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에 한 번씩 새 책을 들고
나는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다. 이곳은 ‘공동육아'라는 이름처럼 '니 아이 내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를 함께 키워보자'라는 의미에서 뜻 맞는 부모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 어린이집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것은 벌써 몇십 년 전이고 지역마다 삼삼오오 모여 시작한 것이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이 있을 정도로 조직화 되었으니, 나로서는 그저 '뜻'만 얹었을 뿐 미리 닦아놓은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혜택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아이를 맡겼다가 찾아가는 것 이외에도 부모들이 직접 나서야 할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부모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어린이집 즉 조합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 처음 가입을 하면 각 가정의 아빠 엄마(이곳에서는 줄여서 '아마'라고 부른다)가 재정, 홍보, 기획, 시설 등 본인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운영 소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졸업하기 전까지 그 소위의 소위장으로 한 해 동안 일을 하게 된다. 또 주말엔 돌아가며 어린이집 청소도 하고 선생님이 휴가 낸 날에는 '종일 아마'라는 이름으로 대체 교사 역할도 한다. 이렇게만 보면 머리가 지끈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혼자 애 키우는 거 힘들어서 같이 키워보자고 모였으니 '키우는' 데 품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비슷한 가치를 갖고 모였지만 저마다의 생각이 있을 터이니 개인의 생각으로 큰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일종의 약속과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솔직히 말해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귀찮은 몸 이끌고 나갔는데 예상치도 못한 무언가를 얻고 온 느낌,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그거. 그거다.
그리고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모여 즐길 일도 많고 무슨 잔치 무슨 잔치 그놈의 잔치도 매달 있는 것 같다. 애 낳고 파티 못해 안달 난 사람에겐 딱이다. 거기다가 아마들의 소모임이 있는데 요것이 요물이다. 오늘 이 이야기하려고 서론이 길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매력 중 하나는 아빠 엄마 누구든 취미든 공부든 하고 싶은 걸 같이 하자고 꼬실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애 낳기 전에야 자유의 몸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허나, 애를 낳았다. 세상은 '워라밸 워라밸'을 외치고 '주 52시간 근무'로 저녁 시간이 보장됐다 하는데 나는 느닷없이 투잡이 생기고 하나 퇴근하면 또 하나 출근하니 주 52시간? 시계를 잘못 보나 싶다. 세상이 이렇게 나와 별개로 돌아가다니 내가 이상한 건가 세상이 이상한 건가 의문을 품다가 이런 의문 품을 새에 집을 치우든 애랑 놀든 둘 중 하나 해라 하고 외치고 있다. 누가? 내가, 내 마음이. 그러다가 또 이런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살 날 많잖아. 내 인생의 지금이 이런 구간일 뿐이지. 평생 이럴 거 아닌데 뭐. 이걸 겪으면 더 나은 내가 될 거야! 애 이쁘잖아? 더 바랄 게 뭐 있어. 이러고 있다. 애가 네 살쯤 되었을 때야 휘몰아치는 '바람'들을 대충 잠재웠다 생각했는데 그때 나타난 것이 소모임이다. "책모임 있는데 같이 갈래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오! 내가 바라던 거야!' 바라는 게 없긴 개뿔.
그런데 내가 이것에 이토록 열광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모임의 구성원들이 다 나와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서로의 상황을 봐가며 진행을 조율할 수 있다. 둘째, 어린이집 내에 소모임이기 때문에 배우자의 반대가 적고 알고 보면 배우자가 속으로 결사반대하고 있을지라도 그 반대를 온 힘을 다해 표현하지 못한다는 암묵적인 가이드까지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한 사람이 애 봐주니 다른 한 사람이 소모임 나가지 않나. 못 가게 하면 공식적으로 쪼잔한 인간 되는 거다. 내가 무작정 '3주에 한 번씩 밤에 나가서 자유롭게 놀고 올게' 하면 '그래 내가 애 볼 테니 정기적으로 나갔다 와' 할 배우자 몇 명이나 될까. 지금 손 든 사람 조용히 손 내리고 당장 실천하라. 마지막으로, 처녀 시절 그 많던 자유시간에 생산적인 일이라곤 눈곱만큼도 안하고 술이나 퍼먹고 다니다가 애 낳고 나니 느닷없이 온갖 생산적인 모임들이 다 나를 위한 것 같았는데 그들의 저녁 시간이 나와 같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에 좌절하고 쓰리는 속 부여잡고 씨름하고 있는 중에 이렇게나 맞춤형 자기 발전적 모임이 나타났으니 펄쩍 뛰지 않고 견디겠나. 나도 이제 밥 먹고 밥 치우고 씻고 씻기고 똥 싸고 똥 치우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한다! 게다가 그렇게나 책도 안 읽던 내가 3주에 한 번씩 새로운 책을 잡는다니. 역시 인생 바로 코 앞을 알지 못한다. 오래 살자.
그렇게 나는 첫 책을 들고 2020년 어느 토요일 밤 열 시에 터전(이곳에서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 부른다)으로 향했다. 그렇게 터전을 들락거린지 1년이 좀 넘은 지금, 2022년 3월, 어느 소녀의 끔찍한 학대 경험을 쓴 소설 같은 실화 <완벽한 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쓰려고 했는데 다음번에 해야겠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네, 인생 참.