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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r 02. 2023

방학 총결산

'머니의 위력'은 '마미의 잔소리'를 하찮게 만든다


'선생님이 미칠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칠 때쯤 개학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라오를 타고 흘러나옵니다. 엄마이자 선생님이기도 한 청취자의 사연 덕분에 몇 분의 글벗님들이 생각났습니다. 새 학년 새 교실에서 낯설게 시작할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우선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전해야겠어요. 그리고 오늘 입학하는 자녀를 두신 글벗님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길고 긴 방학이 끝난 기쁨을 애써 누르고, 우아하게 커피 마시며 딴짓(브런치 글쓰기) 중입니다.


두 달여에 가까운 긴 방학이 지겨울 만도 한데 개학 며칠 전부터 "학교 가기 싫어!!"를 연발하는 작은아이. 중3이 꽤 부담스러운가 봅니다. 고2가 된 큰아이의 겨울방학은 방학답지 않았습니다. 방학은 작은아이보다 하루 먼저 시작했지만 며칠 쉬고, 새해부터 자율학습을 위해 다시 학교를 나갔기 때문이죠. 1월 중순, 사흘의 공식적인 등교를 마치고 1학년 담임선생님과는 작별했습니다. 종업식은 분명 2월인데... 2학년이 이미 시작된 느낌?


외고는 전공어에 따라 한 반 내지 두 반이 개설됩니다. 두 반의 경우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생들이 섞이지만 한 반만 있는 경우 입학할 때의 친구들이 그대로 쭉 3년을 가죠. 저희 아이가 그런 경우라서 오로지 바뀌는 건 담임선생님뿐입니다. 물론 교과 선생님들이 바뀌긴 하지만 그건 여느 고등학교와 다를 게 없으니까요. 여하튼 외고의 시계는 일반고 보다 조금 빠르게 맞춰져 있습니다.


자율학습, 그까짓 거 빠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할까봐... 자신의 의지를 믿을 수 없어서... 점심 급식을 모조리 신청한 큰아이. 급식 신청도 방과후 수업 신청도 모든 걸 스스로 하는 딸이 대견합니다. 이렇다 할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긴 방학이 끝나버린 게 너무 아쉬워서 방학을 며칠 남겨두고는 맛집 탐방, 영화 관람 등으로 조촐한 방학 총결산 자축 파티를 했습니다(뭐든지 세리머니가 있어야 시작과 끝맺음이 되는 것 같은 착각).


양꼬치엔 칭따오? 2년만 참으면 큰아이와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뒤집을 필요없는 돌돌 양꼬치구이, 신기한 건 제가 촌스러워 그런거죠?

맛난 음식을 먹을 땐 알아서 입들도 술술 열리니 요 틈을 놓치지 않고 "너희들 이번 겨울방학은 어땠어?" 하고 물었습니다. 큰아이가 먼저 "난 이번 방학 나름 선전했어. 수학 파느라 다른 공부를 좀 소홀히 했지만... 하려고 마음먹은 건 다 했어. 몰아서 해서 그렇지." 하더군요. 영어와 국어 지문 분석을 매일 하나씩 빠뜨리지 않고 하고 싶었으나 역시나 학원 숙제가 만만치 않아 매번 후순위로 밀렸다고 했습니다. 깔끔한 총평이네요.


작은아이는 "난 이번 방학이 너~~~~무 좋았어. 내가 좋아하는 TNX 오퐈들 브이로그도 실컷 보고, 내가 보낸 사연을 오퐈들이 읽어주고... 아~ 꿈같아." (이런 낭만적인 소녀 같으니라고...) 한참 침을 튀어가며 오빠들 얘기에 열을 올리다가 멋쩍었는지 "나도 이번 겨울방학에 계획한 거 거의 다 했어. 3학년 과학 인강 다 들어간다고. 세 개밖에 안 남았어." 하네요.


실은 이번 겨울방학, 작은아이에게 특별히 자유와 자율을 선물했습니다. 중2 겨울방학은 학창 시절 중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자, 스스로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였다는 걸 큰아이를 키우고 나서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기상시간, 취침시간, 보충하고 싶은 공부, 읽어야 할 책 등을 모두 스스로 정하게 했습니다.


자유와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대신 방학이 시작되기 전, 계획표를 만들어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해야 할 것만 간단히 적어 넣은 엉성한 계획표지만 마구 칭찬했습니다. 이후에는 전혀 그 어떤 간섭이나 방해 없이 놔두었죠. 「루팡의 딸」시리즈를 읽겠다고 세운 계획도, 3학년 과학 인강을 전부 들어보겠다던 야심찬 다짐도 모두 잘 지켜냈습니다. 밥과 간식, 잠과 화장실 용무를 빼고는 거의 방콕이었던 작은아이. 그동안 '이걸 원했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답니다.

엉성한 계획표지만 폭풍 칭찬을...

두 딸 덕분에 저 또한 편안하게 제 일에 집중하며 이번 방학을 보낸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도 아이도 행복한 방학을 보낼 수 있었던 비결이 혹시 용돈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오빠들의 굿즈를 하나씩 사 모으며 행복해하는 작은아이, 내돈내산 다이어리를 손에 꼭 쥐고 애지중지하는 큰아이를 보면서 역시 '마미의 잔소리' 보다 '머니의 위력'이 더 세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네요. :D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

'마미의 잔소리'를 뛰어넘는 '머니의 위력'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방학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이러면서 서서히 독립을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긴긴 방학 동안 '삼시 세 끼'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모든 글벗님들과 독자님들께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를 전하며...  이제부턴 파뤼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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