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은 어느 방향으로 인사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현대의 도시공원에 보다 능동적인 의미를 요구한다.
도시성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차원에서 도시 내의 녹지, 공공성을 지닌 공간, 열린 공간(open space)의 역할을 해내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내 도시의 공원이 보다 더 즐겁고, 매력적이길 바란다. 그에 따라 조경가들은 공원의 외양, 재료, 분위기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가미했고, 때문에 도시공원을 지칭하는 이름도 생태공원, 역사공원, 문화공원, 예술 공원, 가족공원, 미디어파크, 포켓파크 등. 1)도시의 공원, 경계와 매개의 수평공간, 조경진(2010)……(하.)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을 브랜딩했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 공원을 손에 넣었다.
서울에 상경해서 처음으로 마주한 공원이면서, 아주 오랫동안 ‘자존’을 찾지 못했던 섬. 그래서인지 더 짠하고 눈길이 가는 이 도심공원은 우리에게 어떤 장소로 남을 수 있을까?
‘오랜 첫 만남’이라니. 개장축제에 공원을 두고 이런 쉽지 않은 부재를 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골머리 좀 아팠겠군.’ 싶었다.
노새가 놀던 돌이 많은 지역,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받치던 불쌍한 시절을 지나 노들이 도시공원으로서 조명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5년이다. 문화단지조성계획에 따라 ‘한강 예술섬 사업’을 시행했으나 8년 동안의 추진과정 중 찾은 계획변경 끝에 결국 ‘한강 예술섬 조성사업’은 보류라는 딱지를 맞는다.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장소를 제공하고자 오페라극장보다 ‘청소년 야외음악당’ 건설을 먼저 추진하였고, 시행과정에서 친환경적 조성이라는 설계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다시 보류, 변경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 선정과 공사계약이 완료된 시점에 다른 민자 사업이 끼면서 그마저도 계약이 해지되었다. 2) 노들섬 그간의 이야기 한강예술섬 추진과정, 서울특별시 도시재생본부 공공개발센터(2014)
2009년 서울시 예산부족문제가 대두되면서 부채축소를 위해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기금 조례>가 폐지되었고, 이듬해 <한강예술섬 설립 운영에 관한 조례>폐지, 중앙투자심사 재검토 대상이 되면서 한강예술섬 사업이 고처를 겪은 것이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언제나 처음 예술섬 사업의 장기 보류로 인해 텃밭으로 임시 이용되던 노들섬을 도심 공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2012년 다시 불기 시작했다. 6번에 걸친 전문가 포럼, 노들섬 포럼, 다양한 시민아이디어 공모전, 사진공모, 엠보팅, 전문가 아이디어 스케치 등 노들섬은 새로운 도약을 조금 새로운 방식들로 시작했다. 첫, 시도. 엠보팅을 통해 약 6주동안 2500여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들섬 프로그램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휴식공간(60%), 문화공간(30%), 체험공간(10%)으로 선호도가 결정되었다. 3) 서울시 엠보팅 어플, 설문조사 결과 - 서울특별시 도시재생본부 공공개발센터(2014)
지금의 노들섬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자연성을 강조한 도심공원이라기 보다는 도시민의 휴식, 문화향유, 체험 공간으로 꾸며진 대에는 설문조사에 따른 시민의 요구가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수요조사도 중요했지만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인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실직적인 아이디어 구상안과 구상안의 목적을 공유하며 노들섬은 현재 복합문화기지의 기저를 다졌으리라 생각된다. 총 174명이 참여한 공모에서 나온 설계 키워드는 ‘활동공간(40%)’, ‘문화공간(30%)’, ‘자연공간(15%)’ 4) 노들섬 시민 아이디어 공모 결과 - 노들섬 홈페이지 이었다.
휴식과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면서(공원의 능동적 수요), 주말에 문화를 향유하고(일상 여가공간으로서의 공원), 자연을 즐기는(도심지안 녹지공간, 생태적 수요) 공간을 시민들이 필요로 하였다
.
북쪽으로는 용산을, 남쪽으로는 동작을
앞선 과정속에서, 노들섬을 면해보자.
참으로 오랜 기간 공원이 도시민에게 주어야하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노들 섬은 분주하다. 그렇게 노들 섬은 임시 개장을 했고, 오랜 기간 동안 한국 도시민의 필요와 인식변화를 감당하면서 노들만의 정체성을 가졌다.
영국의 작가 폴 드라이버(Pual Driver)는
공원은 생활 속으로 가는 문이자, 일상 가운데 쉼 혹은 휴지기와 같다.
