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에 부딪혀 사라지기 직전 파도는 가장 크게 보인다.
이 세상에 영원한 트렌드는 없다.
지금은 오로지 돈, 경제력, 재테크가 가장 중요한 가치처럼 보인다. 주요 기사는 주식과 부동산과 비트코인에 관련된 것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들은 모두 돈과 경제적 능력을 말하고 있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곳에서 같은 가치를 말한다. 마치 이러한 가치가 최우선이 되는 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메가트렌드는 돈이 아니었다. 2017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메가 트렌드 유행어 중 하나는 바로 'YOLO' 즉,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시드머니를 만들고, 투자를 하고, 또 돈을 불리는 것이 중심이 되는 트렌드가 아니었다. 저축해서 돈을 넣어두어도 이자가 낮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그대로였는데, 그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이 정말 달라졌다. 그때는 돈을 재테크로 굴린다는 개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혀 없었다. 다만 돈이 생기면 여행을 가고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탕진해버리는 것의 유행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당시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는 최소한 3-4명은 욜로를 적어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욜로족을 자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재테크를 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한다.
어떻게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5년 전에는 페미니즘이 점점 더 강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아 나갔던 때다. 이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 들도 그때부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기 시작되었고, 조금씩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나갔다. 페미니즘에 있어서 만큼은 어떠한 방향성이 지속될 것 같았다. 점점 더 사회가 양성평등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 그 당시 정치인들은 여성들을 우선시하고, 친페미니즘 슬로건과 정책을 내걸었다. 그리고 약 5년쯤 지난 뒤, 놀랍게도 안티 페미적인 발언으로 젊은 남성층에게서 인기를 얻은 정치인이 야당 대표가 되었다. 성별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여성 인권의 신장은 주춤하고 있다. 5년 전에 누가 이렇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 트렌드의 정점의 순간, 오히려 그때부터 그런 관심사나 생각들이 반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내가 10년 전, 아니 5년 전에 입었던 옷만 봐도 참 촌스러워 보인다. 저 때는 저게 이쁘다고 입었고 나름 만족했었는데, 지금 보니 왜 이렇게 부끄러울까. 이 세상에 영원한 유행은 없다. 분명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었었고, 그 트렌드를 따랐다. 그 트렌드가 정점에 다다른 순간에는 특히나 더 했다. 뉴스도, 방송도, 책도, SNS도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지금 이 것이 정답이고, 그래서 유행하는 거라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그 근거는 납득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와 근거들이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똑같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오히려 YOLO라는 것이 과하게 유행했기 때문에, 욜로 하다는 골로 간다. 그렇게 단순히 펑펑 써버리는 것보단 재테크를 하고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한다라는 트렌드가 오히려 반작용으로 생겼을 수 있다. 좀 더 멀리, 이전으로 가보자. 부모세대, 즉 베이비부머 세대는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했다. 결혼은 무조건 해야 했고, 결혼하면 자녀를 낳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지금의 MZ세대는 그것을 보며 자랐다. 너무 극단적으로 결혼과 자녀를 당연시했고, 그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오히려 그 극단적인 치우침이 MZ세대로 하여금 비혼, 비출산을 선택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어떤 한 극단에 치우친 의견이 '진리'이다.라고 말해지는 순간, 오히려 그 진리에 반하는 생각들이 조금씩 싹트게 되는 것이다.
어떤 걸 말하고 싶은 거냐면....... 지금은 진리라 생각되는 것들이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 미래가 10년 20년 뒤가 아니고 당장 4-5년 뒤에만도 그렇다. 옛날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옛날에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지금의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2배는 뭐 아마 최소 5배는 더 빠를 것이다. 5년이 지나면 옛날의 25년이 지난 것과 같은 정도의 변화의 흐름이 된다.
