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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Apr 24. 2023

미래를 위한 연극, 극단 상스 아상시오넬의 오블릭

매년 5월 프랑스 알자스 지방 작은 도시 콜마르에는 우리 사회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다. 오는 5월 5일부터 8일까지 열린 알자스 친환경 박람회(Foire éco bio d’Alsace)를 방문해 수많은 사람들의 밝은 미소처럼 밝은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올해 35회를 맞이한 알자스 친환경 박람회는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이다. 이 박람회는 정보 공유를 위한 일반적인 박람회와 달리 같은 가치관을 나누는 사람들이 만나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행사를 즐기는 만남의 장이다. 때문에 박람회를 찾은 사람들은 연신 밝은 미소를 띠며 처음 만난 사람과도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들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박람회장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특별한 분위기에는 박람회 기간 내내 열린 영화, 연극, 콘서트와 같은 문화 행사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매일 저녁 메인홀에서 열린 콘서트의 음악을 들으며 가족과 식사를 하는 이들도, 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와인 한 잔을 나누는 이들도 모두 축제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특히나 무대 앞에 마련된 공간에서 흰머리의 할아버지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춤을 추는 모습은 그 음악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이처럼 박람회의 문화 행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방문객들이 매 년 잊지 않고 박람회를 다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문화 행사는 박람회의 가치관을 공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올해 초대된 세 개의 연극 중 극단 상스 아상시오넬(Sens Ascensionnels)의 오블릭(Oblique)은 현대의 환경적, 사회적 불균형을 주제로 한 아동극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프랑스어로 사선을 뜻하는 오블릭은 다양한 풍자와 희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Sens Ascensionnels
ⓒSens Ascensionnels

오블릭의 배경은 조블릭(zoblic)이라 불리는 상상의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대장 조블릭, 과학자 조블릭, 역사학자 조블릭, 농부 조블릭 등으로 불리며 우리 사회의 직업군을 대표한다. 그리고 조블릭 세상의 중심에 있는 호수에는 메흐베이유(merveille)라는 이름의 물이 살고 있다.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조블릭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고, 결국 이에 지친 메흐베이유는 호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물이 사라진 조블릭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이들은 기울어진 세상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한 물을 찾기 위해 문제 해결에 나선다. 조블릭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방법을 찾지만 이는 모두 우스꽝스러운 결과만 낳을 뿐이다. 과학자 조블릭은 비를 내리기 위해 구름을 붙잡는 기계를 만들고, 역사학자 조블릭은 고대의 주문을 외워 물을 불러올 수 있다며 의식을 진행한다. 그 와중 목이 마른 대장 조블릭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마셔버린다. 결국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이들은 농부 조블릭을 찾게 된다. 부탁을 받은 농부 조블릭은 물을 찾기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되지만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제시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9세 이상 어린이를 위한 아동극답게 극은 손가락인형, 애니메이션, 우스꽝스러운 가면 등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고,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덕에 극장에서는 연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극단 상스 아상시오넬의 첫 번째 아동극인 오블릭은 2014년 릴(Lille)의 그랑블루(Grand Bleu) 극장에서 첫 선을 보이고 같은 해 아비뇽-오프 축제에 참여한 후, 현재까지 프랑스 각지를 돌며 공연 중이다. 극단 상스 아상시오넬은 프랑스어로 방향 혹은 감각을 뜻하는 상스(sens)와 올라가는의 뜻을 가진 아상시오넬(ascensionnel)을 합친 말로, 2001년 연출가 겸 극작가인 크리스토프 무아이예(Christophe Moyer)가 창단했다. 20년 가까이 연극에 몸 담고 있는 그는 의외로 그랑제꼴에서 상업을 공부한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 그가 다닌 그랑제꼴은 프랑스에서도 입학이 어렵고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는 공부를 마친 후 학비를 갚기 위해 은행에서 일을 해야 했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현실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은행을 그만두고 공연에 뛰어들었다. 박람회 첫날 아침,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무아이예를 만날 수 있었다.


