도 딸아이에게 가닿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