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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Jan 08. 2023

뭉클 모먼트

어쩌다 주간일기

지난주는 갑자기 남편이 2박 3일 출장을 떠나는 바람에 분주했다. 평소 육아와 집안일에 지분이 많은 남편이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기를 보면서 집안일을 하려니 정신이 없었다. 특히 체력이 거의 소모된 저녁에 아기를 씻기고 탈주를 꿈꾸는 아기에게 로션 바르고 새 옷을 입히는 게 좀 힘들었다. 힘이 좋은 남편이  아기를 들고 달래줘야 하는데, 혼자 하려니 힘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엄마 찬스를 쓰는데, 엄마가 어깨 수술을 하신 뒤로는 아빠가 같이 오시곤 한다. 처음엔 엄마가 운전하기 힘들어서 기사로 오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기 보러 간다고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신다고 한다. 태어난 직후부터 봐온 할머니는 매번 반기지만, 할아버지는 빤히 쳐다보다가 적응이 되면 같이 놀던 아기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얼굴을 보는 빈도가 늘어나자 보자마자 신나게 반겨주었다.

최근에 박수를 터득한 아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면 아낌없는 박수로 환대했다. 가끔 엄마가 우리 아기를 보는 표정을 보면 나보다 더 아기에 대한 사랑이 큰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 것이, 내가 아기일 때 우리 엄마가 날 이렇게 사랑으로 대해주셨구나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폭발하는 아기의 옹알이에 모두 대꾸해주면서 아기 옆을 벗어나지 않는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지치면 그냥 아기 옆에 누워서 대충 대꾸하거나 소파에 누워서 아기를 부른다. 하지만 엄마는 어깨가 재활 중인데, 그렇게 안아주지 말라고 해도 예뻐서 안고 싶다며 아기를 자꾸자꾸 안아준다.

할아버지도 물론 만만치 않다. 아기가 아주 어려서 목도 못 가눌 때는 무서워서 안아주는 것도 어려워했던 우리 아빠였다. 유난히 어린이들과 장난치고 노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손주를 보는 표정은 또 완전히 달랐다. 난 우리 아빠가 저렇게나 많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어 요즘 아빠가 낯설 지경이다. 아기를 따라다니면서 책도 읽어주고, 아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다 꺼내 주면서 자꾸만 말을 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도 자꾸 웃게 된다.

이번 주는 집 근처 트레이더스에 같이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트레이더스 할인권이 생겼는데, 아직 성인이 2명인 우리 식구로는 금액을 채울 수가 없어서 두 가정 장을 합쳐서 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 꽤나 구경을 좋아하는 아기는 카트에 태우기로 해서 유모차는 차에 두고 힙시트만 가져갔다. 나는 손목이 안 좋고 엄마는 어깨가 안 좋아서 아빠가 힙시트를 매겠다고 가져갔다. 그래도 장을 보는 초반엔 아기가 카트에 앉아서 잘 놀고 물도 먹고 과자도 잘 먹었다. 하지만 점점 엄마와 내가 장 보는 일에 열중하자 짜증을 내기 시작해서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근처 의자에 아빠가 앉아서 아기를 보도록 하고 엄마와 내가 나머지 장을 보고 아빠를 찾아왔는데, 아기가 잠들기 직전의 눈을 하고 몸에 힘을 다 빼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왔다고 낮잠 안 잔다고 버티더니, 아기는 결국 할아버지 품에 안겨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집에서는 조그만 소리에도 칭얼대면서, 그렇게 밝고 시끄러운 마트에서 자는 것이 좀 웃겼다. 놀라운 건 사실 아기가 아니라 아기를 소중하게 안은 아빠였다. 힙시트 위에 올려서 안으면 좀 더 편할 텐데, 아기 머리가 편하도록 아빠 어깨 위에 올려야 한다며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혹여나 깰까 말도 안 하고 아기를 귀한 청자라도 되는 듯 소중히 안고 있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아빠는 아기가 할아버지 품에서 편하게 잠들었다는 것이 그저 행복하신지 계속 아기 뒤통수를 보고 웃고 계셨다.

결혼하기 전, 상견례를 할 때 아빠는 내 어릴 적 사진을 가져오셨다. 시부모님께 그 사진들을 보여주시며 애들이 어렸을 땐 아빠를 참 좋아했었는데,라는 말도 하셨다. 나는 고모를 통해 내가 아기일 때 예쁘지 않아서 데리고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아기가 참... 건강하게 생겼네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를 전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좀 민망한 마음에 아빠에게 그래도 난 아기 때 예쁘진 않았잖아, 했는데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고 예쁜 아기였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더욱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잠든 우리 아기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아빠를 보니 그 말이 진심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되고 보니, 우리 아기를 대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 이제야 엄마 아빠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이제까지는 내가 그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단 생각이 든다. 요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을 알 것만 같아 뭉클하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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