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Feb 08. 2021

가끔은 투정 부리는 것도 괜찮잖아.

손이 가는 대로 써져서는 볼만한 글이 탄생되는 마법.


가끔은 나도 천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가끔은 보다는 조금 더 자주. 물론 양심상 아인슈타인 같은 심각한 천재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는 '언어 천재'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언어 천재라고 하면 그 위대함이 잘 전해지지 않으니 첨언하자면, 예를 들어 독일에서 학회 발표를 보름 정도 앞두고, 독일어를 공부해서 결국 원어로 발표를 하는 천재가 있더라...)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글을 쓸 때, 손이 가는 대로 '솩솩' 손목에 스냅을 주면 어느새 볼만한 글이 탄생되는 정도의 기민 함이랄까.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보통 인간이 가장 좌절할 때는 자신의 목표가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을 깨닫는 때라 하건만, 내게 있어 '솩솩' 써지는 글쓰기는 일치감치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가 '소재의 신선함'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의미는 단순히 특별한 어느 소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와 연관된 이야기가 이 소재와 더불어 자연스레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녀석들이 자연스레 얽매이게 만드는 것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연어 초밥을 먹다가 강산에의 노래를 생각하고, 장어 덮밥이 먹고 싶을 때 아내와 함께 간 아사쿠사 여행을 떠올리지만, 결국 이것들을 엮어 내는 그 접점이 내가 생각하는 글의 심장이라고 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심장'따위의 표현은 나의 생각이려니 다른 누군가에게는 '목이나 어깨'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작가나 독자들에게는 지금까지 열심히 떠들고 있는 나의 이야기가 별 것들이 아닐 수 있다. 증상을 느끼기에 '심장 마비'와 '요통, 관절염'은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이 접점이 번뜩이며 잠시 모습을 보였을 때, 미루지 않고 어딘가에 메모를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 폰이 있으니, 이것을 위해 굳이 펜과 수첩을 지니고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 다행이긴 하다(물론 이것을 위해 펜과 수첩을 지니고 다니는 모습은 굉장히 멋져 보이긴 하지만!). 그런데 문제는 이 생각의 번뜩임이라는 녀석은 너무 재빠른 법이라서 도통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고 할까. 마주하면, 바로 다가가서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해야지. 더 기다리며, 좋은 타이밍을 재는 영업사원 흉내를 내다가는 영영 잡을 수 없게 된다.


아! 여기서는 명함을 건네며 다가서는 영업사원보다는,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이상형이 좀 더 어울렸으려나. 뭐 그래도 스스로에게 한 가지 위로를 하자면, 버스정류장에 서있던 불특정 다수(?)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인에게는 말 한번 붙여보지 못했다 한들, 인연은(좋은 글)은 결국 만나게 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믿으며 좋은 생각들을 마주하게 될 때까지 꾸역꾸역 다듬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천재가 아닌 모든 범인의 숙명이겠지.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고.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별생각 없이 떠오르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투정을 부려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역시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작년 겨울에 썼던 이 글과 비슷한 내용을 아주 최근에도 작성하고야 말았으니까요. 다행스러운 것은 이때의 글만 봐도, 최근의 정신상태가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주가곡선과 같은 거라 어차피 다시 등락이 있겠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우상향 하는 그림이 되는 것이라 믿어봅니다. 다시 시작된 한주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무시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