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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아저씨 May 18. 2022

낯선 곳, 여행이 주는 가르침

인생에서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

나는 아직도 낯선 곳을 향한 소년의 꿈을 가지고 산다. 그렇게 나는 일 년에 한 번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인천공항을 찾게 된다. 그리고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꿈에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첫 번째 여행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대체 무엇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지루하고 심심한 나만의 여행은 호주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호주 멜버른이었다.


단돈 250달러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버텨야 하는 나의 호주 생활은 이러했다.


>>> 기상후 동네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 

>>> 아침을 최대한 많이 먹는다.

>>> 도시락과 수돗물 한통을 챙긴다.

>>> 왕복 기차(지하철) 티켓을 산다.

>>> 도심지로 나가서 하루 종일 걷고 구경한다.

>>> 막차가 끊기기 전에 돌아온다.

>>> 저녁식사 후 취침.


적어도 내가 꿈꾸던 그런 여행은 아니었다. 여행이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가르침은 도전이었다.


점심시간 지역신문에서 오려낸 쿠폰을 들고 당당히 햄버거 가게로 향한다. 그러나 내가 구사하는 영어는 고작 메뉴를 손으로 가리키는 수준이었고, 결국 나는 햄버거 하나도 못 사 먹는 바보가 되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피해 눈물을 보이며 햄버거 가게를 뛰쳐나왔을 때는 정말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나는 군대에서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타국에서의 새로운 문화와 언어는 주변의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철저히 준비된 여행자의 지식과 노력조차도 첫날부터 일정이 꼬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틀어진 계획과 예상치 못한 고생길 여행은 평생도록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노련한 가이드가 안내하는 패키지여행은 금세 기억에서 잊히거나 평범한 여행으로 기억되기 십상이다.


미지의 세상으로의 떠남은 필연적으로 아주 긴 도보 여행을 동반한다. 지금이야 온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구글맵으로 못 찾는 지역이 없지만,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종이로 된 큼지막한 지도를 펼쳐놓고 루트를 점검하는 것이 배낭여행자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지금도 종이로 된 구닥다리 관광안내 지도는 꽤나 유용하다. 그리고 처음 방문하는 마을에서 현지인의 조언은 그 어떤 여행 책자보다 더 훌륭한 정보를 제공한다. 인터넷에서의 정보가 반드시 현재 최신 업데이트 정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현지인들에게 물어가며 정보를 얻는 편이다.


배낭을 들쳐 메고 둥글게 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낯선 생김새와 특정 도시에서 풍겨 나는 독특한 냄새 그리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알지 못할 소리들로 둘러싸여서 말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이방인의 내 모습은 어색하게만 느껴질 테다. 그럼에도 흐르는 시간을 통해 나는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점점 스며들게 된다. 


여행이 내게 알려주는 두 번째 가르침은 실패였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나를 포기하도록 몰아세운다. 이때 여행자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쉽고 편한 익숙한 길을 택할지, 아니면 예측 불가능한 도전을 계속할지 결정해야 한다. 어찌 보면 배낭여행객에게 가장 큰 배움은 반복되는 실패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다음 행선지로 향할 수 있는 그 덤덤한 자세이다. 우리 인생도 나이를 들어가며 좌충우돌하는 그저 시행착오의 연속이 아니던가.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어휘적인 정의가 있다. '실패'란 기존에 알지 못했던 잘못된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실수'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혹은 이미 경험한 오류임에도 반복되는 잘못을 의미한다. 모험을 할 때 나의 팁은 '실패는 최대한 많이, 실수는 최소한으로'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힘든 길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렇게 내 돈 내산 고생길이 펼쳐진다. 그리고 힘들고 고생스러운 길은 언제나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그중에는 인생에 대한 지혜로운 답들도 존재한다.


여행은 참 기묘한 매력이 있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것들 뿐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초보 여행자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또한, 여행 중에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은 나의 손을 붙잡고 초조함과 고독의 늪으로 안내한다. 이때가 되면 나는 깊은 사색에 빠져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후회스러웠던 모습을 떠올리고, 내가 떠나온 곳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인내와 고독을 통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행이 들려주는 세 번째 가르침이다.


나는 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런데 조금만 친해지면 서로의 인연이 평생 지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별을 나눌 때면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한 채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작별인사를 나눈다. 처음에는 여행이 내게 주는 만남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도 연락처는커녕 이름도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함께하는 시간 동안은 정말 그 누구보다 친하게 그리고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남기려고 한다. 


뉴욕에 있을 때의 일이다. 잠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식품점 한 편의 스탠딩 테이블에서 초밥 한 접시를 먹고 있으니, 옆자리에 금발의 아가씨도 나와 같은 초밥을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초밥 이야기로 서로 말을 섞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 금방 친해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친구는 네덜란드에서 온 패션 디자이너라고 했다. 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었을까.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깨닫게 된 점은 그 누구도 이름이나 연락처조차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쿨하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인연이라면 이름이나 연락처 따위는 몰라도 언제가 반드시 또 만나겠지..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된 계기도 여행이었다.  


사람과 만남에 대한 욕심은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은 떠나는 사람에게는 설렘을 돌아오는 이에게는 추억을 선물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진정 여행을 이해하고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름의 용기라는 티켓이 있어야 한다. 전 세계가 펜데믹에서 이제 막 회복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 어디로 떠날지 한 번쯤 즐거운 상상에 빠져보는 건 사치일까? 아니 이런 사치는 충분히 누릴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다음 행선지는 어떤 곳일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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