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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way of seeing Apr 11. 2022

화동(花洞)의 정독도서관

화동(花洞)의 정독도서관 이 꽃동네 벚꽃은 언제 생겼을까?

2022년 정독도서관의 만개한 벚꽃


4월의 늦은 오후, 지난가을 삼청동 방문 때에 단풍과 함께 봤던 왕벚나무 생각이 나서 정독도서관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유명한 벚꽃 명소를 찾으면 주로 천변이나 몇몇 테마파크가 나오지만, 오랫동안 제주에서 왕벚나무를 봐오던 나로서는


'벚나무의 아름다움'이 나무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열식 된 나무의 캐노피(Canopy)와 봄볕의 조화에서 온다고 믿기에, 정독도서관은 아마 여타 명소보다 한산하고, 정갈한 벚나무를 보기에 제격인 장소가 아닌가 싶다.






정독도서관은 등록문화제 제2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5길 48(화동 2)에 위치한 서울 시립도서관이다.

1900년 한국의 첫 근대 중등교육기관이었던 '경기고등학교'의 본관 건물로 1938년 건축되었으며, 1976년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이후 서울특별시가 인수하여 현재의 '정독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독도서관화동(花洞) 일대는 특히 조선시대 관료들의 거주지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1900년, 갑신정변이 실패한 이후 조선 정부는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의 집을 몰수하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처음의 학교터는 김옥균의 주택지였고, 이후 서재칠, 박재순의 집이 합쳐지면서 넓은 부지를 함께 교육기관 부지로 사용하게 된다. 이후 정독도서관은 경기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관립한성고등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기공립중학교 등으로 교명이 변경되었지만 한국의 첫 중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였음에는 변함이 없다.


조선 시대에는 이 고개 주변에 붉은 흙이 많아 고개 이름을 홍현(紅峴)이라 불렀으며 궁중의 화초를 키우던 장원서가 있었다고 전한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가 바로 정독도서관의 정원이다. 근대 조선 개화파였던 김옥균, 서재필, 박제순의 집터이기도 하였다.(1)
정문으로 들어간 뒤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종친부경근당과 옥첩당 건물이 있었다. 원래 소격동 165번지 구 기무사 부지 내에 있던 것을 1981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과 함께 원 위치로 이전하였다.(2)
도서관의 본관 입구 서쪽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연못 주변에는 초정이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꽃과 나무 등 경관이 아름다워 북촌 일대의 관광객이 오기도 한다. 봄에는 내부 도로를 따라 심어진 벚나무가 꽃을 피운다. 관내에는 정독도서관 부설 서울교육박물관이 있다.(3)

(1) 출처 : 서울특별시 교육청 정독도서관, 관내 문화재 표석 안내. https://jdlib.sen.go.kr/jdlib/html.do?menu_idx=171

(2) 출처 : 조선시대 종친부 건물,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2013.12.20. 오후 7:36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422&aid=0000040871

(3) 출처 : 정독도서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B%8F%85%EB%8F%84%EC%84%9C%EA%B4%80




여기서, 잠깐.


정독도서관이 위치한 삼청동 일대의 옛 지명이 화동(花洞)- 꽃동네라니.

그것도 花(꽃화) 자를 쓰는 것을 보니 문득 화동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화동, 화동은 화개동(花開洞)이라고도 하며, 종로구 소격동 ・ 화동에 있던 마을의 지명이다.

종로구 소격동・화동에 있던 마을로서, 화동 23번지에 조선 시대에 화초를 기르던 '장원서'(掌苑署)가 있어서 꽃이 피어 있다는 뜻의 마을 이름이 붙여졌고, 줄여서 화동이라고 불렀으며, 현재 화동의 동명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또 원래 ‘화기동’(火器洞)이었던 것이 변하여 화개동으로 되었다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 때 이곳에 화염을 일으키는 총포를 만드는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있었기 때문에 음이 비슷한 화개동으로 변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4) 출처 : 서울특별시, 서울역사편찬원, 서울 지명사전. https://history.seoul.go.kr/nuri/etc/sub_page.php?pidx=146579435936&page=1044&CLSS1=0&CLSS2=&first_con_text= 

*장원서(掌苑署) : 조선시대 원(園)·유(囿)·화초·과물 등의 관리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관서.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장원서(掌苑署))]



장원서 터 비석


우선 지명의 역사적인 유래는 '장원서' 나 '화기동'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원서는 조선시대 궁궐의 절기에 맞추어 사용할 과실이나 꽃, 나무를 키우던 관서로 지금의 '공원녹지과'의 역할과 유사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정독도서관에서 삼청파출소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세계 장신구 박물관이 나오는데,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면 있는 장원서터(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22-4)에서 그 지명이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독 도서관에 이렇게 벚꽃이 아름다운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정독도서관의 과거 정원 공사 사진을 속속들이 찾아보았다.


