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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20. 2024

실리콘밸리와 맨해튼의 비영리기구에서 일했던 썰

봉사활동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주로 여유 있는 시간을 이용한 재능 기부를 떠올리지만, 10여 년 전 미국에서 "volunteer job"을 찾는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결혼과 동시에 유학생의 아내로 미국에서 살아가게 된 참이었다. 새로운 삶이 설레기도 했지만, 이력서의 측면에서 보면 공백이 시작된 셈이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의 경력을 이어가며 일을 하고 싶었지만, 비자 문제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비영리기구에서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봉사직은 이런 내게 좋은 선택지가 되었다. 임금을 지불하는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니, 비자가 없어도 의지만 있으면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막 미국에 도착한 외국인들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면 기꺼이 환영해 주었다. 나의 목표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남을 위해 쓰겠다는 숭고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영역을 어떻게든 끊기지 않고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결혼 전 한국에서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일했던 터라, 관련 분야 비영리기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나는 미국에 살면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비영리기구에서 10개월 정도 봉사했고, 동부로 이사 가서도 뉴욕 맨해튼에 있는 다른 비영리기구에서 6개월가량 봉사했다. 처음 봉사자 면접을 보러 갔던 것이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잊기 전에 이 경험에 대해 써보려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봉사자로 일을 하게 된 것은 산타클라라라는 도시에 있는 꽤 규모가 있는 비영리기구였다. 다른 곳들은 모르겠지만, 이곳은 정식으로 돈을 받고 일하는 직원은 한두 명 정도에 불과했고, 오피스에 상주하는 수십 명은 모두 봉사자였다.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테크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정책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을 목표로 한 기구였다. 


워낙 왔다 갔다 하는 인력은 많았지만 구심점이 되는 인물은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나는 화요일과 목요일 출근을 했는데, 갈 때마다 매번 다른 얼굴과 마주쳤다. 그러나 인상적인 점은 그래도 최대한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매주 화요일마다 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팟럭 파티를 하며 전체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나만 한국인이었고,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었다. 내가 만들어간 김치볶음밥과 인도인 봉사자가 가져온 커리를 먹으며 현재 팀마다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다음 목표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곳을 좋아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였다.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기후변화나 지속가능성 관련 자료를 만드는 것이 이 기관의 업무 중 하나였는데, 나는 한국에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에너지 부문 콘텐츠를 만드는 팀장이 되었다. 팀원들과 함께 에너지 관련 주제를 정해 함께 글을 쓰고, 고치고, 업로드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내가 썼던 글들은 홈페이지가 개편되며 없어졌지만, 외국에서 내가 소속감을 느끼며 업무 비슷한 것을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뭐든 처음은 잊히지 않는 법이다. 



뉴욕에서 

동부로 이사를 와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맨해튼에도 관련 분야의 비영리기구가 많았다. 이전에 일했던 곳이 기업들과 소통하고 행사를 주최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뉴욕에서 만난 이번 비영리기구는 기후 운동가들의 집단이었다. 시위를 하고, 직접 정책결정자들을 찾아가고,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 몇 명이나 돈을 받고 일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봉사자들이 대부분이었단 것은 실리콘밸리와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어리고 맨해튼에 살지도 않았던 나는 이런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온라인으로만 도왔다. 사람들이 정책 결정자를 만나러 가면 나는 가서 논의할 관련 데이터를 모아 보고서처럼 만들어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예전에는 봉사자 자격으로나마 팀장 위치에 있어 몰랐던 나의 부족한 점을 많이도 깨달았다. 아이를 재우고 온라인 회의를 하며, 나의 경험이 얼마나 일천한지, 영어 소통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껴졌다. 전문성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기관의 공통점을 찾자면 

두 곳은 아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공통점도 여럿 있었다. 이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진입장벽이 낮다 

당연하지만, 봉사직이기 때문에 돕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두 팔 벌려 환영해 준다. 한국에서 관련 분야에서 2년의 경력이 있는 나 정도면 자격이 충분한 걸 넘어 오버된다고까지(overqualified) 했으니 말이다. 외국에서 뭘 할지 아직 갈피를 못 잡는 사람이 있다면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의 비영리기구를 찾아가 봉사해 볼 것을 추천한다. 


유명인 중심으로 굴러간다 

이런 비영리기구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는데, 바로 '연줄'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일해본 두 기관에는 유명한 사람이 한 명씩 소속되어 있었다. 실리콘밸리에는 비영리기구의 대표가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일한 데다 인맥이 좋은 사람이었다. 행사에 참석하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이던 사람이었으니 오합지졸(?)에 가까운 인력을 이끌고도 기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맨해튼의 비영리기구의 경우 유명 작가와 긴밀히 협업했다. 기후 위기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쓴 작가이자 활동가로, 이 기구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뉴스레터를 보내는 등 활발하게 손을 잡고 활동했다. 다만 이런 유명인들은 매우 바쁘기 때문에 봉사자들은 항상 그들의 이름만 전해 듣곤 했다. "OOO도 그랬는데, 이렇게 하면 좋대요" "OOO와 함께 다음엔 이렇게 해보죠"라는 식으로. 아무튼 비영리기구의 활동에서 '빅 네임'은 중요한 듯하다.


순전히 봉사자들의 자발적 의지에 기대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려고 면접을 볼 때, 내게 팀장을 맡긴 디렉터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당신의 경력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자원봉사자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건 일반 회사보다 몇 배는 어렵거든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만 해도 몰랐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뼈저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봉사자는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조직에 지는 의무도 책임도 없다. 순전히 자신의 '호의'로만 거기 온 거니까. 


우리 팀원들 중에는 '이런이런 비영리기구에서 몇 년 동안이나 일했다'라고 링크드인 소개에 써 놓고는, 정작 일을 시켜도 감감무소식인 사람이 있었다. 결국 내가 일했던 10개월 내내, 그가 쓴 글은 커녕 얼굴 한 번 구경을 못했다. 근사한 '비영리기구 봉사' 간판만 필요했던 셈이다. 결국 하는 사람만 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돈 주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 

비영리기구 업무의 큰 부분은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려 기부금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는 것도 있다. 나는 다행히도 글을 쓰고 가볍게나마 리서치를 하는 업무를 맡았지만 내가 원하는 업무를 딱 맡아서 하기는 참 어렵다. 봉사자라는 특성상 필요 인력에 자꾸만 구멍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찾으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으니, 혹시 봉사직을 찾는다면 잘 맞는 비영리기구를 만날 때까지 발품을 팔아 보기를 권한다. 



대가 없이 일한다는 것 

예전 기억이 왜 떠올랐나 했는데, 요즘 브런치스토리에 생긴 '작가 응원하기'라는 기능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어디까지나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생긴 화폐 아이콘을 보니 '글을 쓰는 노동'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려 애쓰는 듯하다


글을 쓰는 것은 봉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의뢰를 받고 쓰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운이 좋아 출판사 관계자의 눈에 띌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을 바라고 글을 쓰는 사람보다는 그저 쓰고 싶어서 쓰던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의 이 '응원하기' 기능도 수익을 창출한다기에는 한계가 있다. 비영리기구가 봉사자의 자발적 의지에 순전히 기대듯, 순전히 독자들의 호의에 기대야 하니까. 노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관성을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치를 설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열심히 쓰면 어떤 형태든 그것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원봉사자로 시간을 보냈던 내 시간이 가치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비영리기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들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도 그것에 일부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결국은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경험을 밑천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표지 및 본문 내 모든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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