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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느끼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저자룰루 밀러출판곰출판발매2021.12.17.







이 책을 추천 책 목록에서 본 것이 몇 개월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그저 환경에 관한 책이라 혼자 짐작해버렸다. 환경에 관심은 많지만 물고기의 죽음으로 떠올리고 싶지는 않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죽은 물고기의 이미지는 내내 이 책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물고기의 죽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무런 근거와 사실 기반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판단은 때로는 너무 공고해서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게는 이 책의 인상이 그랬다.


이 책을 집어든 계기는 철저한 실용적인 관점이었다. 인터넷 출판사들의 정책 변화로 책 한 권으로는 배송비를 내야 했고 원하는 책을 급히 새벽 배송으로 읽기 위해서 나는 그냥 “그 책을 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책이라는 목록”에서 그저 골라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없었다면 이 책을 들추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소개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100년도 전의 집착적인 어류학자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는 프롤로그는 내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으니까.


그냥 책을 읽기에 시간이 있었고, 하필 이 책이 내 옆에 있었고, 그렇게 시작한 장르도 내용도 몰랐던 이 책이 어쩌면 올해 내 인생 책이 될지도 모르는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책의 중반까지 도대체 이 책의 장르가 뭔지, 이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소설의 형태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따라가는 듯 하다가 문득 저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과학책인가 싶다가 진화책이나 역사책 같기도 때로는 철학책같기도 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장을 넘겨는 일뿐이었다.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가는지. 처음에는 저자의 해답처럼 여겨지던 조던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뭉개뭉개 올라오던 시점에 느닷없는 인물을 만났다.


프랜시스 골턴


다윈의 사촌이자 대척점에 섰던, 우생학의 아버지. 사람은 우월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있고 열등한 사람을 없애고 우월한 사람의 유전자를 많이 남겨야한다고 주창한 사람. 열번도 더 읽은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에서 만난 그를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그리고 그리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던 우생학이 지배했던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구역질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그래서 완전히 그 모습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냐는 저자의 질문에 한참을 멈추고 말았다.


과거와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 골턴의 어리석음, 가난과 고통과 범죄가 혈통의 문제이며 칼로 잘라 사회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이 나라에서 우생학 이데올로지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우리는 우생학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나라다.p. 196



오프라 윈프라는 이 책을 가르켜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넋을 잃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우생학의 한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다윈을 데려온다. 우리는 오랫동안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다윈을 오해해왔다. 자연은 냉정해서 제일 뛰어난 하나만 남고 도태시킨다는. Winner takes all의 근거로 다윈의 적자생존은 종종 인용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굿 이너프]라는 책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자연은 적당하기만 하면, 말 그대로 Good enough 하기만


하면 도태되지도 사라지지도 않게 함께 공존해서 살아간다는 것. 오히려 다윈은 자연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변이'에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중략) 경탄을 금치 못했다.p.188



그가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p. 189




멍게는 많은 곳에서 퇴화된 생물의 한 예시로 종종 인용된다. 유충시절에 물 속을 떠다닐 때의 멍게는 뇌가 있지만 성체가 되어 적당한 장소에 자리잡은 멍게에게는 뇌가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아니 자주 우리 인간은 멍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멍게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한 대표주자로 불러오곤 했다. 내가 이전에 쓴 글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내용이 있다.



나는 틀렸다.




멍게는 엄밀히 말해 척추동물은 아니지만, 척삭이라는 척추와 비슷한 구조물을 가장 먼저 선구적으로 갖춘 생물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멍게는 퇴보한 존재가 아니라 정반대로 혁신가였던 셈이다. 


단순히 성체가 되어 뇌가 퇴화되었다고 멍게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퇴보한 존재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멍게가 유수한 세월을 지나 오래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감히 여러 생물체 종 중 하나일 뿐인 인간이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는것인가.


"언젠가 올리버 크롬웰이 했던 말을 그가 생각해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6월 어느날 아침, 나와 통화하던 루서 스피어가 자신이 아주 오랜 세월 연구해온 이 남자를 이해해보려고 애쓰던 중 한 말이다.

"'그리스도의 심정에서 보면 그대들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볼 것을 그대들에게 간청합니다.'라는 말을요."p.204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골턴이 틀렸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틀렸고, 나도 틀렸고 당신도 틀릴 수 있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고 있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틀려야 하고 틀려야 발전도 있다. 별을 꿈꾸던 소년이 물고기를 만났고, 그 물고기를 네이밍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기만으로 자존심을 공고히 세웠던 그가 자신이 세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더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틀을 세웠기에 그는 결국 수많은 삶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가 공고히 지키려 했던, 평생을 바쳐 분류에 목숨을 걸었던 물고기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잡고 살았던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법같은 언어를 뱉기만 하면 되는데 그 언어를 부정하고자 더 실체도 없는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상처내고 상처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발달의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라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저마다 발달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각각의 새로운 단계마다 우리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이 온갖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는 얘기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소아과 의사, 아널드 게젤Arnold Gesell






p.s : 친구보다 글씨를 이쁘게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상의 어떤 아이보다 아름다운 것을 잘 찾고 볼 수 있는데도 의기소침해진 00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우생학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지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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