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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way of seeing Apr 18. 2022

지역의 색, 황톳빛의 화가 변시지와 기당미술관

버내큘러 경관(Vernacular Landscape)

■ 제주의 빛, 황토 또는 황금 또는 누런색

    

 지금부터 한 세기 전, 제주의 색을 일렁이는 황톳빛으로 표현하고자 한 작가가 있었다. 그의 나이 오십. 일본에서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일렁이는 석양과 제주 바다는 황토 빛 세상이었다. 노랑과 황금이 일렁이는, 황톳빛 노랑을 인생의 사상思想으로 삼아 평생을 그만의 화풍을 위해 고뇌한 화가, 변시지(1926~2013)와 지역문화, 그리고 그의 정신이 담긴 기당미술관에 대하여 오늘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제주에서의 그의 그림은 누렇거나, 누리끼리하거나, 어렴풋이 황금과도 같은 색으로 꽉 차 있으며, 그의 붓 터치는 일렁이는 제주의 바람과 바다를 닮아있다.  

         

그림 1. 산방산, 1990, 130x97cm. 출처 : 변시지(邊時志) 화가의 작품세계 https://blog.naver.com/chojh0918/222552218418



“제주는 아열대 태양 빛의 신선한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흰빛도 하얗다 못해 누릿한 황톳빛으로 승화된다. 나이 오십에 고향 제주의 품에 안기면서 섬의 척박한 역사와 수난으로 점철된 섬사람들의 삶에 개안했을 때 나는 제주를 에워싼 바다가 전위적인 황톳빛으로 물들어감을 체험했다.”    

출처 : 서귀포 방송(http://www.seogwipo.tv)




그림 2. 변시지 작가와 그의 작업실 모습 [사진 가나아트], 출처 :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황톳빛 제주 풍경화에 녹인 절대 고독, 중앙일보 2020.10.14 18:02







■ 변시지를 아시나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제주인으로, 여섯 살 때 일본 오사카에서 소학교에 다녔으며, 1942년-1945년까지 오사카에서 미술학과에 재학하며 서양화풍을 공부하였다.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한 실력자였으며, 특히 23세가 되었던 1948년에 일본 광풍회 최고상을 받아 정회원이자 심사위원이 되었다. 1)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1975년부터는 고향인 제주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서귀포시 기당미술관이 설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며, 2007년부터 10년간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작품 2점을 한국인 최초로 전시한 화가이다. 2)


그림 3. 폭풍의 바다 8, 출처 : 변시지(邊時志) 화가의 작품세계 https://blog.naver.com/chojh0918/222552218418
그림 4. 목동,  출처 : 변시지(邊時志) 화가의 작품세계 https://blog.naver.com/chojh0918/222552218418




 *1) 광풍회는 일본 문부성 주최의 일전(日展)을 주관하는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으로서 약관의 나이(23세)에 최고(광풍)상 수상은 일본 화단 역사상 최초이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24세에 광풍회의 심사위원이 되었다.

*2)  위키백과, 모두의 사전, 변시지




 변시지의 화풍은 그의 생애로 나누어 볼 때, 일본 유학생 시절(1931~1957), 서울의 교육자 시절(1957~1975), 제주에서의 작가 시절(1976~2013)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변시지는 일본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동시에 유럽여행을 그림으로 표현하였으며, 이후 국내의 활동에서는 제주도와 한국만의 향토색을 찾는 여정에서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한 변시지 만의 독창적 화풍을 완성하였다. 


 변시지가 제주로 귀향한 후 초기 시절이던 1970-80년대에는 황톳빛과 먹선을 이용해 '제주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1990년대 이후의 그림 속엔 과감한 붓터치로 표현한 ‘바람의 형상’이 특징적이다. 

변시지는 생전 인터뷰에서 줄곧 "단순히 보여지는 풍경의 그림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풍경을, 제주인의 독특한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현대문명에 밀려 사라져 가는 제주의 원형을 찾아 헤매”는 그의 고집이 반영되어 있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그의 열정과 고집을 승화한 단적인 매체로서 그는 제주만의 색, 황토빛 노란색을 발명하게 된다. 또, 마치 먹을 쓰듯이 검은 선으로 조랑말, 나무, 대상을 표현하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특히 황금도, 황토도 아닌 황토색은 작가가 갈구하였던, ‘지역의 색, 제주의 색’으로 40년 넘게 손에 익었던 모든 색과 기법을 버리고 처절히 고뇌하여 얻은 결과물이다. 그는 살아생전 인터뷰에서 종종 "현란한 색으로 아무리 제주를 표현해도 어색했다"라고 표현했다.