라는 말을 남겼다. 도심 공원에 대한 폴의 통찰은 노들에도 적용되었다. 동작에서 다리를 가로지르다 노들섬 정류장에 내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강대교를 건너기 위해 고가 보행로를 통과 하게 된다. 이는 일상생활로부터의 단절이자 밖으로부터의 위요를 통한 공간의 분리이다. 거기에 한강이라는 엣지(edge)안에 강북과 강남을 잇는 전이공간으로서 노들은 한국의 몇 안 되는 도심 공원(urban park)로서 특성을 가진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지형으로 한국인은 산림의 일부를 도시공원으로 인식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산과는 완전히 단절되었고, 한강을 이어주는 끼인 공간. 노들 섬에 들어선 사람 누구든, 이 공원이 가져야 할 가치가 일상과의 관계에서, 또 도시와의 관계에서 자존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들의 키워드는,
사람들은 노들 섬이 ‘음악’이라는 STORY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리마켓 장소에도 노래가, 잔디마당, 라이브하우스, 뮤직라운지 모두 노래를 키워드로 했다. 축제 부스, 개장 행사를 제외하고 상시 어메니티인 음식, 서가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음악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테마에 공원을 맞췄다는 ‘브랜딩’의 시각보다는 ‘음악’이 가진 특질로 해석할 때 공간학적으로 달리 해석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가진다. 그리고 언어와 국가의 영역을 뛰어 넘는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노들섬 안에서 사람들의 행태는 음악에 국한되기 보다는 음악을 위한 시설을 취사선택하는 정도로 타협하였다. 인디밴드의 노래를 배경삼아 피크닉을 즐기고, 연인의 손을 잡고 산책하고, 춤을 추고, 책을 읽고, 술을마시고.
도시의 공원은 도시의 틀 안에서 가장 유연한 공간이면서도 설계자의 의도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필요충분을 가진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들섬 에서의 활동들은 설계자에 의해 어느 정도 한정된 활동(문화,예술,체험)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밖의 공백을 자신의 방식으로 채우고 있었다. 가령, 뜨거운 해를 피해 건물의 그늘 사면에 돗자리를 펴고 눕는다거나, 싸온 도시락의 음식과 노들섬 안 식당들의 음식을 섞어 먹는다거나, 이어폰을 끼고 사색을 즐긴다거나. 공원이 가지는 ‘비어있는’ 여유를 사람들은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사회학자 정수복이 말하길, ‘공원은 타인을 만나고 공동체 삶을 공유하는 장소이기 이전에 개인적 사색과 성찰을 위한 장소’ 5) 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 문학과 지성사/ 조경진(2014) 재인용. 라고 했다.
다시 말해, 공공성을 지니는 동시에 폐쇄적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향유자의 의도와 행태에 따라 공원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노들은 사람을 향해서 인사했다.
결국, 노들에서 우리가 본 도시공원의 모습은, 현대 도시민의 순간이었다.
‘당신은 휴일에 집을 나와, 가까운 공원에 들러, 무엇을 할 것인가요?, 단, 이 공원에서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라는 설계자의 제안이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하는가.
2019년 09월 28일 노들섬에 사람들은 화분을 심고, 책을 읽고, 햇볕을 즐기고, 노래를 듣고, 잔디밭에 눞고, 비눗방울을 불고, 요가를 즐겼다. 그 안에 설계자가 담아둔 설계의 키워드 들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뿐이다. 흙이 싫은 사람은 나무의 냄새를 맡을 뿐이었고, 책이 싫은 사람은 핸드폰을 들었고, 햇볕 대신 그늘을 찾았고, 자신만의 노래를 틀었고, 하고 싶은 운동을 했다. 도시민에게 공원이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수용되는 장소이다. 타인과 함께하고자 하는 만남을 중시하는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보장받고자 한다. 6)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의 도시공원관에 대한 재해석”, 조경진(2003).
혼자 있되, 혼자 아닌 ‘대중안의 나’이길 바라며 옆 사람을 등지고 눕는다.
결국, 공원이 어떤 어메니티를 가지던, 이용의 결정은 이용자의 몫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마주하고 답사를 마치며 사람이 노들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설계자에 의해 재단된 공간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으로서, 공원의 적극적 사용자로서 공원을 향유하는 세대를 살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 카메라의 모든 앵글이 이용자를 향한다.
그들이 얼마나 더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나를 제대로 된 설계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공고히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