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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Feb 04. 2021

무시로

그 맛깔스러움이 참 부럽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혼자인 어느 날 소주가 한잔 하고 싶었던 거야. 소주는커녕 술맛도 잘 모르는 주제에 왜 가끔은 그렇게 혼자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주섬주섬 옷을 입고, 신발장을 넘어 문 앞을 나설 때까지도 '나가기 귀찮은데, 그냥 침대에 누워있을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 날만큼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걸음을 재촉해 보았던 거지.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된 교대역 사거리의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았어. 거참,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도 잘 마시던데, 역시나 술자리는 함께여야만 하는 것인지 나만 빼고 다 왁자지껄하던걸.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치고 셔츠를 걷어 올린 아저씨들, 그리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커플이 보였어. '아저씨들은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참, 먹고살기 힘들지요?'부터 '저기 저 녀석, 여자 앞에서 잔뜩 폼 잡고 있지만 머릿속엔 아마 뒷골목에 늘어선 모텔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겠지?' 등의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들이 펼쳐져.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머릿속에 십수 년 전의 추억이 떠올랐던 거지. '그러고 보니 우리도 이 포장마차에서 엄청 마셨었지.' 하고 말이야. 왜 추억은 장소에 얽매여 있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공상이 이어질 즈음이었어.


"이미 와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하는 구성진 트로트 가락 소리가 들리는 거야.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무심코 시선을 돌려보니. 이게 웬걸. 나 말고도 혼자 온 아저씨가 있었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 아저씨 초저녁부터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소주병을 감싸 안고 두 팔을 괸 상태로, 다시 그 위에 머리를 이고는, '흔들흔들' 하고 있더라고. 그러면서도 쓰러질 듯 말 듯, 또 쓰러질 듯 말 듯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보고 있던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하던지. 마치 중국 기예단의 외줄 타기라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니까.


그런데 있잖아. 문득 그 순간 그 아저씨가 부르던 그 트로트 노래 가락이 내 가슴에 꽂혀버리더라고. 이전까지 '남진', '나훈아'도 잘 구별하지 못하던 나인데 참 신기한 일이지. 나는 이 아저씨가 부르던 '익숙하지만 잘 모르던 노래'의 제목과 가사가 궁금해졌는데, 차마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어. 평소라면 주변 누구에게라도 '혹시 이 노래 제목이 뭐였지요?' 하겠지만 그날은 어쩐지 혼자인 내가 초라하더라고. '포장마차에 홀로 있다는 건 이런 것이로구나'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기억나는 대로 가사를 검색해보았어. 그러니까 정답은 '나훈아의 무시로.'


다시 돌아온 2020년의 프라하, 라디오 스타를 보다가 '가수 이은미'에 감탄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했던 포장마차 에피소드를 짤막하게 털어놓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이야기를 참 맛깔나게 하는구나'생각했다. 재치 있는 입담꾼의 기술들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불구, 순간의 흡입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이은미의 가창력이 대단한 것이야 그녀의 노래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새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녀가 왜 손꼽히는 가수인지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던,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던, 나는 그 맛깔스러움이 참 부럽다.






20년 겨울 즈음에 써두었던 글인데, 이때 업로드를 안 하고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목의 통증 탓에 그림을 그리지 못해, '나중에 그림을 그려 같이 업로드를 하자'생각했던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된 요즘. 그림은 이제 다른 곳에 그리며 브런치에는 써두었던 녀석들을 그대로 업로드하고 있네요. 이것 참 지난겨울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게으름도 가지가지라 할까요.


한국은 또!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심심하면 눈이 쌓일 것 같은 동유럽은 올겨울 얌전하게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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