■ 그의 흔적이 남은 공간, 기당미술관


 기당미술관은 기당 강구범 선생에 의하여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서, 초대 관장을 역임하였던 변시지 작가의 작품을 모아 상설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공간이다. 처음 기당미술관과 변시지를 만나게 된 것은 서울로 올라오기 전, 2019년 어머니의 문하생들이 규방공예 전시를 하기 위해 기당미술관을 대여하였을 때였다. 정문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변시지의 작품을 보고, 처음 ‘제주화’를 접하게 되었다. 


그림 4. 기당미술관 설명과 2019년 이지선 작가 전시, 사진출처 문화도시 서귀포 공식 블로그



그림 5. 변시지 작가 작품 상시 전시실 전경


‘제주화’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당미술관 상시 전시실의 큐레이션을 보면, 변시지 작가는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도민의 삶의 애환, 거기서 오는 고뇌를 제주화에 담고자 했다고 한다. 

 즉, 고립된 공간 속에서 느끼는 기다림, 애처로움, 바다를 보며 느끼는 위태로움 등 그의 작품이 나타내는 제주의 모습은 ‘제주화’라는 상징으로서 한 인간이 지역의 생활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감상’에서 나아가 ‘경관의 기록’이 되었으며 ‘버내큘러 경관(Vernacular Landscape) 3)’으로서 풍토적이고 관습적인 지역성이 짙어진, 지역문화가 되었다.




 *3) 버내큘러(Vernacular)의 사전적 정의

[형용사]  

1. <언어가> 그 고장 고유의

2. 고장의 언어로 쓰여있는 ; 고장의 말을 쓰는 ; 고장의 말에 관한

3. 일상 서민의 일상어를 쓰는

4. <건축 양식 등이> 그 고장 특유의     

[명사]

1.《the vernacular》 고장의 말, 지방어, 사투리, 방언; 어떤 지방 특유의 낱말·표현.

2. 전문[직업]어, (동업자 간의) 속어.

3. 평이한 일상어, 일상적 표현.

4. (동식물명의) 통칭, 속칭. 

5. (그 고장의) 고유 건축 양식.








■ 흔들리는 굳건함, 지역의 자연환경을 받아들이고 ‘문화’로 승화한 작가


우리는 무엇을 지역문화라고 하는가?

 한 문화는 상징, 언어, 예술, 기술, 규범, 가치 등 다양한 문화 요소로 구성되며, 상징, 언어, 예술 등을 활용하여 그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 다수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칭한다. 한 사회 전체에 해당되는 문화 양상을 '전체 문화' 혹은 '주류 문화'라고 정의하면, 특정 사회를 이루는 집단 구성원이 공유하는 문화는 '부분 문화' 또는 '하위문화'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문화란 한 지역의 집단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문화를 의미할 것이며, 그 집단이 문화적 의식을 공유하는 공간적 범위가 지역을 경계로 두드러질 것이다.  


지역적 의미에서 제주는, 그 특색과 경계가 뚜렷한 지역이다. 

그만큼 자연환경도 특징적이고, 육지의 것과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제주가 지닌 바다, 강렬한 태양, 산란하는 노을. 

그 모든 모습을 작가 '변시지'는 제주 문화의 배경이자 제주민의 삶의 무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 속에서 작가 변시지는, 제주의 지역문화를 상징화한 대표적 철학가라고 칭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 듯하다. 


고립_6호


 그의 작품 속 덩그런 하게 떠가는 돛단배, 위태로운 초가, 소나무, 소년과 지팡이,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람, 조랑말, 까마귀, 일렁이는 해.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매체들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할 뿐이다. 그렇게 바람이 들이치는 바다를 쓸쓸히 ‘버티고 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이들의 외로움과 처연함, 그럼에도 언제나 그곳에 서있는 굳건한 그 모습을 위태롭지만 당당한 제주인의 모습, 제주다운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검은 먹으로 표현한 그 매체들은 결코 바람에 승복하지 않는다. 

파도가 나부끼는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물살 앞에서 위태롭지만 꿋꿋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태풍_변시지의 대표작



거친 바다 젖은 하늘,  출처 : 변시지 그림 공간 https://ar-ar.facebook.com/byunshijiart/photos/a.100152024761525/1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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