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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an 26. 2021

두 번의 적색경보.

발목과 고관절.


발목이 욱신거려서인지 자다가 깨어났다. 엊그제 집에서 점프를 한번 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왼쪽 발목이 말썽이다. 늘 거주하고 있는 집인데 엊그제는 왜 하필 천장이 높아 보였을까. 그리고 왜 하필 점프를 하면 그 천장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까. 그것도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주제에 말이다.


2년 전 한국으로부터의 연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갑자기 심해져, 일단 귀국하라는 적색경보였다. 분명히 기억하는 그 날은 일요일 새벽으로, 아내와 나는 모처럼의 베를린 여행 중이었다. 아침이 되기에도 한참 모자라게 꿀잠을 청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지구 반대편의 난데없는 새벽 전화는 불안했고,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수 킬로를 돌아 서울에 도착했다. 가능한 한 최대속도로의 귀국. 그리고 다행스레 아버지는 깨어나셨다. 조금 기력을 회복한 아버지가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하마터면 니 얼굴도 다시 못 보고 갈뻔했어.' 나는 병실 밖으로 나가 눈물을 훔쳤다. 다행히 내가 잠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회복하셨다. 아버지의 병환은 쉽게 말해 당뇨인 상태에서의 반복된 수술이었고, 노쇠한 몸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특히 마지막의 부러진 고관절 수술에 깨어나기 힘들어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회복되고 있었지만, 가족들의 고생은 여전했다. 특히 아버지만큼 예민한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지경이라 어머니의 고생은 더욱 남달랐다. 고관절이라는 것이 참 사람을 애먹인다. 고관절을 다쳐본 적이 있는 나는, 우리가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힘이 고관절을 통과한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고관절이 아프면 동작 하나하나에 괴로움이 있다. 그렇게 아버지 역시 침상에서 불편해하셨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다.


특히 꼭 지켜야 사항 중의 하나가 절대 침대에서 다리를 꼬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다리사이에 베개를 끼워 고관절의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집부렸고, 완고했다. 곧잘 다리를 꼬우신 채로, 베개를 던져버리시곤 했다. 스스로에게 편한 자세를 유지시키려는 그의 시도는 온 가족의 불편함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와 중, 결국 폭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렇게 나는 소리쳤고,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위한다고 질러버린 화였지만, 그 화를 들은 아버지는 내심 서운하셨을지 모르겠다. 아버지 역시 지지 않고, 내게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셨지만, 난 그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런 싫은 소리를 가슴에 새길만큼 마음이 한가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은근 신경이 쓰이셨던 것일까. 얼마 후 그는 본인의 행동에 대해 가족들과 간병인에게 사과하시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겨우 발목 따위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깨어버린 이 새벽에 나는 불현듯 그때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도통 밤에 잠들지 못했던 아버지. 수면제도 함부로 맞지 못해 계속 뒤척이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나이도, 몸의 상태도, 편안한 집이 아닌 병원이었던 것도. 무엇하나 지금의 나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아버지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다시 걸려온 두 번째 적색경보에 나는 또다시 급하게 귀국했지만, 결국 '하마터면 니 얼굴도 못 보고 갈뻔했네'와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잘 지내실까. 내세라는 것은 존재할까. 한때 우리 집을 지탱하던 그 큰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언젠가 내가 눈감지 않으면 결코 확인할 수 없는 물음들만 가득하다. 그저 나는 지금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가 여기서보다, 고생하시던 말년보다 훨씬 더 편히 계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요즘 들어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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