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Jun 16. 2020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처럼.

'호기심 할아버지.'

우리 집 맨션(단지)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보통의 현대식 건물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각형의 생김새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사각형 건물이 몇 개가 모여 또 하나의 큰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까. 노파심에 조금 더 묘사를 해보자면 아내와 나는 종종 저녁을 먹고, 아주 간단한 산책을 할 겸 이 건물들로 이루어진 큰 사각형 한 바퀴를 돌고는 한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사각형 단지 내의 멘션 어딘가에는 분명 그도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바로 그 이름하여 '호기심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우리 맨션 단지를 돌고 있다. 마치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할아버지가 전혀 우스꽝스럽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그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삼아 단지를 돌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께서는 근래의 몇 년 전에 신체에 이상이 생겼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럽고 안면에는 약간의 마비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갈 때면, 여지없이 그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루에 적게는 한 번에서 많게는 세 번까지 마주침을 알게 된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도브리덴!"... 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소리 내어 답하지 않았고 나는 무시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의 무시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는 분명히 나를 쳐다보았고 그 눈은 분명 내게 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관해 무엇하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호기심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 앞에 공사를 한다거나, 다소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그는 반드시 걸음을 멈추어 지긋이 그것들을 한참이나 보고 있고는 한다. 멀리서 훔쳐보는 종류의 것이 아닌 바로 곁에 서서 가만히 수십 초 동안이나 응시한다. 그것은 마치 관찰에 가까운 움직임이기에 충분히 이상함을 자아내지만 또 이상하게도 그다지 기분이 나쁜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출근길, 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올 때 역시 그는 걸음을 멈추어 우리의 차를 응시하고 만다. 아내가 타고 있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마중하는 나의 곁에서 그가 함께 서서는 나의 시선을 따라 아내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배웅을 한 것이다. 역시 나는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채 말을 건다. "알지, 내 아내?" 그런데 그때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그의 음성이 들렸던 것이다. "어디 가는 거야?"라고.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그의 겉모양 새가 좋아진 것 같다. 어쩐지 전보다 깔끔해진 느낌에 언제부터인지, 어느새 나와는 '도브리덴'이라 인사도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방금도 택배를 받으러 나온 김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내 앞에 그가 또 지나가고 있다. 오늘도 벌써 점심도 되기 전에 두 번이나 그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나도 예상외로 그가 내 옆구리에 껴놓은 택배 상자를 툭 치며 장난을 건다. '이럴 수가!' 놀랍고도 반갑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그리고 분명 당신도 엄청 그리워지겠지요.'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적은 지 대략 일주일이 지났는데, 며칠간 보이지 않는 그가 괜스레 걱정되는군요.


작가의 이전글 리트리버의 코 위에 과자를 올려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