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나면 이삭줍기 하는 여인처럼 하나둘 떨어져 있는 옷가지며, 식탁 의자에 아무렇게나 널린 수건들을 치우느라 과장을 좀 보태 허리를 펼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도 잘 걸고, 양말도 가지런히 벗어서 빨래통에 넣어두더니 어째 갈수록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야성의 그녀들만 남았네요. 귀찮다고, 바쁘다고, 하려고 했다고... 이런 말들을 웃어넘기다가 그만... 제가 뿔이 나고 말았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직후, 정확히는 작은 아이가 겨울방학식을 한 그날 저녁. 거~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쫑알쫑알 수다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저는 긴급 가족회의를 요청했습니다. 밥상을 치우고, 기분 좋게 둘러앉은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멘트 하나를 날렸습니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해."
아이들은 두 팔 벌려 환호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시는 어쩌다 용돈 말고, 엄마가 주는 일정액의 정기적인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엄마는 돈으로 아이들의 습관을 바꿔보려고 시도 중인 것이죠. 다행히 먹혔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 자리에서 본인 핸드폰으로 뚝딱, 카** 뱅크 계좌를 텄습니다. 물론 카** 미니 체크카드도 신청했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를 갖는 일만큼 어른처럼 느껴지는 일이 또 있을까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입금만 하고, 출금은 해본 적 없는 자물통 같은 통장, 아이들에겐 없어졌다해도 하나도 아쉬울 게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을테죠.
용돈으로 아이들의 습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선 아이들의 씀씀이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잦아지는데 반해 감사함은 점점 옅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소비는 친구들과의 사교모임(절대 공부모임 아닙니다)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밥 먹고, 공차 가고, 노래방을 가거나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영화를 보는 등 어른처럼 소비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마땅히 놀거리가 없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이미 만날 약속을 정해놓고, 제게는 확인인지 통보인지 알 수 없게 이야기하고, 손을 내미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너희 용돈은 얼마면 좋겠어?"
지금부터는 고도의 협상 기술이 필요합니다. 교통비 포함이냐, 간식비 포함이냐, 문구류 구입 포함이냐 등등등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집니다. 이런 자세, 적극적이고 좋아요. 역시 자신의 문제가 되니 토론이 활발합니다. 그리하여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구를 만나서 쓰는 비용, 친구 생일선물 지출, 교통비 정도면 된다는군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헐헐~~~)
막상 용돈이 정해지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지 "문구류는 엄마한테 미리 말하면 사주는 거지?", "교통비가 오른다던데 그땐 어떡하지?" 뭐 이런 걸 묻더군요. 부족할 걸 걱정하는 아이의 혼잣말에 이삭줍기 종료 목표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했습니다.
"부족한 건 벌면 되지. 기분 좋게 집안일 거들고, 용돈도 벌고... 어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한 법!! 일단 용돈의 대가로 초등학생이 코웃음 칠 미션 5가지를 요구했습니다. 그것들은 부끄럽게도 양말 내놓기, 옷 치우기, 쓰레기 버리기, 텀블러 내놓기, 수건 걸기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죠. 미션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 1,000원, 발견 즉시 엄마의 계좌로 벌금 입금!! 일방통행식 제안이었음에도 아이들은 순순히 따르겠다고 하더군요. 표정만 봐서는 '내가 그걸 못할까 봐?' 내지는 '그동안 내가 좀 너무했네'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용돈을 벌 수 있는 집안일 거들기에 대한 적정한 노동비도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그리하여 설거지 2,000원, 빨래 널기 1,000원, 빨래 개고 넣기 1,000원, 화장실 청소 4,000원, 분리수거 회당 1,000원. 그동안 방을 닦고, 이불을 까는 것이 유일한 아이들 몫의 집안일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들쭉날쭉해서 이참에 시간도 함께 정했습니다.
용돈이 각자의 계좌에 입금되고, 미션을 실천한지도 보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벌금도 몇 번 내긴 했지만 비교적 약속을 잘 지키고 있어서 '머니 파워'의 위력에 놀라는 중입니다. 진작 할 걸 그랬나봐요. 또 집안일을 기쁘게(?) 돕고 얼마간의 용돈도 벌었다죠? 작은 아이는 돈이 없다고 벌벌, 친구와의 약속은 취소하면서도 좋아하는 TNX 오빠들의 앨범은 배송비까지 부담하며 구입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답니다.
"엄마, 데이트할까?" 작은 녀석이 불쑥 물어옵니다. "나 큐카츠 먹고 싶은데..." 데이트가 목적이 아니라 돈가스가 목적이었군요. 예전 같으면 친구랑 먹었을 텐데 자기 돈은 좀 아깝나 봅니다. "엄마가 살 거지??" 헤실헤실 웃는 아이 얼굴에 저도 모르게 그만 "그러자" 하네요.
용돈의 마법,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