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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Dec 02. 2022

걱정되고 밉고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그때 그 아이_ 첫 번째


드르륵 탁.

멈칫.


꽤나 뻘쭘한 순간이었다.

그 아이는 선생님 책상 서랍에서 내 가방을 꺼냈고, 그 가방 속에서 내 지갑을 꺼냈고, 그 지갑 속에서 내 오만 원짜리 두어 장을 꺼내던 참이었다.

'요즘 내가 돈을 많이 쓰나?' 스스로 자책했던 요 며칠이 우스우면서도, 내 돈을 대신 써 주고 있던 누군가를 직접 목격하고 나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역시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걸 알았을까, 재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미 몇 번의 성공의 경험은 너에게 용기를 주었겠지.

에이씨, 오늘은 타이밍이 안 좋네. 아마 머릿속으로 욕을 했을 거다.


그날도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긴 한숨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으며 과연 자식이 뭘까, 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행복한 날은 있었을까, 싶은 생각에 이십 대 후반의 미혼이었던 여교사는 오랫동안 착잡했다.




키 크고 잘생긴 6학년 남자아이였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고 당연히 공부는 좋아하지 않는 아이. 학교에 친구 만나러 오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 같은 건 큰 의미 없는 아이였기에 결석이 잦았다. 세심하게 돌봐주는 부모가 없는 탓이 컸다.


아이 말로는 아빠랑 엄마가 이혼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소리를 못 듣는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다.

학교에 안 나오는 날'엄마 집'에서 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아이의 어머니와는 연락할 길이 없었고, 아버지는 세세한 설명이 없으셨다. 무뚝뚝하셨고 단답형 대답 외에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주로 하셨다.


학교에 꼬박꼬박 오기만 해 줘도 그나마 점심은 잘 먹 수 있으니 맘이 편했다. 날이 더워질수록 아이의 몸에서 씻지 않은 냄새가 스멀스멀 났지만 나름 겉치장에 신경 쓰는 아이가 자존심 상해할까 싶어 에둘러 위생 교육을 하기도 했다.

수학이 뒤처지는 것, 숙제를 안 해오는 것을 그 아이만 특별히 '매일' 봐줄 수는 없었다. 맘 잡고 학교 끝나고 남아서 같이 하자고 하면 어느새 도망갔고, 다음 날 학교도 오지 않았다. 괜한 욕심부렸구나 후회하며 그저 눈앞에만 있어줘도 다행인 나날이었다.




교실에 그 아이만 있는 것은 아닐 터. 말 많고 일 많은 6학년 담임 생활이었다. 세 번째 맡은 6학년이었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여전히 미숙했고, 어렸고, 열정과 요령의 효율이 부족했다. 출퇴근길마다 '왜 이런 아이를 만나서 고생일까.' 투덜대며 오고 가던 어느 날의 오후, 교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6학년 () 반 선생님이시죠. 여기 학교 앞 편의점인데요, 지금 와보셔야겠어요."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철렁 내려앉은 가슴 달래며 후다닥 달려갔다. 역시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편의점의 물건을 훔치다 딱 들킨 그 아이가 편치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낌새가 수상한 지 여러 날이던 차에 마음먹고 지키시던 사장님께 바로 잡힌 아이였다. 앞뒤 이야기 들으며 상황 파악하던 중에 사장님이 집에도 연락하셨는지 편의점으로 아이의 아버지 들어오셨다.

 

빠악.

"꺅, 피예요, 피!"


내가 인사드릴 틈도 없이, 아이와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냅다 아이의 머리를 후려치신 아버지.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바로 새빨간 피가 아이의 머리에서 이마, 코를 지나 줄줄 흘러내렸다. 아이는 짜증 내며 울었고, 아버지는 화를 냈고, 사장님은 당황했으며 나는 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내가 아이의 얼굴을 닦으며 달랬고, 아버지를 달랬고, 사장님께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일일까 궁금한 마음에 웅성웅성 모여든 사람들 틈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치밀었던 화를 힘으로 쏟아내고 말았던 아버지도 약간은 진정되신 것 같았다. 사장님과 나에게 쭈뼛쭈뼛한 사과의 말씀을 건네신 후에 아이를 데리고 가셨다.






문득 그 아이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아마 나는 그 아이가 미웠던 것 같다. 늘 사고를 치는데, 또 그 사고는 터질 때마다 커서 나의 온 신경과 에너지를 빼앗아간다고만 여겼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어른들로부터 받는 비슷한 시선과 감정에 익숙했을 것이고.


그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이십 대 후반의 미혼이었던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을 만났다면 아이의 한 해가, 아니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까 하는 미안함의 감정이 함께 온다. 어느덧 삼 심대 후반의 기혼, 내 아이를 키우는 엄마 선생님이 되고 보니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아이도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자랐어야 했다.

아쉽게도 가정에서 아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나라도 한 번 더 챙겨주고 웃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넸어야 했다.

요 녀석 또 어디 내 눈 밖에서 사고나 치고 다니는 거 아니겠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 세월과 경험이 내게 쌓아준 삶의 무언가 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제 막 사춘기의 회오리 속으로 들어가던 너에게 조금이나마 편안한 쉼터가 되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른과의 관계에서 든든한 지지대 없이 휘청휘청, 아슬아슬하게 지내던 아이의 사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얼마 후 주말 깊은 밤에 나는 다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게 된다.

"여보세요. 여기 ㅁㅁ 경찰서인데요."




(뒷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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