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봐야한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25년 나의 교과전담으로서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나는 2025년 한해를 교과전담으로 살았다. 새로운 학교로 옮긴 첫해에 교과전담으로 살며 좋은 점도 많았고 어려웠던 점도 적지 않았다. 교과 전담을 안해본건 아니지만 근 7년만에 하다보니 또 새로운 경험이더라. 초등학교는 무릇 담임 교사 중심의 교육 조직이기 때문에 담임교사와 비교해서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고, 일적으로 힘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나름의 어려운 점은 또 있더라. 오랜만에 교과 전담을 일년 해보고서는 다시 담임교사로 돌아가려고 한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의 특성이 나와는 조금 맞지가 않는 듯 하여.
우선 수업 내적으로 살펴보면,
초등학교에서 교과전담이라 하면 시수 분배를 위해 여러 학년을 맡게 되고 시수 문제로 여러 교과를 담당하게 되기도 하는데 올해 나는 두개 학년의 한 교과만 담당했다. 그 점 때문에 수업을 조금 더 짜임새 있게 준비할 수 있었고 그러한 준비가 점차 수월해진 점은 있었기에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체육 교과는 원래도 내가 관심이 꽤 깊은 교과고 그동안 나름대로 공부하고 실천해왔던 교과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온 것에 조금의 노력을 더 얹어 여러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업이 점차 체계화되어 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며 교사로서의 재미도 찾을 수 있었다.
체육교과는 언제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과기 때문에 '재미'라는 측면에서 아이들의 기대치를 수용하면서도 체육 교과의 본질적인 의의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배워나가는 과정을 겪었다. 체육 수업때 무엇을 해도 아이들은 좋아했을 것이지만 노력이나 준비 없이 '시간 때우기' 식의 교육과정 운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체육 교과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우리가 체육 수업을 통해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 교사로서 먼저 고민하고 아이들과 나누는 과정들을 통해 체육 수업의 내실을 다지고 체계화하고자 노력했다. 재미나 건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 외에도 체육 교과를 통한 '공동체성'의 내면화와 실천을 교육과정에 녹여내고자 고민했다.
아이들의 배움과 별개로 교사로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체육과 스포츠는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더 의미있게 다지고 공동체를 세우고 살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과하고 그릇된 경쟁은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지만 옳은 방향의 경쟁과 그 속에서의 갈등은 아이들이 개인, 공동체로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철학을 아이들과의 체육 수업 속에 녹이는 것들은 교사로서 꽤나 재밌는 시도이자 실천이었다.
담임교사들의 협조를 받아 전담 교과 수업과 학급 운영을 연계하는 학급 대항 토너먼트나 새로운 공동체와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학생 자율 스포츠 동아리 같은 것들은 그만큼 교사의 품이 들어가지만 그 품 이상의 효과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힘이 들었지만 분명 보람찬 교육 활동들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만한 공동체 활동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앞서 말했듯 교과전담교사라 맡은 학급이 없다보니 시간적으로는 분명하게 여유가 생겨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조금 더 애써서 하고자 했고 추가로 담임교사들의 일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현장체험학습을 따라가서 아이들 인솔을 도와준다거나, 학년 일이나 학교 일에 먼저 나서서 실천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런 도움을 주는 바탕에는 나의 품앗이가 다른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면 동료들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말이 아닌 실천으로 다른 선생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작지 않았다. (그 또한 말보다는 실천으로 은은하게 본이 되는 그런 교사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방향성에서 비롯된 행위들이었다.)
수업 내적으로는 올해 두개 학년 12개 학급을 담당하며 300여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함께 했는데 학급마다 다른 특성에 맞추어 수업을 균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였다. 그러다보니 내가 일방적으로 세운 교육 목표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해당 학급별로 조금은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하고, 운영도 달라야 한다는 깨달음을 또 한 번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학급마다 조금씩 다른 목표를 제시하고 엄격하거나 느슨함의 차이를 주는 운영의 묘를 발휘했다. 이는 교과 전담 교사의 근본적인 어려움과 이어지는데, 교과 전담 교사는 기본적으로 수업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완급조절이 어렵다. 수업시간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아이들과 학급에서 살아가는 담임교사라면 그때그때 완급을 조절해가며 아이들에 맞춘 배움의 운영이 가능한데 (그 자체가 삶이고 배움이기 때문에) , 주당 1-2시간을 만나는 교과전담교사로서는 그 점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너무 기다리고 기대하는 체육교과이기 때문에 늘 최대한으로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보다 근원적인 목표가 앞섰다.
체육 수업도 삶이고 배움의 일부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최대한의 배움으로 채워 아이들과 의미있는 체육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놓치게 되는 것들이 없지 않았으리라 본다. 물론 내가 그 문제를 늘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문제들을 다듬으며 아이들과 공부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공부를 통해 삶을 가꾼다"는 모토와 교과 전담 교사로서의 모토는 조금은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아쉬움이라 설명해야할 것 같다. 그게 나로서는 가장 어려웠던 점이었다. 아이들과 조금 더 삶을 나누고 싶어도 그럴 시간 자체가 없어 제한적인 역할에만 최선을 다해야했던 것. 그게 나의 개인적인, 교사로서의 아쉬움과 어려움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이들과 단순히 수업으로서만 만나야 해서 래포 형성 자체가 거의 어렵고 그로 인해 아이들과 소통을 통한 생활 지도가 오히려 거의 불가능한 점으로 인해 고민이 많았다. 아마 대부분의 교과 전담 교사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을텐데 그럴때면 때때로 '단순 수업보다 중요한 것이 삶 가꾸기아니냐'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럴때면 한구석으로 또 미안한 것이 아이들이 기다리던 체육 수업 시간을 까먹는다는 상충된 고민들이 늘 충돌했던 것이다. 해서 사실 여러 이유들로 올해 요구받은 수업시수보다 도합 20여시간 정도를 더 했다. 이게 수업 일수로 따지면 거의 4-5일인데, 나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내가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 더 넉넉하게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에.
수업 외적으로는 소속감이 거의 없던 것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학교 구성원들과 그야말로 온몸을 부대끼며 웃고 울며 살아왔는데 너무나 독립적인 자리를 맡게 되니 그것이 또 혼란스럽더라. 동료들과의 소통과 나눔을 통한 성장이 나에게는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기 때문에, 그것이 없는 교직 생활은 공허함이었다. 동료들은 외려 나를 배려한 것이었겠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철학은 아니더라.
개인 사정으로 올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과 전담 교사를 맡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앞서 말한 아쉬움으로 다음 학기에는 담임교사로 돌아가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맡은 학급이 없어 편한 자리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때때로 '공허함'이었기에 전담 교사로서의 삶을 통해 얻은 마음으로 다음 학기에는 내가 만날 아이들에게 좀 더 애쓰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