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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an 28. 2021

두오모에 오르자.

퍽이나 좋은 연애를 하셨구먼!


['いつか一緒に登ってくれる? 언젠가 함께 올라가 줄래?'] 침대에 길게 드러누운 '아오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쥰세이'에게 물었다. 앞서 말한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의 첫 장면이다. '글쎄, 이 영화의 내용이 그렇게 좋았었나.' 반추해보면 그다지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특히 여주인공은 분명 미스캐스팅이었지). 그래도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이유의 절반은 순전히 이 첫 장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그 시절의 나는 유럽의 고성당 꼭대기를 한걸음 한 걸음씩 연인과 손잡고 내디뎌 올라가는 그 감성이 참으로 아름답다 느꼈었나 보다.


그런데 십수 년이 지나 처음으로 올라간 유럽의 고성당은 내가 꿈꿔왔던 그림과는 참으로 달랐다. 이럴 수가!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만큼의 체력 또한 없었던 것이다. 당시 연인이었던 아내와 손은 잡고 있었지만 이 손잡음은 마치 걸음을 가누기도 힘든 환자와 간병인의 몸짓과도 같은 것이어서.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고 심지어는 발아래의 풍경들 조차 여유 있게 내려다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꼭대기에서 바라보던 풍경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오직 힘들었던 그 계단 통로의 기억만 또렷할 뿐이다.


이쯤 되면, 과연 '냉정과 열정사이'의 원작자들은 '실제로 두오모를 올라가 보기는 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특히나 원작인 소설은 마침 남자 1명, 여자 1명의 공동집필이니, '두 분이서 손이라도 붙잡고 다녀와야 했었던 것 아닙니까?'라며 항의해보고 싶지만. 사실은 '소설가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하고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에 와서, 파울로 코엘료에게 찾아가 그가 정말 연금술을 배웠는지 추궁을 해본다 한들, 그가 모래 바람에 몸을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내가 '냉정과 열정사이'를 떠올리며 이렇게 구시렁거릴 수 있는 만큼이나, 내 아내는 아소토 유니온의 'think about'Chu'를 들으면 잠시간 감상에 빠지고는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타고 다니던 2호선의 풍경과 감성이 살아난다나 뭐래나. 물론 thinl about'Chu는 명곡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지금껏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내 생각을 털어놓자면(말하자면 분명 혼줄이 날 것이다), 나는 사실 아내의 저 멘트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고는 한다. '얼씨구!, 신입생 시절 퍽이나 좋은 연애를 하셨구먼 그래!'


그런 의미에서 가끔 나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하고 상상한다. '돌아간다면 쓸데없던 연애에 헛짓거리 하지 않고, 바로 아내에게 찾아가야지.'라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정말로 시간을 돌려 좀 더 어린 시절의 우리도 돌아간다면, 그녀를 찾아간다 한들 대차게 차이지 않을까. '내가 당신의 미래의 반려자입니다'라 진지하게 설득해 본들, 경찰에 신고만 당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이러쿵저러쿵 궁리를 해보아도, 내가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맘 졸이던 시간만큼이나, 아내의 아소토 유니온 감성도, 소설가들이 하는 일들도 꼭 필요한 것이겠거니 한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함께 두오모에 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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