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한국의 몇몇 단체와 콜라보 작업을 진행하면서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말과 글로 옮기는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다. 가벼운 회의나 컨퍼런스 통역부터 소책자 번역, 프랑스에 대한 원고 작성 등등 다른 언어로 이해한 컨텐츠를 또 다른 언어로 소개해야 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 통번역 업무의 고초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나라 사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서 든 생각이 있다.
통번역 일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언어를 옮기는 작업에 대해 깊이 돌이켜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전문적’으로 일하고 있는 분야의 언어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문용어를 사용해야 했고, 그 용어의 정확성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프랑스 회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아는 전문용어는 모두 프랑스어다. 그 용어들에 대해 묻는다면 구구절절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그 개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매번 장황한 설명으로 그 개념을 소개할 수는 없다. 그 용어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한국어 단어가 필요한 지점이다.
관련 기사와 책을 읽으며 적절한 용어를 찾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원어를 그대로 한국어로 적어 표현하곤 했다. 내가 충분히 검색하지 않아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용어가 많은 매체에서 그렇게 사용되었다. 그나마 친절한 곳은 한글로 적은 원어 앞에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한 수식을 덧붙였다. 이쯤 되니 통번역을 할 때 어디까지를 한국말로 옮겨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원어를 그대로 적은 전문 용어의 의미가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이 될까. 전문가들이 사용해서 전문 용어인 만큼 전문가들의 공론을 거쳐 그 용어를 한국말로 옮겨 사용할 수는 없을까. 용어의 정의와 쓰임에 대해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까. 그래서 우리의 언어로 우리식 이론을 만들 수는 없을까. 거꾸로 우리식 이론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언어를 찾는 것이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언어와 사고 중 무엇이 먼저인지 논쟁이 일만큼 그 둘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언어를 습득하며 사고가 열리고 또한 사고를 명명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언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용어를 사용해 작업을 정의하는가는 실용적인 문제와 함께 그 분야의 발전 가능성도 담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을 사회구조와 문화가 다른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듯 언어 또한 그렇다. 언어가 한국의 실정에 맞게 수정되어야 하듯 방법론 역시 그래야 한다. 이 둘은 함께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작업을 한국에서 만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