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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달(達)하지 못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그깟 관념론 몇 줄로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보다 적나라하고 동물적으로 폭발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들이 살 수 있다. 크로노스의 식탐은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틀렸다. 그는 자기 안의 아버지를 죽이는 대신 스스로를 짓이겼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즙으로 글을 썼다.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보는가. 그대들은 그의 우울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내는가? 온 사방에 이토록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
니체도 틀렸다. 그는 동물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이었다. 이것이 그의 실수다. 요컨대 그는 마지막까지도 철학자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했다. 덕분에 그의 이름은 불멸성을 획득하였지만 결국 자아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세상이 곧 모순인 고로 그 위대한 섬세함은 스스로를 버티지 못하고 망가지고만 것이다.
카프카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사건의 적나라한 본질에서 도망가지 아니하고 감히 신을 향해 글을 쓴 필멸자다. 그래서 나는 카프카를 사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치고 나갔어야 한다. 예컨대 그는 글만 쓸 게 아니라 권투라도 배웠어야 한다! 상대를 살아내기 위해 상대처럼 생각하고, 상대처럼 대응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랑스러운 작가였다. 그래서 그의 육체가 퇴화한 것이다, 한 마리의 벌레로.
한때 위대함을 꿈꾸었다. 더 큰 사람이 되는 걸 목표하였다. 허나 나는 다자이 오사무도, 니체도, 카프카도 아니다. 나는 그저 살고 싶은 범인(凡人)일 뿐이다. 그와 나 사이에서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건 반드시 나여야 한다.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바에는, 처절하게 살아남겠다. 나는 철학자도, 작가도 아니므로. 그저 숨을 쉬고 싶은 한 마리 동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