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영 Jan 16. 2024

결혼, 그리고 Family warming party

새 사람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방법에 관하여

영어 표현에 'A home warming party'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사 후에 친구들에게 새 집을 소개하고,

친구들은 새 집을 채우기 위해 선물을 주는 행사'이지만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 파티'라는

직역의 의미가 더 마음에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들이라고 하지요.


지난 12월 초에 조카가 결혼을 했습니다.

의사가 직업이라 호조건의 중매가 많았지만

다 물리치고 독신으로 살 것 같은 처조카가

갑작스레 마음을 바꾸어 결혼을 선언했습니다.


14살 어린 신부를 선택해서

14살 많은 장인 장모를 모시고 결혼을 했습니다.

남녀사이에 나이차이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서울 살던 새댁에게는

남편의 고향인 부산이 낯설고

한참 나이 많은 동서가 부르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거북하고

시댁 식구 대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서 이모들이 '새 사람을 위한 가족 환영 모임'을 계획했습니다.

이른바, 'A family warming party'를 준비했습니다.



여섯째 이모가 소유한 부산 가까운 곳에  위치한 리조트에 모였습니다.

신랑 신부, 신랑 동생 부부, 동서 부부, 조카와 조카 손주를 포함해 14명이 함께 했습니다.

대게, 회, 김치찜, 삼겹살, 과일과 양주 등을 푸짐하게 준비했습니다.


2박 3일 동안 단 한 끼 중복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끼 다른 메뉴로 식사를 했습니다.

중복된 메뉴는 미역국 새알입니다.

다섯째 처제가 재래시장에 찾아가 찹쌀과 맵쌀을 7 대 3 비율로 섞어 쌀가루를 빻고

넷째가 직접 짜서 건네준 참기름을 부어 미역국을 끓어 왔습니다.

아침 두 끼를 먹기 위해 셋째 동서가 쌀가루를 치대어 익반죽을 만들고

처형과 처제, 동서와 내가 둥글게 새알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새알 만드는 법과 모양이 달랐습니다.

크기가 일정한 경우도 있고, 고르지 않고 크거나 작기도 하고...

새알이 붙지 않도록 띄워는 간격도 달라서, 일정하거나 또는 어지럽게 흩트러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알을 미역국에 넣어  새알 미역국을 끓었습니다.

셋째 처형이 최종 국 간을 맞추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준비와 정성이 어우러져 새알 미역국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두가 그 맛에 반했고, 한 그릇 더 요청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아침으로 먹는 음식인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새알 미역국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먹던 옛 기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참 맛이었습니다.


조카 손주 딸은 중학생입니다.

그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춤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족들이 모였으니 딸에게 춤을 추어 보라는 조카의 제안에

손주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군.'이라고 혼잣말을 남기며

거실 중앙으로 나가서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춤을 기억하고 있다.', '한번 보면 저절로 따라 출 수 있게 된다.'라고 하면서

연거푸 3곡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몸이 유연했고 관절은 자유롭게 튕겨 나갔습니다.

처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춤을 마친 손주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키도 크서 춤이 너무 멋있었다.'라고 하니

'얼굴도 받쳐 주니...'라고 손주가 응대했습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의 기상에 박수를 쳤습니다.

할아버지 세대가 손주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오시리아 해변 산책로를 가볍게 걷기로 했습니다.

기장 동암마을에 차를 주차하고

힐튼호텔 앞 해변가를 거쳐 반얀트리 리조트 앞까지 산책했습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량했습니다.

해광사의 해상법당 앞에는 새해의 복을 비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이 피어오르는 힐튼 호텔 야외수영장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목만 빼어 들고 바다모습과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자기들은 추운 날씨에 몸을 움츠리고 걷는 산책객들을 처량하게 내려다보겠지만

우리는 추운 겨울날 온천에 몸을 담그고 목만 물밖으로 빼어 들고 있는

일본원숭이를 연상하면서 웃음을 날리며 걸었습니다.


드디어 밤이 돌아왔습니다.

전날 밤에 즐겼던 카드놀이에 재미를 붙인 새댁이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카드게임은 아주 단순해서 남녀노소가 다 즐길 수 있습니다.

먼저 카드 두장을 받고, 자기 차례가 되면 카드 한 장을 더 받을지 말지를 선택만 하면 됩니다.

새 카드의 번호가 기존 카드의 번호 사이에 들어오면 승자가 됩니다.