상스 아상시오넬의 크리스토프 무아이예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박람회장에 도착했을 때 메인홀은 개막식 준비로 한참 분주했다. 짐을 내려놓고 크리스토프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 그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했다. 놀란 나에게 그는 내가 오늘 아침의 처음이자 유일한 한국인일 것이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두 잔의 커피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수많은 창문을 가진 탑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그 탑 안에서 각자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전부를 보지 못해요. 여기서 저의 일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 각자의 창문을 보고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 사람들에게 세상 전체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


그는 우리의 세상을 탑으로 비유하며 연극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는다고 했다. 이것이 그가 연극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사회 비판 연극을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창단 후 극단의 첫 번째 작품은 세계화를 비판하는 연극이었는데 그때에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고 한다.


« 관객들이 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극장에서 극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이유였죠. 그래서 처음에는 주로 사회단체들과 작업을 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요. 처음 4년은 힘들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어요. 2005년에 노빠드꺌레 지방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극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으니까요. 4년 후 같은 극을 보고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극을 수정했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극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변한 건 세상이었죠. »


이러한 세상의 변화에 그의 연극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아마 그랬을 수도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극을 만들고 공연을 올렸다. 관객들은 그의 열정에 지지를 보냈고, 결국 세상은 그의 연극을 받아들였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주제이기도 했을 그의 극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묻자 그는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 공연이 끝나면 무대로 올라가 관객들과 대화를 해요. 우리가 방금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일상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연극은 다르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극은 하나의 공통점이 되는 거죠. 그들은 사회 문제가 아닌, 방금 본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은 아주 흥미로워요. 그래서 이 대화가 연극만큼이나 중요해요. »


작년 겨울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난 후 3년 전 본 네오나치에 대한 그의 연극 나즈(Naz)를 떠올린 관객에게 메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는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관객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극의 주제가 또 친구 가족들 사이의 대화 주제가 되어 자연스레 사회 전반에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극을 보고 직접적 영향을 받아 당장 그 변화가 시작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본 극을 오늘날 사회를 통해 다시 떠올린 한 관객처럼 극의 주제가 그들의 의식에 자연스레 스며들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처음에는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극이 시간이 흘러 사회적 인정을 받은 것은 어쩌면 그가 뿌린 생각의 씨앗 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어서 그에게 사회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 희망이나 해답을 찾는 것은 예술가의 일이 아니에요. 그건 사회나 정부가 할 일이죠. 우리의 역할은 문제를 보여주는 거예요. 나의 시선에서 본 문제는 이러한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죠.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많은 이들과 대화를 하고, 정보를 찾아야 하죠. 관객들과의 대화도 이러한 노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오블릭을 시작으로 또 다른 아동극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실제로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유치원을 찾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극 중 일부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을 무대를 만드는데 참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극을 봐도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들의 시선이 다르다며 그 점이 재미있어 아동극을 만든다고 말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의 표정에서 장난스러운 웃음이 나타났다. 온 얼굴을 가득 채우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온화한 미소였다. 마지막으로 극의 주제를 전달하는 것 말고 연극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는지 물었다. 


« 재활용 가능한 재료들을 사용해 무대를 꾸며요. 오블릭은 부득이하게 조명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가능하면 인공조명을 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죠. 그리고 별도의 장치가 없더라도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는 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극장은 소수를 위한 닫힌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연극 오블릭은 2014년 세계 최대의 공연 축제인 아비뇽 축제에서 해바라기상 친환경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아비뇽 해바라기상(Prix Tournesol Avignon)은 아비뇽 비공식 초청작 중 친환경, 공정사회, 인권 등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는 주제를 다룬 공연에 주는 상으로 시민운동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는 연극을 통해 사회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사회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그 변화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다. 그의 연극은 세계화, 에너지문제, 인종차별, 환경파괴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문제를 다루지만, 결국 이를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였다.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는 그의 확고한 가치관에 나는 인터뷰 내내 수업을 듣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극 오블릭을 보며 그 안에 투영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극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뚜렷했던 그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극이었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https://cjculture.org)의 해외통신원 활동을 위해 2016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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