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영상 통화를 걸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서로 얼굴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이라도 한 듯, 내 시간을 기다려줄 여유는 더 이상 없다고 조용히 주장이라도 하듯 그렇게 아무런 귀띔도 없이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화면이 나오고 있는건가"
몇 번을 해도 언제나 서투르다. 멋쩍게 검은 화면을 얼마간 응시하니 그제야 카메라 화면이 전환된다.
"오호이! 하우 두유 두 오 대위!"
그의 첫 대사는 항상 영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영어로 말 걸길 좋아했다. 그 어려운 시절에 국가 장학생으로 미국을 다녀온 게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 갈수록 쇠약해지는 목소리와 어눌한 영어 발음도 당신의 자부심을 모두 꺾진 못했다.
"코로나 잠잠해지면 곧 뵈러 갈게요 할아버지."
벌써 몇 달째 하는 똑같은 변명. 길지 않았던 대화를 서둘러 끝마친다. 노인 분들께는 코로나가 유독 위험하다고, 나이 많은 분들은 면역 체계가 좋지 못하다고 또 한 번 스스로 되뇐다. 비슷한 변명이 지겨울 만도 한데 그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래 그래 몸조심하고... 굿바이 오 대위!"
2.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잠투정이 그렇게 많았다고. 한 번 안 자기로 마음을 먹으면 누군가의 등 위에 올라가고서야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고생을 많이 했다.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다 지친 어느 아이가 그의 등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선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3.
오래된 담배 냄새와 딸기잼 토스트, 그리고 커피향.
나는 그를 냄새로 기억한다. 그는 아직 어린애는 커피는 안 된다며, 대신 토스트를 커피에 찍어 먹는 것까지만 허락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한 입이 어찌나 소중했는지 그의 집을 놀러 갈 때마다 토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지금도 호텔 조식의 마지막 코스는 반드시 그의 조리법에 따라먹는다. 두세 번을 구워 거의 타기 직전의 토스트에 듬뿍 바른 버터, 그리고 약간의 딸기잼. 이걸 우유가 조금 덜 들어간 카페 라떼와 즐긴다. 반드시 찍어서 먹는다. 그와 함께 즐겼던 예전 방식 그대로.
4.
오랜만에 다시 보는 그의 모습에서 낯선 냄새가 난다. 방은 익숙한 담배내와 커피향 대신, 불안한 영안실 화약 냄새로 가득했다.
언젠가부터 그의 몸집이 작아지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외면했다. 나를 키워낸 그 거대한 세계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단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런데 오늘은 그의 작아짐이 피할 수 없는 운명마냥 흰 천에 감겨 내 앞에 누워 있었다. 그게 슬퍼서 나는 기어이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