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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Dec 13. 2021

임신 초기 졸업을 축하드립니다(12주~15주)

나의 첫 임신 이야기

저희 센터는 이제 졸업이에요. 축하드려요.” 임신 11주까지의 검진을 담당하는 아이희망센터에서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함박웃음을 지었는지 모른다. 그 인사를 받으며 센터를 나오는데, 처음 그 센터에 고민을 거듭하고 초조하게 앉아있던 날이 생각나서 울컥했다. 사람마다 조금씩 이 졸업의 시기는 다르겠지만, 나는 임신 9주 차 검진에서 아이희망센터를 졸업하고 10주 차부터는 연계된 산과로 옮기게 되었다. 사실 9주 차 검진 이후 정기 검진은 1차 정밀초음파가 있는 12주 차였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복통과 두통 때문에 10주에 한 번 더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통증이 시작된 것으로 보였고, 생각보다 강력한 입덧을 경험하며 11주 차에 휴직을 하게 되었다. 임신 12주 1차 정밀초음파를 보러 갔던 날은 완전히 아기와 나에게 집중하기로 한 첫 주였다.


이전까지는 초음파를 보러 가도 당연하지만 아기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사람이 되어 가는 중인 존재에 가까웠다. 10주에 다리처럼 보이는 것을 휘적대는 것을 보긴 했지만 몸의 여러 부위들이 구분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 시기엔 많은 임신부들이 부르는 ‘젤리 곰’이라는 애칭처럼 팔다리가 있는 젤리 덩어리에 가깝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 와중에 움직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신비함을 더해주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 12주에 했던 1차 정밀초음파는 정말 신세계였다. 다만, 코로나19로 모든 보호자의 진료실 출입을 금지하는 기간이라 그 순간의 귀여움과 신비로움을 남편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안타까웠다. 이제는 사람의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었고, 머리와 몸통, 손과 발, 팔과 다리가 모두 보였다. 꼬물거리며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빨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12주도 너무 아기가 작기 때문에 눈코입을 보거나 장기 등 자세한 모습을 보기엔 어렵다. 초음파실 선생님도 아기가 너무 작은 시기라 아무리 정밀초음파래도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전신사진을 찍으려고 아기 얼굴이 정면으로 화면을 바라보자, 나와 남편을 닮아 매우 오똑한 콧날이 흐릿한 영상에서도 티가 났다. 아직 12주밖에 되지 않은, 9cm짜리 아기가  와중에 나를 닮았다는 사실이 너무 귀엽고 웃겼다.  1 초음파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변화에 대해 알릴 용기가 생겼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축하의 메시지를 보다 보니 내게 가족이 생기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함께 기뻐해 준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누구도 아기를 가지는 일에 대해 결혼을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다음 단계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아준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고, 순수한 축하가 큰 기쁨이 되었다. 특히, 사실 내게 티 내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셨지만 누구보다 아기를 기다렸던 시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커다란 꽃바구니에 내 이름을 적어 우리 집으로 보내셨다. 남편과 연애하면서, 그리고 결혼하고 살면서 꽃을 받아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렇게 큰 꽃바구니는 난생처음 받아보았다. 살고 있는 지역이 멀고, 인터넷을 아주 편하게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내게 이 꽃을 몰래 보내려고 알아보셨을 정성에 놀랐다. 어머님은 내게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축하한다고 하셨다. 부담이 될까 봐 내게 직접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남편과 통화할 때마다 아기 계획은 언제쯤이냐며 늘 조심스럽게 묻던 일들이 생각났다. 물론 남편이 스피커폰으로 통화한다는 것을 어머님이 모르셨기 때문에 내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더욱 언제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너무 일찍 알렸다가 좋은 소식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임신 12주의 정밀초음파 사진, 영상과 함께 임신을 알리는 일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사람들에게 임신을 알리자 다들 태명이 뭔지를 물어보곤 했다. 사실 태명은 아기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4주 이후부터 부르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그와 무관하게 태아를 내 아이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태명과 아기 이름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태명은 평생 갈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다들 귀엽고 부르기 좋은 별명처럼 짓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기가 뱃속에 있는 동안 내내 부를 이름이기 때문에,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남편과 둘이서 고민을 했다. 우리가 사랑한 증거이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부를까 하다가, 너무 흔한 것 같아 ‘랑이’로 부르기로 했다. 사실 아기가 태어날 예정일이 2022년이라 호랑이띠 아기가 되기 때문에 (호)랑이라는 뜻도 있었다. 만삭이 되는 2022년까지 뱃속에 건강하게 있다가 호랑이띠로 태어나라는 뜻과,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찾아온 아기라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 태명이었다. 그렇게 아직 랑이는 듣지도 못하는 이름을 나와 남편은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흔하지는 않고 귀여운 뜻을 가진 우리의 태명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임신 초기라고 부르는 12주를 지나면서, 행복하고 좋은 것들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야  관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는 기형아 1, 2차 선별검사였다. 검사는 혈액검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1차와 2차 사이에는 4주의 간격이 있다. 그리고 2차 검사가 끝날 때까지는 전체 결과를 알 수 없다. 즉 12주 차에 한 번, 16주 차에 한 번 채혈을 해야 하는데 실제 결과는 최소 17주가 되어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위험도를 분석하는 질환은 총 3가지로, 다운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신경관 결손을 크게 본다. 