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인사담당자 수난의 달.
“대리님. 노동청이에요. 전화 돌려 드릴게요.”
“어? 그들이 왜..”
불시점검.
근로기준법을 등에 지고 출두한 노동청 사법경찰들의 심판의 날.
회사의 공공연한 불법에 어떻게든 적은 벌을 받도록 비빌 태세로 변태 시키는 네 글자. 스미마셍 머신이 된 인사담당자의 죄목이라 하면 사용자가 나의 동료들을 실컷 부려먹으면서도 적은 페이를 줘도 법의 테두리에 들어오게 하는 규정을 설계한 것. 사실 사형 구형 감이다.
어떻게 하면 동료들에게 더 적게 페이를 줄 수 있을까, 연차를 쓰라고 독려하지만 쓸 수 없는 환경에 일은 시키면서도 수당을 안 줄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를 1년 내내 고민하며 지내다 보면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나는 과연 노동자인가. 주머니가 가벼운 걸 보니 확실히 사용자는 아닌데.
“연장근로가 많네요.”
“네.. 죄송합니다.”
“52시간 초과 근로자가 상당해요. 알고 계시죠?”
“네.. 죄송합니다.”
“수당 산정 근거 가져오세요. 규정도 주시고 내역도 주세요. 아, 불편해서 그런데 담당자님 간과 쓸개는 그만 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주섬주섬.
잔뜩 꺼내놓았던 간과 쓸개를 주워 담고 사무실로 올라와 최소한의 자료를 들고 다시 법정.. 아니. 회의실로 들어간다. 분명 그들은 친절하다. 회사의 잘못을 꼬집지만 어느 정도 고충을 이해해준다. 나도 노동자이기에 노동청이 노동자의 편인 것에 너무 감사하지만, 이런 날은 정체성 혼란의 최고치를 찍는다. 결국 준비해 놓은 서류를 전부 오픈하고, 정직 이즈 베스트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정직하고 솔직하게 감사받고 나면 그들은 정상참작이란 걸 선물로 준다. 시간이 참 빠르다 생각하며 살던 하루하루였는데,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하루를 선물 받은 건 덤이다.
장장 5시간의 감사가 끝나고, 배꼽 인사와 함께 입구까지 배웅하고 나면 머리가 어디 붙어 있는지, 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모를 지경으로 너갱이가 나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헛웃음과 함께 찾아오는 현자 타임. 우선 끝났다는 후련함 뒤로 밀려오는 허탈함과 위에 보고드릴 시정사항 한 무더기.
“여기는 담당자님 퇴사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진짜 관리 잘하시네요.”
머리, 다리 어디 붙었는지 몰라도 어깨가 어디 붙었는지는 확실히 알게 해 주며 으쓱으쓱 우쭈쭈 해주던 감독관의 한 마디에 감사고 뭐고 관심 없는 상사들로 향한 적대감 반발감이 씻은 듯 사라진다. 역대급 디펜스에도 상사님들께서는 ‘고생했어’ 한마디 안 해주더라. 넥 슬라이스!
근로자들이 52시간을 넘기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사담당자는 몰래, 조용히 52시간을 넘겨가며 업무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깔고 앉아 지나온 일주일. 이제 숨 좀 쉬어볼까 했더니.
“대리님. 병무청이에요. 전화 돌려 드릴게요.”
“어? 그들이 왜..”
‘응, 반가워. 노동청에서 다녀갔다길래 우리도 왔지롱’ 하듯 불시에 방문한 병무청 주무관님들. 노동청의 쨉을 얻어맞은 지 얼마 안 된지라 맵집이 쌔졌을 줄 알았는데, 병무청에서 날아오는 건 훅이더라. 3시간의 실태조사를 받는 중간에 너갱이가 나갔다. 팀장도 연차, 위에 선임도 연차. 또 혼자다. 노동청 감사고 병무청 감사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 어차피 내 일이니, 내가 담당자이니 뭘 뚜드러 맞아도 내 잘못이고 디펜스도 순전히 나의 몫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인사란 참 외로운 직군이구나 싶다.
“담당자님. 긴장하지 마세요. 아주 잘하고 계세요.”
뚜드러 팰 거 다 패 놓고 마지막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약을 발라준다. 그걸로 됐다. 늘 고맙고 미안한 우리 산업기능요원 친구들도 잘해주었고. 그걸로 됐다. 다음 주에 출근을 하면 업무가 산더미이지만, 어쨌든 됐다.
나는 행복한 노동자다. 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