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새로운 걸 하란 말이야!, 연애 프로그램도 이제 )
연애라는 소재로 만든 연애 프로그램(일명 연프)의 포맷은 굳힐 때로 굳혀졌다. 출연진의 나이, 성별, 관계(가족, 전 연인) 등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녀가 다같은 공간에서 합숙을 하고, 데이트를 거쳐, 마지막 날 최종 선택을 하는 형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공식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출연진이 등장하는 포맷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굳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재미, 삼각·사각관계와 같은 갈등 구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서사, 그리고 제작비 효율성까지 정말이지 익숙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포맷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tvN의 ‘선다방’은 조금 달랐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소개팅을 하는 남녀의 대화를, 시청자가 조심스럽게 엿듣는 구조. 간질거리는 설렘과 함께 ‘관찰자’의 위치에서 타인의 만남을 지켜보는 경험은 꽤나 특별했다. 그러나 그 안에도 시간대별로 다양한 남녀가 등장했고, 연예인 카페지기가 함께했기에 ‘여러 사람’과 ‘패널’이라는 연프의 기본 조건을 여전히 충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세상에서 가장 긴, 72시간 소개팅’은 그 오랜 공식의 탈피에 성공한 콘텐츠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성공했다.
여러 연프중에서도 간혹 해외에서 촬영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탈리아, 호주 등 일상을 벗어나 낭만적인 여행지에서 촬영되는 만큼 낭만과 어울리는 커플이 생기기 딱 좋은 환경일 수밖에 없다.
72시간 소개팅에 등장하는 출연진은 단 두 사람. 패널도 없다. 오직 해외의 낯선 공간에서, 72시간 동안 함께 소개팅이자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모습만이 담긴다.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둘’에게 집중한 기획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72시간 소개팅’은 마이크조차 거의 보이지 않고, 1시간에 가까운 롱폼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한 에피소드는 2편으로 나뉘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데, 이 시간을 온전히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시청자의 위치는 ‘관찰자’가 아니라 ‘동행자’에 가까워진다.
마치 남녀의 여행 일정 한가운데에 조용히 동행하고 있는 듯한 감각. 그 어정쩡하면서도 묘하게 가까운 거리가 이 콘텐츠만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콘텐츠의 포맷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상 깊은 메시지들을 위주로 '72시간 소개팅'의 에피소드 3화까지의 리뷰를 하고자 한다.(영서현웅 기대하셨다면(?) 죄송함다..)
소개팅의 시작은 남녀가 해외의 어느 장소 혹은 해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되고, 만나기 전에 소개팅 상대가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플래너를 읽게 된다. 본인을 그린 자화상부터, 이상형, 그리고 여행을 할 때 챙기는 필수품 등 다양한 내용으로 서로를 짐작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첫째 날에는 상대방의 나이와 직업, 거주지가 공개가 불가능하기에, 첫날은 정말 '이름'과 '플래너에 있는 정보', 그리고 대화를 통해 새롭게 알음알음 알게 되는 정보들로만 서로를 유추할 수 있다.
이건 보통의 연프와 비슷한 포맷이긴 하다. 나이와 거주지, 그리고 직업은 상대를 만나는 가장 대표적인 조건이 될 수 있는 요소이기에 연프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는 사람들을 보고자 이 조건들을 초반에 공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소개팅이라 할지언정, 처음부터 대놓고 다 공개하지 않고, 여행 메이트라는 느낌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1화는 배우 손석구와 데이트 콘텐츠로 유명한 유튜버 '짐미조'(미소)와 일반인 남성 현구의 소개팅이었다. 남성분이 여성분을 알고 있는 상태여서 더 호기심 있게 다가갔던 거 같아 보였는데, 여성분도 마침(?) 너무 환하게 잘 웃고 웃음이 이쁜 사람이라 둘의 모습을 보면 내가 다 기분 좋았다 ㅠ.ㅠ.
