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복 받은 사람
첫 직장에서 일할 때 나는 불특정 다수 앞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이 몇 번 있었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에 익숙지 않아 먼저 써보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외운 것을 기계처럼 읊는 내가 어찌나 부자연스러웠을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마 전 노트북을 정리하다 그 시절 어느 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을 발견했다. 주제는 '페어트레이드와 나'였는데, 공정무역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무엇이 좋은지, 힘든지 등의 내용이었다. '맞아, 그때 거기서 이런 발표를 했었지'하며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 부분에서 눈이 멈췄다. 내용은 이렇다.
"제가 느낀 공정무역은 힘이 듭니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보셨겠지만 한계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생산자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아니고 저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내가 별생각 없이 산 옷 뒤에 감취진 이야기, 맛있다고 먹는 초콜릿과 커피 뒤에 감춰진 진실을 알았을 때 그 충격을 잊을 수도 없겠지만, 그 후 찬찬히 그들을 다시 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그 모습 속에 제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나는 저들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표면적으로는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기존의 무역체계가 만들어놓은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속에 피해받는 자는 그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를 위해 하는 일이 어떤 이들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려고 발버둥 쳐도 변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긍정적인 변화가 좋겠습니다. 나를 변화시키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그중에 제가 택한 것은 공정무역입니다."
이 때나 지금이나 이런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난 대단한 정의감이나 투철한 세계시민의식을 갖고 이 일을 대하진 않는다.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니다. 그냥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난 내 하루의 80%를 보내는 '일'이라는 공간과 시간에서 기왕이면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에너지를 내고 싶은 소망은 있다. 이 소망에 가까이 가기 위해 첫 번째로 택한 것이 공정무역이었고 난 이 첫 회사를 3년 6개월 정도 진하게 경험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그곳은 또 전혀 새로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