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쓴 민법책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인문 교양서의 가치를 믿습니다. 이것 하나를 붙들고 오랜 집필 기간을 버텼습니다. 책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그러니까 집필 중반까지도 전문가와 비전문가 양쪽으로부터 부정적 피드백을 다수 받았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고도 어느 법률가 친구로부터는 '너무 쉬워서 영양가가 없다'는 피드백을, 다른 비법률가 친구로부터는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라는 피드백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자는 차라리 나에게 수험서를 써볼 것을, 후자는 차라리 (돈 버는 것과 직결된) 실용서를 써보라고 권해주었지요.
하지만 꼭 인문 교양서로 쓰고 싶었습니다. 수험서나 실용서는 이미 훌륭한 책이 여럿 있기도 하거니와, 인문 교양서만이 갖는 고유한 매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인문 교양서는 수험서에 비해 직관력 측면에서 우월합니다. 수험서는 학문적 엄밀성을 위해 백과사전식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원칙보다는 예외가, 정상보다는 병리적 사례가 더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예외를 수집하듯 공부한 사람을 곧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기초에 대한 직관을 탄탄히 한 사람은 새로운 응용 문제가 주어져도 금세 좌표를 찾고 쉽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인문 교양서는 실용서에 비해 상상력 측면에서 우월합니다. 대부분 실용서는 개별 사례를 나열식으로 소개하므로 내용상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하지만 설명과 현실이 너무 가까워지면 학문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혹자는 법학에서 무슨 상상력 타령이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법학도 여느 학문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며, 오랜 시간 수많은 연구와 논의 끝에 조금씩 발전한 것입니다. 상상력은 언제나 학문 발전의 큰 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무미건조한 실용서가 인문 교양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인문 교양서로 썼습니다. 아마도 책의 주요 독자층은 예비 수험생일 가능성이 높지만 (작가의 본래 소망대로) 수험 목적이 특별히 없는, 인문 교양서의 가치를 믿는 어느 독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많지 않더라도 분명 있으리라 믿습니다. 새로운 걸 배우고 그것을 렌즈 삼아 세상을 관찰하는 일, 그리하여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를 보고 이해하지 못한 현상을 이해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큰 즐거움을 선사해 주니 말입니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쓴 민법책 > 맺음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