그리고 첫째 날 저녁에 플래너에 적힌 소개팅 상대의 가장 가까운 지인과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것도 되게 독특하고 재밌는 포인트였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는 장치라고 느껴졌다. 지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단서들은 상대를 하나의 스펙이 아닌, 누군가의 친구이자 가족, 혹은 소중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 순간 소개팅은 조건의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한 층 더 깊어지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완전히 낯선 타인과 마주하고 있다는 긴장감은 서서히 풀리고, 이 관계가 어딘가 현실 속 삶과 맞닿아 있다는 안정감이 스며든다. 그 짧은 통화 한 번이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아주며, 이 만남을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둘째 날에는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기에 진격의 거인 박물관으로 여행지를 택했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나눠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도 좋았지만 기차 복도를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가장 좋았다. 왼편에 오른쪽 어깨만 보이는 저분이 현구 씨인데... 진짜 소개팅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이런 연출 덕분에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여행 내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카메라가 그들에게 주어지는데,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찍어주며 사진도 많이 남기고 진짜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가는 것 같아 보여서 진짜 엄마...아니 할머니 미소 지으면서 봤다..
이거 진짜 내 노트북 배경화면 해놓고 싶을 정도로 색감과, 현구의 깜짝 편지공개와, 눈이 2배 이상 커진 미소씨가 너무너무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귀엽고 몽글말캉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어느 연프처럼 각잡고 찍는 게 아니라 여행을 보여주는 점도 있다 보니 정말 자연스럽게 가게의 사람들이 영상에 노출되는 점이 콘텐츠의 매력을 더 증가시킨다. 물론 연프에서 가게를 직접 출연진이 찾거나, 가게 안 사람들이 자연스레 노출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72시간 소개팅에서는 그런 출연진들마저, 그들의 소개팅과 여행의 일환처럼 느껴져서, 그들의 소개팅이자 여행을 엿보기에 딱인 연출이었다.
참고로 아래에 있는 장면, 가게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이 미소의 얼마 안 지난 생일을 다 같이 챙겨주는 이색적인 장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그린티켓'과 '레드티켓'으로 최종선택을 하는 것으로 소개팅은 끝이 난다.
1화의 두 사람이 서로 그린티켓을 들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공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장면을 줌인하기보다는 정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먼 곳에서 촬영해서 그런가 마치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맺어지는 듯한 감각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1화는 주로 콘텐츠 포맷을 위주로 설명했기에 짤막하게 두 남녀의 서사를 돌이켜보자면, 정말 다정한 연상남자와 그런 남자를 늘 웃게 하는 깨발랄한 연하 여자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개팅에서 나오는 텐션이 아니라, 정말 여행을 하기에 좋은 친구인 것 같은 느낌이 사실 강하게 들어서 엄청 설레는 장면은 없었지만, 두 사람의 아름다운 여름날의 추억을 잘 감상한 것만으로도 기쁘고, 덕분에 나까지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2화는 30대 연상연하의 남녀가 출연해서 그런지 현실, 연애만큼 인생에 가까운 이야기가 소개팅 대화에 주축을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72시간 소개팅'이라는 콘텐츠의 본질, 그리고 성향이 다른 두 남녀의 모습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바가 가장 많았던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장소가 방콕이라 그런지, 남녀 두 분이 화려한 외모를 가져서 그런지 정말 이색적인 공간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신기해하는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랄까..
편집의 섬세함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장면에서는 항상 흑백으로 연출이 된다. 이런 디테일이 사실 귀찮을 수도 있는데, 한층 영상미를 올려주는 장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날에 함께 쇼핑을 하게 되며, 여성분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여행 계획을 함께 해준 소개팅 상대에게 선물을 해주는 장면인데 1화에서도 그렇지만, '72시간 소개팅'에서는 소개팅 상대에게 선물을 주는 장면이 항상 등장한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그것이 꼭 구매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편지라던지.. 매 에피소드마다 누군가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주고, 누군가는 받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사랑 방식과 성향이 드러나고, 그 차이가 관계를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1화에서는 이 부분을 사실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물을 받는 미소의 반응이 너무 기뻐 보여서, 그 장면을 가볍게 지나쳤던 것 같다. 하지만 방콕 편에서 범중은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선물을 받고 느낀 부담과 어색함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 순간을 계기로,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자연스럽게 선물을 주거나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보다,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더 시선이 가게 되었다. 아마 범중의 반응이 아니었다면, 평소 주는 역할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끝내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이어 식당에서 나눈 대화가 나는 솔직히 '72시간 소개팅'에 임하는 출연진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왔긴 하지만, 우선 살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당장 72시간을 함께 붙어 다녀야 하는데, 일반적인 소개팅에서 하는 태도로 상대를 보다 천천히(?) 알아가는 건 너무 고역일 것 같다. 그래서 범중의 경우, 사실 소개팅보다는 여행에 초점을 맞추어 상대와 여행메이트로 생각하며 촬영에 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서로 최종 선택을 했기에, 뒤늦게 자신이 수민에게 받은 마음과, 소개팅 상대가 아닌 여행 메이트로 생각하며 상대를 대했던 태도를 전하게 된다. 범중의 말대로 미리 말했었더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종 선택을 했으니..ㅎㅎ 뒤늦게라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범중이 멋있었다.