지금 내가 이 시점에서 세상이 하라고 하는 일, 해야 하는 일 들을 하지 못해 좌절하는 순간이 있을 때, 그 세상의 진리는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 정말 당장 5년만 지나도 언제 그렇게 다들 주장했었나 싶게, 표정을 싹 바꾸고 다른 소리를 할 수도 있다. 5년 전 욜로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5년 전 부동산이 아직 이렇게 오르지 않았을 때 구입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들은? 주식을 하면 패가망신한다고 말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5년 만에 대한민국 인구의 대다수가 교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5년 전 욜로를 외치던 사람들은, 지금은 다른 진리를 외친다.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지금 주식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마 5년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쳤기 때문에, 오히려 아마 더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이 극단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아졌을까? 무엇이든 극은 극을 부른다.
지금 이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우울과 고통, 그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유발하는 세상의 지침서가 평생 영원할 것처럼 가정하고 두배 세배로 괴로워하는 건 필요 이상의 일이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세상의 강조가 극단적일수록, 오히려 그 주장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세상이 트로트를 너무 많이 좋아할수록, 오히려 앞으로의 트로트는 지금보다는 인기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의 수많은 고통까지 미리 예상하여 더 분노하는 건 논리적이지 않다. 결정적으로 문제 해결에는 단순히 분노과 괴로움의 감정만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
지금 나의 고통이, 지금 현재에 유효한 것임을 확인한다. 고통을 내 가정과 상상 속에서 미래로 그 유효기간을 연장시키지 않는다. 마음은 차갑게, 머리는 뜨겁게. 되도록 그 분노와 괴로움을 나의 이성의 연료로 삼는다. 그 연료로 냉철한 이성을 가동한다.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아무리 비관적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무언가를 찾아본다. 하다 못해 전쟁 상황이라도, 지금 현재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무언가는 있다. 그게 아주 작은 참치캔일지라도, 내 배낭에 넣고 도망가는 것과 그냥 맨 몸으로 피난 가는 것은 다르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공포가 나를 잠식할 지라도, 일단 그 공포는 극단에 다다른 순간 앞으로는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 일이 가져오는 효과가 미미해 보여도, 꾸준히 해나간다면 어떤 거대한 변화를 가져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일이 단순한 회피성의 도박이나 마약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공부하고 부딪혀보고 경험하는 것은 나의 자산이 된다. 그 경험의 하루가 쌓이고, 한 달이 쌓이고, 일 년이 쌓이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 흐름이 바뀐다. 그렇게 바뀌어 가다 보면 상상할 수 없었던 역전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어느 게임이나 패자부활전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사람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도 꽤나 많다. 처음에는 매우 불리해 보이지만, 다시 올라오는 그 기세와 동력은 처음부터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이 이길 수 없다. 보통 5판 3선 승제 승부에서, 첫 2판을 내리 지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이 대역전하는 플레이 내용으로 3번째 게임을 역전한 경우, 즉 2:1이 된 경우. 확률 적으로는 여전히 2승을 한 사람이 이길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보통은 극적인 내용으로 3번째 게임을 역전한 쪽이 3:2 최종 승리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잠시 바닥을 딛고 밀며 일어나는 건, 오히려 더 큰 가속도로 달릴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지금 어떠한 흐름이 극에 달해 있고, 그 흐름이 나를 괴롭고 좌절하게 할 때. 오히려 이 극단적인 치우침이 꺾임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이 극단의 끝에서 시작되는 작은 물결이 미래의 큰 파도로 올 수 있다. 우리는는 그 파도를 타면 된다. 파도가 가장 커지는 순간은, 그 파도가 해변에 부딪쳐 부서져 소멸되기 직전이다. 어떤 흐름이 밀려와 커졌다는 것, 곧 사라질 수 있다.
아 물론 영원한 게 있긴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했던 나의 감각. 어떤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웠고, 무아지경을 경험했던 고유감각은 인생을 관통하여 내 안에 남는다. 그 영원함은 일시적인 세상의 트렌드보다 강하다. 내가 어렸을 적 모든 관심과 노력을 쏟았던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의 무언가는 언젠가 YOLO 같아질 것이다. 세상의 말은 늘 한결같지 않다. 세상은 변덕이 심하고 오지랖 넓은 상사다. 어제는 칭찬하더니 내일은 혼낸다. 오늘은 혼나는 날이지만, 아마 내일은 또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 나는 내 할 일 하고 내 행복 찾으며 지내면 된다.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