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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서아인 Mar 15. 2021

[세잔] 오랫동안바라보다. 내가그것이 되도록.

그림이 미지 #2



군더더기를 모두 빼버린 미니멀리스트. 

세잔, 그를 만나보자.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던 구상화에서 갑자기 형태가 해체된 추상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변화란 폭발적으로 갑자기 들이닥치기보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서서히 물들이듯 드러나는 것처럼.



구상화에서 추상화로 진행되는 변화 역시 그러했다.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서서히 형태가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그 본격적인 행보를 거닐었던 화가가 바로 세잔이다.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수많은 현대 화가들로부터 아버지라고 칭송받던 그.

그는 무엇을 했던 걸까?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1885 ]


세잔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치 인생에 있어, 내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형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눈에 보여진다는 것.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이미지이고 화면이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아주 빠른 속도로 중첩되면서 우리는 마치 이 세상을 보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 그림, 즉 이미지는 형태, 그리고 색감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세상의 형태에 대해서 그가 의문을 던진다. 


'형태의 본질은 어떻게 찾을까.'


'군더더기 없는 에센스를 어떻게 찾을까?'


세잔 하면 사과를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린 작품은 세잔의 또 다른 대표작 시리즈이다.



처음 그가 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한 그의 행위에 얼마나 놀랍던지.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는 세잔이 있다.


그리고 그는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을 그저 그렇게 바라본다.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그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젖어든다.


그리고 내가 산인지 산이 나인지 그 모든 경계선이 사라져 버린, 그 순간에 붓을 든다.


마치 깊은 명상 중에 온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그 통합된 순간에 세잔은 세잔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는 스스로 생 빅투아르산이 되었고, 이제 생 빅투아르 산은 스스로 그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주 고귀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그는 빅투아르산과 하나가 돼버린 순간을 캔버스 위로 남긴다.

그리고 그런 깊은 의식의 상태에서 그는 보았을 것이다.

세상에 직선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식을 습득하는 차원에서 알게 된 사실, 바로 직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선은 다 휘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는 스스로 관찰을 통해 알아냈다.



그리고 그의 그 깊은 의식의 상태가 그의 작품 속에 오롯이 녹아들어 간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 또한 그의 작품을 바라봄으로 인해, 

복잡한 형태가 모두 와해되고, 가장 본질적인 의식에 맞닿게 되기를.


미니멀리스트 세잔은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그가 경험한 

그 명료한 의식 상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폴 세잔 [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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