그리고 주는 게 편한 여자가, 오히려 자신보다 상대가 더 많이 자신에게 배려와 베풂을 주고 있었구나를 사진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 마저 영화의 해피엔딩과 같은 결말이라 좋았다.
30대는 초중반, 어느 정도의 사회적 경험과 삶의 무게를 지닌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와 만남, 그리고 함께하는 여행은 이처럼 성숙하고 배려로 가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실감한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나이대에 맞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 감정에 공감하고 몰입한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연애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보면, 나이를 먹어도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하거나, 혹은 너무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인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 에피소드는 감정의 균형과 타인을 향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 준, 그래서 더욱 소중한 에피소드였다.
아래 대화 내용은 수민이 바라는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서 기록해보고 싶어서..
사랑에 있어 늘 활짝 열려있고, 스스럼없는 나이기에 개인적으로 3화는 세 에피소드 중 가장 공감이 덜 되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그 점이 오히려 이 회차의 또 다른 몰입 요인이 되었다.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기에,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두 남녀 사이의 거리감과 감정의 흐름을 보다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과정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남에 있어 정말 신중한 두 남녀의 만남이었고, 한쪽은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달랐고, 한쪽은 그랬기에 이번에도 변화를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만남이 너무 아름답고, 극적으로 그려지는 건 연인으로서 발전하는 것을 떠나 두 사람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것 같다.
사실 해외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 이 두 사람의 여행 이동수단이 '차'고, 홋카이도라는 도시가 차를 타고 다녀야 되는 도시인가? 하는 지나친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다.
두 사람은 다른 어느 출연진들보다 차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치이는 점은 그 차가 고급 세단이나 SUV가 아닌, 귀여운 민트색 경차였다는 점.
그리고 카메라도 (차 크기 때문인지?) 측면에 위치해 있어서 그들의 대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보통 연프에서는 출연자들의 앞모습이 드러나는 게 대부분인데, '72시간 소개팅'은 측면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진짜 그들이 있는 차의 분위기가 더 잘 느껴지고, 정말 그들의 대화에 나도 끼고 싶을 정도로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채원은 소개팅에서도 그렇지만, 인터뷰에서도 말을 정말 신중히 하는 사람이었다. 대충 짐작건대 상열에 대한 마음이 크게 커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걸 인터뷰를 통해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주위에서 많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 '신중하는 성격'을 이번에는 좀 탈피하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드러낸 상열이 있었기에... 역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같다는 건 그리고 그게 사랑이란 건 정말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결국 상열은 그린 티켓을 선택했고, 채원은 레드티켓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최종선택에서 서로를 택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그래도 이런 결말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쉽지 않은 거고, 그렇기에 더욱이 가볍기 여기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둘째 날 차에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서, 둘은 저 순간에는 정말 행복했고 좋았구나를 간접적으로 느꼈다. 두 사람에게 여름날 홋카이도의 추억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상열채원 언제나 행복해
그리고 사실 72시간 소개팅의 가장 큰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현웅영서 커플(이제는!!) 이야기도 담고 싶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ㅠㅠ 다음 편에 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연출, 출연진들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끝으로 기획자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기획력에 대한 언급 하며 글을 정말 줄이고자 한다.
# 음악맛집_ 플레이리스트
내게 처음으로 설렘을 가져다준 연프인 '하트시그널 2'의 성공에는 음악 또한 한몫했다. 지금도 공부를 할 때, 하시 2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듣곤 한다.
