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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way of seeing Apr 19. 2022

끄적이기로 마음먹은 이유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가 불러다준 용기

7살 때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지었던 낡은 시골집, 가장자리 내 방 창가에 앉아 피아노에 떨어지는 햇볕을 보면서 처음, 여유라는 것의 물상적 실체를 본 것 같다.

그 여유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일기장을 펴서 일기를 썼다.


오늘 '여유'를 눈으로 보았다. 엄마에게 여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어려운 대답을 했다. 
'그게 뭐냐고 물을 수 있는 너의 지금일걸. 더 궁금하면 사전을 찾아보렴.'
여유 :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엄마, 나는 여유가 좋아요.


뭔가, 넉넉한 마음이 들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공책을 꺼내 그 날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잠깐의 여유를 채우기 위해 불현듯 떠오른 끄적임이 이후 매일의 동경이 됐다.

그 이후로 12년이 넘도록 매일 일기를 썼다. 

어찌 보면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 일의 반 할은  의무에 의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우여곡절의 사춘기 나날들을 지나와서인지, 그날처럼 감정을 오롯이 저장하기 위해 쓴 글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그냥 마음에서 흘려보내기 위한 끄적임 들이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 하지만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단어들. 속상했던 일.


그렇게 20년이 지난 어느 날, 처음으로 나만의 방에서 어떤 다이버의 글을 읽었다.

에라, 질러 보자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작가 신청을 했다는.

세상 복잡한 것들이 조용해지고 또다시 내 창가에 볕이 들었던 그때, 문득 용기가 났다.


숨겨서 쓰는 글 말고,

드러내어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록하자.

내 오랜 동경이 드디어 실현이 되는 순간. 나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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