산모의 연령과 과거력, 가족력 등에 따라 권하는 검사는 이것보다 복잡하고 정밀한 검사가 될 수도 있고, 이 검사 결과에 따라 양수 검사를 추가로 시행해야 할 수도 있다. 임신부에게 거쳐야 할 큰 3가지 관문이라 불리는 것 중에 하나가 이 기형아 검사이다. 나머지 두 개는 장기 등을 면밀히 살피며 다른 기형이나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2차 정밀초음파와 임신성 당뇨 검사라고 한다. 입덧을 처음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교과서적 지식과 실제 임신부가 느끼는 각종 검사의 무게가 얼마나 다른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만 31세이지만, 한국에서 나이를 세는 방법으로는 33세로 산전 기형아 선별검사에서의 고위험군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나이가 정말 중요하지는 않고, 확률이 낮다고 해도 정밀검사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할 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많은 아이들을 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님들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는 잠시 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기형아 선별검사 1차와 2차 사이에 나는 초음파를 한 번 더보기로 하고, 14주 차 진료를 받았다. 조금 이르면 이때부터 아기의 성별을 알 수도 있다고 해서 기형아 검사는 잊고 다리 사이를 집중해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아기는 벌써 10cm 정도로 자라고 있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엄마와 나처럼 좋은 사이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아기가 알게 될까 봐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적극적으로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알 수 있는 시기가 오자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16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초음파를 한 번 더 보기로 한 점도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뱃속의 아기는 다리를 꽁꽁 가리고 사이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다. 성별을 못 보니 아쉽긴 했지만, 아기가 조금 더 커서 사람 티를 내는지 꼬물거리며 이쪽 손 저쪽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너무 귀여워서 2주를 그저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은 임신을 하고 나서  피부가 나빠졌으니 아들일 것이다, 입덧으로 고기를  먹고 과일을 많이 먹으니 딸일 것이다라는  매우 비과학적 추측을 쏟아냈지만 나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거쳐야 할 다른 관문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3교대를 하면서 일할 때 밤샘 근무만 되면 이명이 들리는 경우가 아주 흔했고 결국 시야가 차단되면서 기절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 증상이 내 병력의 특이적 증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 증상이 갈수록 자주 나타나는 걸 느껴서 온갖 검사를 하다가 심장 판막 문제를 발견했다. 다행히도 심각하지 않아서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 아니었고, 건강과 커리어를 위해 3교대를 하지 않는 직장으로 옮기며 운동을 시작해서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고 그 후로 했던 검사에서도 특이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임신을 하면서 중기에 접어들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류량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자궁을 확장하고 아기가 자랄 공간을 확보하면서 아기 혈액량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달리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치의 선생님이 순환기내과에서 심장정밀초음파를 할 것을 권하셨다. 16주 이전까지는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나는 근처 대학병원에서 임신 14주 차에 정밀 심장초음파도 보게 되었다. 임신한 상태로 그런 검사를 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되도록 빨리 결과를 들을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주셔서 긴장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내 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심장 판막 문제는 예전보다 크게 나빠지지 않은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임신 12주를 지나 15주가 되기까지 3주 동안, 병원을 다니는 것과 사람들에게 내 임신 사실을 알리는 등의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역시나 입덧에 관한 것이었다. 임신 7주가 되기도 전에 시작되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매우 제한했던 입덧은 사실 12주 차까지만 해도 이게 정말 끝이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심했다. 이제는 태반을 통한 영양 공급이 시작되기 때문에 언제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조금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것보다 거의 모든 종류의 고기를 먹지 못하다 보니 콩 단백질 외에는 단백질 섭취가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두부나 계란도 매번 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12주가 지나면 점점 입덧이 덜하게 될 것이라며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마지막 입덧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 마지막 약을 먹으면서, 나는 전체 임신부의 5% 정도가 출산 직전까지 입덧을 경험한다며 실제 그 케이스가 되었던 선배가 떠올랐다. 설마 내가 그러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불안이 잠시 스쳐갔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13주 차가 되면서 그렇게 역하게 느껴지던 밥 냄새부터 견딜만하게 느껴졌다. 다음에는 14주 차가 되면서 집 근처 고깃집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그렇게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15주 차가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만들어주는 갈치조림이 먹고 싶어 졌다. 그전까지는 냄새가 나지 않는 평양냉면이나, 그나마 먹을 수 있는 피자라도 먹어야 살겠다는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무언가가 먹고 싶어 져서 그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15주 차가 되어서의 일이었다. 갑자기 찾아왔던 입덧은 그렇게 나를 천천히 떠나갔다.


