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의 꿀팁(?)을 대방출합니다
집에 사는 지박령(?)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100퍼센트 재택근무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풀타임은 아니고 남들의 50-70% 정도 일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청소를 하고, 장을 보고 빨래를 하는 것에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둘째가 유치원에 가서 다시 올 때까지 제게 주어진 시간은 여섯 시간이 약간 넘는데, 그 시간 동안 4시간 이상 일을 하면서 나머지 일을 끼워 넣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1-2회 있는 미팅 시간을 빼고는 완전히 혼자서 일을 하거든요. 누가 보지도 않는데 랩탑을 들고 침대에 누워서 설렁설렁 일을 하고 싶은 유혹이 드는 게 당연하죠.
재택 근무자로서 기본 중의 기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더라도 업무에 지장이 없음을 '성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맡은 일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시간 관리와 효율 관리입니다. 장시간 재택근무자로 일하며 나름대로 정한 규칙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1. 시간과 공간을 블록화 시킨다
저는 극 P 성향으로 계획과는 거리가 먼 편인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블록으로 쪼개는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경우, 1시간이나 30분으로 딱 정해진 시간의 블록 대신 그날 할 일의 블록으로 나눕니다. 예를 들면,
- 업무 블록 1
- 청소 블록
- 업무 블록 2
- 빨래 블록
- 휴식 블록
- 업무 블록 3
- 운동 블록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날그날에 따라 업무 블록이 몇 개가 필요할지 다르기 때문에 (업무 블록은 대개 업무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개수로 나누는 편입니다) 각 블록의 시간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저 블록을 어떻게 구성하여 나의 하루를 채울 것인지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요일별로 대개 비슷한 시간표가 나옵니다. 너무 똑같으면 지루해질 수 있는 재택근무 일정이기 때문에, 저는 아침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며 결정하는 편입니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쪼갭니다.
일단 대부분의 재택근무자가 그러하듯 저도 일하는 방이 따로 있고, 그 방에서는 일만 합니다. 엄청 아프지 않은 이상은 침대나 소파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또, 지루함을 대비해서 '일하는 장소' 블록들이 외부에도 곳곳에 있습니다. 동네 도서관 두 군데와 공부하기 좋은 커피숍, 아파트 도서실 등입니다. 동네 커피숍도 몇 군데, 창가를 바라보는 자리 나 독서실처럼 꾸며진 1인석이 있는 곳들을 알아두고 짧게 집중할 때 이용합니다. 이 외부 블록들은 가끔 효율이 너무 떨어질 때 비법처럼 끼워 넣곤 합니다.
2. '황금 블록'은 반드시 확보할 것
유달리 다른 개인적인 일로 정신이 없는 시기도 있는데요, 아이 학교에서 행사가 있다든지, 꼭 처리해야 하는 볼일이 있다든지 하면 업무 블록으로 써야 하는 시간이 뭉텅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저는 하루에 한 번의 업무 블록만큼은 초집중 '황금' 블록으로 지정해서, 다른 일정에 전혀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급한 업무만큼이라도 온전히 집중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말이죠. 보통은 아이들이 등교/등원하고 난 직후가 좋습니다. 집 안이 아무리 폭탄 맞은 것 같아도, 몸이 찌뿌둥해서 헬스장에 가서 뛰고 싶어도, 일단 서재 문을 닫고 들어가 1시간 이상 집중해서 일을 하면 그 후의 블록들은 조금 스트레스가 덜합니다.
3. 극 E인 성향을 고려하여 적절히 사회적 자극을 끼워 넣을 것
저처럼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E 유형의 인간에게는 재택근무가 더욱 어려운데요, 종일 일을 하고 생산적으로 보내더라도 좀처럼 힘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져서 일도 더 잘할 수 있고 아이들도 더 잘 보살필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동네 엄마와 오며 가며 마주칠 때 커피를 마신다든지, 엄마들 모임에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춘다든지 하면서 적절한 사회생활을 하려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저는 일을 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상대가 쉽게 불러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저 일하긴 하는데 집에서 하는 거라 시간 조금 빼는 건 가능해요~ 만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대신 만남이 있는 날 못 한 부분은 다른 날 더 열심히, 많이 하려고 애쓰지요.
또, 나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저 같은 재택근무자는 사실상 사회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잠든 밤에 줌으로라도 독서 모임을 하고, 카톡으로 시 필사 모임을 합니다. 제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혼자만 집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다 보면 나의 방식, 나의 기준이 늘 올바른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하지만 나와는 다른 의견들, 겪어보지 못한 고통들과 기쁨들을 조금이나마 엿보다 보면 절대로 혼자만 살아가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4. 퇴근을 의식화하기
최근까지만 해도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고 싶어서 (읭?) 잠시라도 짬이 나면 랩탑을 켜고 일을 하곤 했습니다. 회사가 미국에 있다 보니 밤늦게 일을 하면 실시간으로 소통이 되어서 좋은 점도 있고요. 하지만 퇴근 도장을 쿵 찍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일상에서 누리는 휴식의 질이 재택근무자에게는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들은 회사에서 사는(...) 사람이니까요.
제게는 둘째를 마중 나가는 시간이 퇴근 시간입니다. 그 이후로는 되도록 업무 관련 이메일이나 슬랙 메시지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무 시간에 더욱 농땡이를 칠 수 없다는 장점도 생깁니다.) 아이들이 오면 어차피 일하기도 어렵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루의 업무를 딱 끝낸다는 마음의 퇴근 도장을 찍습니다. 이제 주부로, 아이들의 엄마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5. 가끔은 유연해도 괜찮다
십 년이 넘게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규칙에 목매지 말 것. 어차피 깨짐.>
정말 많은 루틴을 시도해 봤고 시간 관리도 다양하게 변주해 보았지만, 결국은 나만의 스케줄을 스스로 찾아 나가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요. 퇴근 도장을 마음속으로 쿵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도 지치고 지지부진한 날은 낮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머리가 띵해질 만큼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이 나을 때도 있거든요. 낮에 좀 재충전을 하고 대신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 어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연한 재택근무자라는 게 감사할 뿐이죠.
재택근무를 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분들, 시간 관리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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