첫 번째, 발견. 1977년이다.

서울 사진 아카이브의 정독도서관 개관식 사진을 보면, 지금의 벚나무는 없고 넓은 잔디밭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이때 벚나무를 식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벚나무의 수령은 60년 정도이다. 77년에 식재를 했다면 45년 된 나무를 보고 있는 것이 되니, 나무를 아무리 잘 관리했다고 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나이일 수 있다.


정독도서관 개관식 [출처 : 매일경제, 1977.01.04. 8면, 서울특별시 서울사진아카이브 제공]
왼쪽의 시공도면을 잘 보면 지금의 도서관 진입로 배치와 사뭇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1999.04.08조간31면기사 (사회)전기병 기자[출처 : 조선일보 뉴스 라이브러리]https://newslibrar



두 번째 발견, 1999년 조선일보 전기병 기자의 사회 31면 정독도서관 사생대회 관련 기사이다.

서울시의 '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 심기 운동'의 하나로 마련된 정독도서관 뜰의 초등학생 사생대회를 다루고 있다. 이때, 첨부된 사진을 보면 목련 꽃을 보고 글짓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뒤로 식재된 벚나무가 어렴풋이 보인다.




영화 품행제로(2002) 조근식 감독작, 중필(류승범)과 나영(공효진)의 대화 씬


세 번째 발견, 영화 <품행제로(2002),  조근식 감독작>에 나왔던 정독도서관의 모습이다. 당시 류승범이 공효진과 만나는 장면에서 정독도서관이 등장하였으며, 이때도 등나무 벤치와 벚나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개봉한 영화이니, 2001년에 촬영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벚나무가 있었음을 유추해본다.



네 번째, 발견. 2004년이다. 지금의 블로그 데이터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2003년 10월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가 시작했다. 이 사진을 찾기 위해 다음과 네이버를 얼마나 항해했는지 모른다.)

여름의 정독도서관 방문 사진인데, 지금과 같이 벚나무가 열식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등나무 벤치도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8월의 정독도서관 전경 [출처 : 락키드님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rockkids/120004893574)





다섯 번째, 발견. 2009년이다. 북촌 지킴이 '옥선희' 작가의 2009년 저서, <북촌 탐닉>에서는 문화 3 교실 입구 아름드리 벚나무의 "황홀한 슬픔"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던 작가를 북촌에 자리 잡게 한 처연한 벚나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화려하게 사나흘 폈다가 처연하게 봄비와 함께 져버리는 봄꽃이 작가님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나 보다.



북촌 탐닉, 옥선희(저) 푸르메 | 2009년 11월 20일에서 발췌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정확히 정독도서관에 언제 벚꽃이 이렇게 자리 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1977년에서 1999년 사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이 사이 20년이라는 긴 텀이 있군... 혹시 북촌에 오래 살고 계신 분 중에 알고 계신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도서관과 벚나무



역시, 아카이빙은 쉽지 않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면 그뿐이라, 후대의 사람들은 기억 속에 없는 시간을 들추어볼 때 사료가 없으면 주장을 뒷받침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오늘 내 눈앞의 벚나무가, 적어도 20년 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나무였음을 생각해본다.

또, 오랜만에 꽃놀이 간 동네가, 몇 세기 전에도 꽃동네였다는 사실을, 누군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남산과 벚꽃


18세기부터 줄곧 꽃동네였던 북촌에서 21세기의 오늘, 우리도 꽃을 본다.

이 계절이 지나면 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벚꽃비가 20년 전에도 내리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오늘의 벚나무"는 시간을 이어 서로 다른 개인 역사의 배경이 되어 왔음에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한 철 피고 지는 꽃은 '개인사의 분침'일 것이다.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한다면, 하루 24시간이 1440분이므로 1년은 18분이다.

따라서 서른 살은 오전 9시, 마흔 살은 낮 12시, 예순 살은 오후 6시이며,

1시간은 대략 3년, 20년은 6시간이 된다.



그러니,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18분에 한 번씩만 지는 계절의 꽃비에 모두가 흠뻑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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