임신 초기에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산후조리원 예약이다. 나는 첫 임신이었던 데다, 모든 정보는 산부인과 전문인 병원에서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터라 산후조리원을 언제 예약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몰랐다. 보통은 10~12주 사이의 정기검진을 받고 나면 산후조리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병원 연계 산후조리원 광고가 붙어있길래 예약할 때가 되면 병원에서 알려주는 줄 알고 16주 정기검진 전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뒤늦게 병원에서는 연계 조리원이라고 적극적으로 예약 시기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블로그 후기와 맘카페 후기를 뒤져가며 여러 산후조리원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병원에 가장 가깝거나 시설이 아주 좋아서 평이 가장 좋은 곳들은 이미 예약이 마감이었고,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상황이라 어차피 여러 조리원을 둘러보고 선택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너무 늦게서야 알아봐서 상담이 잡힌 곳에 만족하고 예약을 바로 해야만 했다. 그래도 산후조리원에 가자 바로 태명을 물어보고, 나를 ‘랑이 엄마’로 불러주며 사람들이 조리원 천국이라고 부르는 곳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영업을 시작하셔서 꽤 기대하는 마음이 되었다.


임신 15주가 지나고 나면, 임신 초기라고 부를  있는 시기는 끝이 난다. 작은 덩어리에서 젤리 곰처럼 보이는 시기를 지나 아기는 사람의 형체를 점점 갖추고, 임신 초기까지 먹으라던 보건소의 엽산도  비게 된다. 물론 16주 이후에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입덧이 차츰 나아지고 사람들이 안정기라고 부르는 임신 중기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입덧 덕분에 휴직 시기를 앞당겼기 때문에 집에서 원 없이 늦잠도 자고, 조금이라도 졸리면 낮잠도 계속 더 잤다. 일할 때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잠들었던 각종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기도 하고, 집에서 멍하니 창밖에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을 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중성적인 색깔의 실을 주문해서 아기 담요 짜기를 시작하고, 휴직자로서 즐길 수 있는 최대한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내 체력이 좀 더 회복되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조금 줄어들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가고 싶은 숙소의 이름을 한 바닥 넘게 적어두기도 했다. 워낙 바쁘게 일하다가 휴직을 한 지 얼마 안 된 때라서, 더욱 그 여유가 기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작지만 조금씩 동그랗게 존재를 뽐내는 아랫배의 아기도 14주부터는 청력이 발달하기 때문에, 태명을 자주 불러주면서 배를 쓰다듬기도 했다. 나의 임신 초기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중기 임신부로 볼록한 아랫배를 뽐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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