예를 든다면, 1과 10의 카드를 들고 있으면 이길 확률이 커서 카드 한 장을 더 받게 되겠죠.


가족 3대 11명이 둥글게 앉아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번번이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1과 12를 들고 이길 것을 확신하지만, 새 카드의 번호가 1로 확인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두 카드 사이에 올 가능한 번호가 4개뿐인데도, 추가 카드를 받아 이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카드 한 장만 확인했는데 번호가 12일 경우, 나머지 카드를 확인하지 않고 베팅하는 경우도 었습니다.

 카드 11을 받아 베팅한 만큼 배당을 받았는데, 두 번째 카드를 뒤집어보니 10이었습니다.

처음부터 12와 10인 것을 확인했다면 새 카드를 받지 않고 포기했겠지요.

비록 같은 번호나 연속된 두 번호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판돈을 보태기 위해 배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계속적으로 지던 손주가 성을 참지 못하고 3과 5를 가졌는데도 새 카드를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큰 아빠가 되는 신랑이 '네가 이기면 만원을 주겠다'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새로 받은 카드 번호가 4로 확인되었습니다.

손주는 '칼날 같은 선택'을 했다는 칭찬과 함께 만원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카드게임을 처음 해보는 새 신부가 재미에 푹 빠진 모양입니다.

배를 잡기도 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큰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게임이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신부가 카드게임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신랑이 말했습니다.

신부는 아주 신중한 편입니다.

두 카드의 번호 간격이 충분히 넓을  때만 추가 카드를 요구해서 이기는 승률이 높았습니다.

신부가 돈을 따고  신랑이 돈을 잃는 형국이었습니다.

게임에 임하는 신부의 자세는 진중했고, 이길 때마다 신부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게임의 재미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습니다.


조신해 보이던 아래 조카며느리의 카리스마를 게임판에서 확인했습니다.

패를 돌리는 솜씨가 범상하지 않았고, 게임에서의 선택은 확고했습니다.

여러 번 잘못된 선택으로 자녀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아이들이 져서 낙담할 때

'엄마만 믿어.'라고 확신에 찬 말로 자녀들을 도닥거리는 모습은 여장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릴 때 남매들은 잘 다툽니다.

나란히 앉은 손주 남매는 엄마의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

서로의 선택에 훈수를 두면서 이기고 지는 결과에 따라 아웅다웅 실랑이를 펼쳤습니다.

그  순간이 진중한 가르침의 순간입니다.

"힘들 때 가족은 힘을 합치고 하나가 되어야 어려운 순간을 극복할 수 있어.

잘 풀리지 않을 때 비난하고 서로 탓하면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니?"".

아이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에서는 표정관리가 중요해.

잘 들었다고 좋아하고 못 들었다고 시무룩해지면 상대방이 너의 패를 다 알 수 있어."라는

얘기에 아이들의 표정과 마음가짐이 차분해졌습니다.

집중력을 높이고 자신의 승부욕을 충족시켜  주는 훈계이고,

함께 즐겁고 신나게 즐기는 시간에 들려준 한 마디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집안 어른들과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훈육이 아이들을 달라지게 니다.


이 날도 새벽 2시까지 게임이 이어졌습니다.

번번이 예상을 뒤엎는 게임, 예외적 결과에 다들 즐거워했습니다.

지난 수 년동안 이렇게 재미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웃음보가 터져 나왔습니다.

마음이 즐거워져서 다들 젊어진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기장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눈 부셨습니다.

해 뜨는 사진을 찍어 부산에 온 기념으로 조카에게 선물로 전달해 주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 는 태몽을 꾸었다.'는 신부가

"사진이 태몽과 너무도 비슷하다."라면서 좋아했습니다.



 이번 `A family warming party'를 통해

새 신부에게는 함께 웃고 즐기는 동안 낯선 시댁 식구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지고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먹서먹했던 세대 간 간격의 폭도 줄어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조카의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같은 눈높이로 마음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

각자 바쁘게 살면서 소원해진 형제간의 우애도 다시 회복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박안대소'라는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매월 회비를 내고 주기적으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처가 식구인 '박'씨 식구들과 '안'씨 조카 식구들이 모여

크게(대) 웃음(소)을 지으며 즐기는 모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우울해질 때

함께 모여서 크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가족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다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충전하는 장이 펼쳐지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손바닥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