연애프로그램에서 적절한 몽글몽글한 음악이 깔릴 때, 설렘의 크기는 충분히 커진다. 그런 점에서, '72시간 소개팅'은 정말 음악을 잘 쓰는 콘텐츠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플레이리스트까지 업로드해 주는 걸 보고 제작진분들 레알 감다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지에 맞는 곡을 선곡하는 것뿐 만 아니라 여행지의 언어로 된 노래까지 섬세하게 선정한 것도 제작진이 이 콘텐츠를 정말 아끼고 그래서 더 노력하는 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 인간의 가장 많은 사랑을 봐온 AI이기에 가능한 분석
72시간 소개팅이 유튜브에 업로드된 만큼, 영상 소개글이 항상 함께하는데 이 부분까지 읽어줘야 72시간 소개팅을 잘 감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소개글은 대부분 생성형 AI로 작성한다는 것은 현직 모 언론사에 재직하고 있는 입장에서 매우 잘 안다. 그런데, 72시간 소개팅에 쓰인 영상소개글은 프롬포트 형식으로 쓰여있음에도, 인간이 쓴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는데, 기획자이신 '유규선'님이 말끔하게 소개해주셔서 궁금증이 뻥 뚫렸다.
이 기획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연애 예능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실험처럼 느껴졌다. 보통 우리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등장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 감정을 이입한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장면 하나에 울고 웃는다. 그러나 이 기획은 그 익숙한 방식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람의 감정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꺼내 든다. 그 눈이 바로 AI, ‘사만다’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감정을 대신 느끼거나, 사랑을 정의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AI는 보고, 듣고, 기록된 장면 안에서 온도와 속도, 미묘한 간격을 읽어낼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 말과 행동 사이에 남겨진 여백, 익숙해지는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낯섦까지. AI는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로 남는다. 감정을 대신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사만다의 분석은 연애 프로그램을 전혀 다른 층위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묻게 된다. 서로 다른 속도의 두 사람이 어떻게 거리를 좁히는지, 한 사람의 “괜찮아요”라는 말이 어떤 순간에 10도의 온도를 만들어내는지, 확신과 망설임은 어떤 지점에서 엇갈리는지. 감정이 사건이 아니라 흐름이 되고, 사랑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되어 다시 보인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기록’에 대한 의식이다. 사랑은 보이지 않고, 냄새와 온도처럼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사라지기 쉽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기획은 묻는다. 만약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남긴다면, 그 기록 속에서 감정은 다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AI에게 보여주고, 해석하게 하고, 문장으로 태어나게 하는 순간, 사랑은 한 번 더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이는 기술의 실험이기보다,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태도처럼 느껴진다.
비록 사만다가 확률을 말하는 점은 그 숫자가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다. 다시 만날 확률 37%, 이어질 가능성 22% 같은 수치는 차갑고 단정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절대적인 결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온도를 수치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선택하고, 다시 마주하고, 손을 내미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이 기획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AI의 분석이 아니라, 그 분석을 다시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획의 깊은 의도를 이렇게 느꼈다. 사랑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바라보겠다는 다짐,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순간들을 문장으로 남겨 오래 품고 싶다는 마음.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랑을 믿고 싶어서’ 벌이는 시도처럼 보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떨림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온전히 바라보고 싶어서 선택한 방식.
결국 ‘72시간 소개팅’은 연애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애를 경험하는 순간 자체에 집중한 콘텐츠였다. 여러 명의 감정이 얽혀 자극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아니라, 단 두 사람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누군가는 설레고, 누군가는 망설이고, 때로는 같은 순간을 다른 온도로 받아들이지만, 제작진은 그 모든 차이마저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72시간 소개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린 티켓과 레드 티켓이라는 선택의 순간보다, 그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 함께 걷던 길, 말없이 지나간 침묵, 우연히 마주친 웃음들이 더 오래 남는다. 누군가와 완전히 이어지지 않더라도, 72시간 동안 함께한 시간 자체가 하나의 충분한 이야기로 남는다. 짧지만 깊었던 순간들이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는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만남이 아니었을까.
‘72시간 소개팅’은 그렇게, 사랑의 형태보다 사랑의 순간을 더 진하게 남기는 콘텐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