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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오수현
Oct 24. 2024
내 어여쁜 글쓰기에게
1.
아들이
아버지와
다른 뜻을 내비치면
그
는
대
뜸
화를 내거나
‘
아니’라는 대사와 함께
무거운 한숨을 내쉬곤
하
는
것이었다.
어린 소년에겐 후자가 더 큰 상처였다.
그래서 소년은 화법(話法)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하였다.
좀 더 자신있게 말하면,
좀 더 간결하고 짧게 이야기했으면 전달되었을 것을
그리하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많이 반성하였다.
방문을 꼬옥 잠그고
이불 속에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짧고 간결한 글에 오래도록 집착하였다.
단기간 내 장문을 주욱주욱 써내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다.
그래서 사무실을 정리했다.
도저히 남들만큼
기능
할 자신이 없어서.
그리하여 어여쁜 내 글쓰기는
이제야 걸음마를 떼는 중이다.
적어도 이제는
이 짧은 한 토막 글을 쓰는 데
며칠씩이나 걸리지 않으니까.
아직도 눈치가 보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글이란 걸 쓸 수 있다.
2.
부모님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
적어도 소년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한
번씩 다툼이 있는 밤이면
여자는 어김없이 소년의 방을 찾아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마음이 복잡하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해받길 원하면서도
이해받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소년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함께 우울해 주었다.
이해를 구걸하는 글쓰기,
자기연민에 빠진 글쓰기를 경멸하였다.
그러한 글은 이기적인 걸 넘어
폭력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싶을 때
,
바로 그때 글 생각이 가장 절실하였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없었다.
터질 것 같은 우울을 붙잡고 간신히 책상에 앉으면
텅 빈 화면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우울에 익사할지언정
경멸을 향해 몸을 던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랑스러운 내 글쓰기는
이제야 그 고운 첫걸음을 떼는 중이다.
꽁꽁 묶어두었던 당위를 벗어던지고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아직도 눈치가 보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글이란 걸 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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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소년
오수현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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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수필과 시를 씁니다. 언젠가 민법 교양서를 출판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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