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를 처음 만난 국사 시간을 기억합니다. 그날은 딴짓을 하거나 졸지도 않고 온전히 수업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국사 수업에 그토록 집중한 것은 아마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영특하고 재능이 많아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기대가 컸던 영조는 사도세자를 엄하게 교육시키지요.그런데시간이 갈수록 세자는 점차학문길에서멀어졌습니다. 문헌을 보면그의무예가적기질이남달랐던 것 같은데, 엄격한 분위기에서 책만 읽는 상황이 많이 답답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도세자는 결국 27세에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습니다. 무려 8일을 뒤주에 갇혀 울부짖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날 수업 시간에 왜 그토록 몰입하였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뒤주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이 심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 평온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서야 그날 느꼈던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느낀 감정의 정체는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의 비극을 통해 묘하게 내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난 그날 국사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한 편의 한국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던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 캐스트
어떤 상처는 너무나 개인적이고 깊어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내 마음이 고집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에 관련해서는 위로를 받고 싶으면서도 위로받고 싶지 않고, 공감받고 싶으면서도 공감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극을 읽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직접 건네기 힘들었던 위로 몇 마디가 흐느껴 우는 오이디푸스에게는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보았습니다. 앙상해진 그를 안아주고 오래도록 같이 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차츰 편해졌습니다. 나는 사도세자에게 위로를 건네주었는데, 돌이켜보니 그 몇 마디가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습니다.
2.
나에게 위로를 건네준 두 명의 "사도세자"가 더 있습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아들 알렉세이 페트로비치와, 소설 「변신」을 쓴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그 둘입니다.
러시아 역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합니다. 그럼에도 표트르 대제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표트르 대제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처럼 전 러시아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유명한 왕입니다.
표트르 대제가 즉위했던 시대는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입니다. 당시 서유럽 국가는 근대화를 이루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죠. 그에 비해 러시아는 발전이 뒤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공부를 하고 러시아에 돌아온 표트르 대제는 왕 즉위와 동시에 본격적인 근대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제도와 체제도 새것으로 바꿉니다. 러시아 옷차림도 이때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남자는 수염을 길게 길렀는데 표트르 대제는 국민을 서구화한다는 명분으로 수염을 짧게 자르도록 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아주 카리스마 있고 왕성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거대한 풍채에(키 203cm),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여 국무회의를 하면 측근 대신들도 기를 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그의 아들 알렉세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림만 봐서는 창백한 얼굴에, 평균보다 조금 더 왜소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Peter the Great Interrogating the Tsarevich Alexei Petrovich at Peterhof >, Nikolai Ge, 1871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도 처음에는 황태자로서 능력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반목이 생기면서 점차 사이가 안 좋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정신질환 및 술에 대한 의존 증상도 보였죠. 알렉세이의 마지막은 사도세자만큼이나 비참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반역죄로 심문과 고문을 당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사도세자가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입니다. 카프카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역작 「변신」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벌레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이유도, 문맥도, 해결책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눈을 떠보니 팔다리와 몸통이 벌레로 변해 있는 겁니다. 이 신박한 모티프는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 그만큼 많이 차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작가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카프카를 좋아하는 이유는 「변신」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그가 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 작품은 편지 형식으로 쓰인 자서전적 소설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카프카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의 아버지만큼이나, 또 알렉세이의 아버지만큼이나 왕성하고, 강력하고, 권위적이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수성가한 유태인 사업가였는데, 프란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하고 건강하고 먹성 좋으며 목소리가 크고 자기 만족감에 충만한, 우세하고 끈기 있고 인간 본성과 지식을 갖춘 진짜 카프카'였다고 합니다. 현실적이고 마초적인 아버지와 감성적이고 섬세한 프란츠는 성격이 너무 달랐고, 이 때문에 둘은 많이 다투었습니다.
카프카는 우울증과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열심히 글을 썼음에도 실제 출판사를 통해 제대로 낸 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주변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로 여겼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작품엔 이러한 고통과 아픔이 응축되어 있어서 지금까지도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3.
오래전부터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소재는 이미 10년 전쯤에 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소재를 내 밖으로 토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 목소리를 되찾는 날에 글을 쓰리라 마음만 먹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야 내 목소리로 이 글을 토해냅니다.
비슷한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당신께 이 글을 올립니다. 당신을 직접 뒤주 밖으로 꺼낼 능력은 내게 없습니다. 다만,몇 걸음 떨어져 아주 잠시 당신과울어드리겠습니다. 과거 나에게 해주지 못한 몇 마디가 아쉬워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